[연구 계획서] 대중 문화의 대안적 형태를 찾아서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한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 중에 한편으로는 생각이 잘 정리가 안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힌 것 같기도 해서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석사 과정 연구계획서를 작성했을때에도 (예비) 지도교수님에게 정말 많이 혼났었는데, 그때와 마찬가지로 연구계획서라고 하기에는 초록에 가깝고, 그렇다고 해서 잘 짜여진 형태의 초록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힘든 무언가를 써버렸습니다. 많은 관심과 조언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대로 아직 연구계획서를 어떻게 써야되는지 감이 1도 안잡히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본 연구는 6-7년을 거슬러 올라가, 제가 학부 2-3학년이었을때 갖게된, 철학을 공부하게 된 근본적 계기에 대한 일부분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학부를 국어국문학과에서 졸업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약간 그래서 시를 진지하게 좋아했냐, 는 아니였던 것 같고 약간의 지적 허영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좋아했던 시인이 김경주인데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569449 이런 시집을 냈었습니다.) 사실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뭔가 좀 있어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시에 대한 열정은 약간 식고, '누벨바그' 영화라는 것을 알게되었는데 묘하게 당시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비슷한 맥락에 놓여있는 것 같더라구요. (후에 누벨바그 시대가 못해도 50년은 앞섰다는걸 알게되고 정말 많이 놀랐었습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왜 작가들은 소위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작품을 만들까? 작가들이 그러한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어하는게 뭘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이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찾는 것이 제 철학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쓰다보니 김경주 -> 누벨바그 -> 철학 사이의 간극이 좀 큰 것 같긴 합니다. 그냥...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대충 읽고 넘기셔도 되는, 정말 그냥 잡설입니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제 연구 계획을 설명하게 되는데, 영어로 먼저 작성된 후에 한글로 다시 번역하였습니다. 어투가 많이 어색하더라도 조금 이해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2. 연구 주제: 본고는 오늘날의 대중 매체들이 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그러한 담론이 형성 되어온 과정을 밝히고 또한 대중 매체에 대한 대안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매체가 등장할 가능성을 예견해보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를 위해서 본고는 대중 및 대중 매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론들을 참고할 것이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이름 아래에서 사회이론, 매체이론 및 예술이론에 관해 많은 중요한 저작들을 남겼으며 특히 그들은 '비판 이론 학파'라고도 불리우는 만큼, 대중과 대중 매체에 대해서도 사뭇 비판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비판적 견해를 갖게 된 이유는 매체를 통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소간 왜곡된 기능이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렇듯 대중 매체의 왜곡된 발현에 대한 아도르노의 논평은 <<계몽의 변증법>>과 같은 주요 저작이나 <문화산업 재고> 및 <문화산업의 도식>과 같은 논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흔히 '문화산업론'이라고 불리우며 이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프랑푸르트 학파 2세대 및 3세대, 그리고 영미 지역에서는 초기에는 마틴 제이를 통해서,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프레드릭 제임슨에 의해서 꾸준하게 재생산되고 있다.

  3. 연구 목적: 연구 주제에서도 이미 언급하였듯이, 대중 매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견해는 주로 비판적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이후 문화산업론에 대한 수용 또한 이와 같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현 시대의 대중문화들이 보여주고 있는 자본에 대한 종속성과 소수문화에 대한 가열한 배제는 그러한 수용이 결과적으로 옳았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현 시대의 '모든' 문화적 생산품들이 아도르노의 예견 아래에 놓여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물론 문화산업론이란 대중 문화의 '일반적인' 흐름에 대한 진단인 바, 소수의 예외적 문화들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반론으로 작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고의 궁극적 목적은 아도르노의 예견에 대한 반대 예시를 보여준 후, 그의 이론이 불완벽함을 주장하는 것에 놓여있지 않다. 오히려, 본고는 아도르노의 이론이 가진 예언적 요소들을 더욱 강화하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서, 본고는 <<미학이론>> , <<부정변증법>> 및 <<미니마 모랄리아>> 등을 통해서 개진된 아도르노의 미학적 견해를 탐구하고 '예술성'이란 어떠한 계기들을 통해서 성립되는지 논의한 후 예외적 문화들이 지니고 있는 반(反)대중문화적인 요소들이 이러한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들과 유사한 지점을 보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보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고의 궁극적 목표는 아도르노가 그의 문화산업론을 통해서 대중문화의 한계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극복 가능성 또한 함께 제시하였음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아도르노는 현재의 소위 '인디 문화'라는 개념을 선취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또한 그러한 대안적 형태의 문화가 보여줄 향후의 발전 과정을 예시(豫示)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4. 연구 내용 및 구성: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 본고는 다음과 같은 두 장으로 시작된다: 1) 현대 대중 매체의 문제점을 소개하고 이러한 매체 담론의 선구적 이론가로서 아도르노를 제시한다. (1. 서론: 대중매체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2) 우리는 왜 매체 이론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아도르노에게 주목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2. 왜 여전히 아도르노인가?).
    첫 번째 장에서 나는 대중 매체를 둘러싼 현대적 관점에서의 문제점들을 제시한 후, 그러한 문제점들이 어떠한 맥락 안에서 쟁점화되었는지를 간략히 요약하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과정에서 아도르노가 우리로 하여금 '대중' 및 '대중매체'라는 개념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내가 왜 그와 같은 기대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는 앞서도 말했듯 아도르노가 '대중' 및 '대중문화'의 의미를 다시금 정의하였기 때문이며 아도르노 이후의 문화 연구가 이러한 재전유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 2장에서 나는 우선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중 및 대중문화란 그 이전과 어떠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 비교해볼 것이다. (2.1. 매체 연구에 대한 아도르노의 영향력) 그 후 나는 아도르노의 용어들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2세대 및 3세대의 수용과, 또한 북미 지역의 비판 이론가들의 수용을 조사해보고자 한다. (2.2. 아도르노의 매체 이론에 대한 수용)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아도르노가 매체 이론의 길잡이로 작용할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서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1장과 2장의 논의 이후, 우리는 대중 매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견해를 더욱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조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망을 위해서 나는 다음의 두 장을 통해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다음의 두 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1) 아도르노는 대중 매체에 대해서 정확히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3.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2) 문화산업에 대한 그의 분석을 통해서 그는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였는가 (4. 문화 산업에 내재되어있는 문제점들).
    세 번째 장에서 우리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대중 문화에 대한 아도르노의 견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게 된다. 이는 즉 다음과 같은 세가지 요점에 의해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1) 아도르노가 그의 이론을 통해서 분석하고자 한 대상은 무엇이며 (3.1. 문화산업론의 목적), 2) 그의 이론에서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으며 (3.2. 문화산업에 대한 아도르노의 진술), 3) 문화산업에 대해 아도르노가 그와 같은 관점을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3.3.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지니는 의의). 이와 같은 문화산업론에 대한 철저한 재구성은 향후 본고에서 언급되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의 범위를 한정시킨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네 번째 장에서는 세 번째 장에서의 논의를 기반으로 문화산업에 어떠한 문제점들이 내재되어있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미 문화산업론의 의의를 살펴보는 3.3 장에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문화산업의 구조를 바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거나, 혹은 대중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그 문제점들을 예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을 논의 한 바 있는데, 4장에서는 그러한 문제점들을 문화의 생산적 측면 (4.1. 대중 문화의 생산에 있어서의 변화) 과 문화의 수용적 측면 (4.2. 대중에 의한 수용에 있어서의 간섭)에서 더욱 구체화 해보고자 한다. 4장의 논의는 문화산업이 지니고 있는 요소들이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결코 중립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아니며, 또한 그러한 요소들이 문화적 생산 및 그 생산품들 자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이후의 세 장들은, 그러나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비단 대중문화 및 문화상품에 대한 비판적인 조망만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문화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술의 근본적 계기를 획득하기 위한 요소들 또한 함께 제시함으로써 대안적 문화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다는 본고의 궁극적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에 대한 논증은 다음의 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1)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특정한 작품이 '예술작품'으로 간주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 즉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미적 계기란 무엇인가 (5. 예술작품의 근본적 계기들), 2) 그렇다면 현재의 매체들 가운데에 아도르노가 제시한 예술의 근본적 계기들을 실현한 문화적 생산물이 실존하는가 (6. 대중문화의 반성적 계기들) 3) '대안적 매체'가 지니고 있는 반성적 계기와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 사이에는 어떠한 유사성이 존재하는가 (7. 대중매체의 대안적 형태에 대한 아도르노적 숙고)
    3, 4장에 거쳐서 문화산업 및 문화상품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이 제시되었다면, 5장에서는 특정한 문화적 생산물이 문화상품의 한계를 벗어나서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 필요한, 아도르노에 의해 제시되는 '미적 계기'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규명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주로 <<미학 이론>>에서 중점적으로 제시되는 예술과 사회 사이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질 것인데, 본고에서는 우선 예술이 현실에 대한 반영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을 분석하고 (5.1. 예술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에 대한 반영), 또한 그러한 동시에 예술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는 그의 주장을 살펴볼 것이며 (5.2. 사회에 대한 예술의 자율성), 궁극적으로 사회에 대한 예술의 종속성과 자율성이라는 변증법적 구조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해명해보고자 한다. (5.3. 예술과 사회의 변증법). 5장에서의 논의를 통해서 필자는 아도르노의 관점 안에서 문화적 생산물의 예술적 요소와 비(非)예술적 요소를 구분하는 기준을 설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6장에서는 5장에서 논의된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가 문화적 생산물들 사이에서 발현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그러한 사례들로서 '인디 문화'와 "누벨바그 운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물론 이러한 실증적 조사가 그 정도성에 대한 논의, 즉 실제 세계의 문화적 생산물들이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적 계기를 '얼마만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관한 논의로 치달을 때의 무의미함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6장에서의 논의는 개별적 형태의 작품들에 대한 세부적인 보고보다는 그러한 '대안적 생산물'들이 어떠한 지점에서 문화상품의 한계점을 극복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6장에서의 논의는 인디 문화와 누벨바그 운동의 범위를 설정하고 (6.1. 새로운 형태의 매체 출현), 그러한 매체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상품과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 (6.2 '새로운 매체'와 대중 매체 사이의 차이점들) 으로 구성되어있다. 6장의 논의를 통해서 필자는 현재의 모든 문화적 생산물들이 문화산업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대안적 형태의 문화적 생산물들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7장은 본고의 모든 논의를 종합하는 장으로서, 궁극적으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과 미학 이론이 어떻게 대안적 형태의 매체에 대한 예시로 작용하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5장에서 제시된 아도르노의 미적계기와 6장에서 제시된 대안적 매체들의 반성적 계기들이 재소환 될 것인데, 필자는 양자 모두 '부정성'의 이념을 실현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라 7장의 논의는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부정성의 이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장과 (7.1. 미적 계기의 종합으로서의 '부정성'의 이념) 그러한 부정성의 이념이 누벨바그 영화들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해명하는 장 (7.2. 새로운 형태의 매체에서 이루어지는 부정성의 실현), 그리고 누벨바그 영화들이 지닌 특징들과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 사이에 관찰되는 공통점 (7.3. 대안적 매체의 반성적 계기와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 사이의 공통점) 으로 구성되어있다.
    8장은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여태까지의 논의를 종합하고 대안적 매체의 출현에 대한 선구자로서의 아도르노의 역할을 다시 검토해보며 이러한 연구가 향후 매체 담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예측 해볼 것이다 (8. 결론: 아도르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로의 회귀: 안티테제의 기수들). 특히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서 인디 문화와 누벨바그 사조의 영화들이 향후에 나아갈,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5. 연구 의의: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주로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기존의 인식을 재고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이를 바탕으로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인디 문화의 연원을 탐색할 수 있으며 또한 인디 문화의 향후 방향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됨. 특히 누벨바그 사조의 영화 매체와 근미래의 매체들에 대한 수용 이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됨.

긴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 현재 미비한 부분이 아무래도 7장의 논의와 그에 대한 참고문헌쪽인 것 같은데... 읽으면서 자연스레 느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본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7장에서의 논의를 사실 어떻게 이끌어나가야할지 아직은 조금 막막합니다. 그리고 5장 내용은 제 석사 논문의 한 파트였기도 했는데, 대략적인 감은 잡히지만 석사때와 똑같이 쓸수는 없으니... 조금 더 많은? 자세한? 문헌들을 참고하고 싶은데 마찬가지로 어떤 문헌들을 참고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런 분야 관련해서 전공하고 계신분들이 있으시다면, 많은 가르침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지난한 연구계획서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 그리고 사실 프랑크푸르트 2, 3세대, 그리고 영미 지역에서의 아도르노 수용에 대한 부분도 사실 어떤 문헌을 참고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략적으로 생각에 두고 있는건 있긴한데요.. 선생님들 회초리를 맞을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떨립니다....

그리고 계획서 안에 '예시'라는 단어가 반복되는데 exemplify한다는게 아니고 foreshow한다는 겁니다. 중간에 한자를 넣었는지 안 넣었는지 까먹어서 다시 적습니다.

ps. 다 쓰고나니 느낀건데, 사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맥락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석사 학위 논문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래도 되는건가요.....?

ps2. 약속으로서의 사랑: 언약신학을 통해 바라본 그리스도교적 사랑 개념 - 종교철학 - 서강올빼미 (owlofsogang.com) YOUN님의 게시글을 보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ps3. 방금 알게된 사실인데 저 김경주 시인, 서강대 철학과 졸업생이시네요. 놀라운 우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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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서강 올뺴미 사이트의 포멧이 긴 글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직접 게시글 긁으셔서 워드에 붙여넣은 후에 읽으시면 편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아도르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보니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시고자 하는 연구의 요지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a)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도르노가 대중문화와 문화상품을 비판하였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는데, (b) 글쓴이님은 아도르노가 대안적 문화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견하였다고 해석하시는 것이죠? 아마 (a)라는 해석적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아도르노 학자들 몇 명이 논적으로 전면에 부각되면 논의를 훨씬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은 (b)라고 해석하는 다른 해석자들이 있다면, 그 해석자들은 누구이고 글쓰이님의 아도르노 해석은 그들과는 어떤 점에서 더욱 차별화되는지를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7장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5장과 6장이 상당부분 반복되어야 할 것처럼 보여요. 물론, 내용을 반복하는 것도 글쓰기 방법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구성상 아주 추천할 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5장이나 6장과는 차별화되는 7장만의 핵심이 무엇인지가 좀 더 전면에 드러나면 좋지 않을까 하네요. (그 핵심이 '부정성'의 이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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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무려 7장으로 구성되고 5장까지는 결국 아도르노 미학 이론의 소개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좋지 않은 구성입니다. 그리고 6장도 이미 해당되는 학술지 기고문들이 나와 있을 같습니다. 거기에 본인만의 '조사'연구를 덧붙일 자신이 있나요? 게다가 가장 핵심적인 테제가 무려 7장에서나 제시되고 알맹이가 채워질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습니다. 박사 논문은 알맹이를 어느 정도라도 확보한 다음에 쓰는 것입니다. 게다가 알맹이가 채워져도 그다지 새롭지 않은 얘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뭐, 서방에서 먼저 다뤄진 인문학의 어떤 주제든 한국 사람이 새로운 학술적 기여를 하는 것은 극히 힘들지만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나서는 것이 어떨까합니다. 즉 아도르노 미학이론을 전제하지 말고 아도르노 미학이론 자체를 논쟁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을 하이데거의 미학, 랑시에르의 미학, 미적 다원주의/포스트모더니즘 미학, 루카치류의 마르크스주의 미학, 프레드릭 제임슨/피에르 마슈레의 미학 등과 대결시켜 그것의 고유성과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거나 그것의 동시대적 의의를 주장하거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접근은 서방에서도 현재진행형이라 축적된 것이 많지 않아 논문의 새로움이/본인만의 목소리가 더 돋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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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회초리를 더 맞고 싶은데 지금 지하철로 이동 중이라서 진지한 답변을 남겨드리기가 조금 힘드네요. 귀가하는데로 답변 남겨드리겠습니다. 두분 모두 좋은 오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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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taa님의 의견에 저도 좀 동의가 됩니다. 아도르노라는 거인의 이론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것이 어떤 예지력을 지녔고 오늘날까지 유효한지를 밝히는 것 만으로는 독자로부터 어떤 강렬한 흥미를 자극하기에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인디 문화나 누벨바그 문화라는 어떤 특정한 문화를 겨냥해서 그것이 긍정적이다 혹은 다른 문화들은 부정적이다 이렇게 특정 문화 사조들을 애초 규정하고 출발하는 게, 첫 째 논문 전략의 측면에서 좋은 방법인 지 잘 모르겠어요. 좀 위험한 방법인 거 같기도 하구요. 두 번째로, 저는 아도르노 이론은 잘 모르지만, 맑시즘이나 비판이론의 기본적 입장에서, 어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 내에서 어떤 문화가 만들어 지는 그 메커니즘 기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게 핵심이지, 어떤 a 문화는 좋고 다른 어떤 b 문화는 좋지 않다 이것을 규명하는 게 핵심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컨대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의 니즈 이론을 살펴 보면, 한 주어진 사회 내에 있는 다양한 니즈들의 우위, 좋은 니즈와 나쁜 니즈 이런 식으로 하이어라키를 찾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보다는 예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어떤 니즈는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다른 어떤 니즈는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되는가, 그런 니즈의 역사적 형성 과정 변화 과정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맑히는 게 목적이지, 어떤 특수한 규범적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특정 대상을 비판하는 게 목표가 아닌 것으로 보이거든요.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할 것의 초점은 자본주의적 생산 기제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그래서 인디 문화가 어떤 긍정적 문화로 단순히 전제되고 출발되는 것에 약간 의문이 드는 게, 이 인디 문화는 자본주의적 사회와 생산 구조와 어떻게 엮여 있는지도 좀 더 명확히 설명되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 생각이 들어요. 과연 이 문화가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그물망을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어떤 혁명적 문화인지도 의문이구요. 그것을 설득력있게 논의해 주실 수 있다면 독자도 설득될 것 같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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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멘트 감사합니다. 우선 첫번째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네요. 부끄럽지만 많이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주로 신혜경 선생님과 서현정 선생님이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셨는데, 두분 모두 <영화투명성> 등과 같은 아도르노의 후기 저작에 기반하여 특정 시점부터 특히 영화 매체에 대한 아도르노의 관점이 '전환'되었다는 입장을 많이 취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즉, 아도르노의 주저들에 이미 대중 문화의 반성적 계기가 서술되어있었으므로, 아도르노의 관점이 '전환'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도르노의 미학적 관점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러한 관점에 부합하는 예술작품이 있고, 또한 부합하지 않는 예술 작품이 있으며 후기 아도르노는 그러한 '부합하는 예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라는게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윤님의 지적에 간단하게 답해보자면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b)라는 입장의 학자들은 우선 신혜경, 서현정 선생님과 미리엄 한센을 들 수 있겠지만 그들의 견해마저도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적절하게 해석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답변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아직 선행 연구가 많이 부실한건 사실입니다.

두번째로 논문의 구성적 측면에 대해 지적해주셨는데, 5장 및 6장의 내용과 7장의 내용이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석사 논문을 작성할 때에도 비슷한 장을 구상했었는데, 당시에도 많은 지적을 받았었습니다.. 박사논문에서 조금 더 자세히 해명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답변을 드리자면 제가 생각한 5장의 목표는 <<미학 이론>> 및 <<부정변증법>>을 통해서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 아도르노가 제시하는 미적 계기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즉, 이 부분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문화 산업, 혹은 문화 상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 에 대한 아도르노의 대답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6장은 그렇다면 아도르노가 제시한 '문화 상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요소들'이 실현된 예술 작품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망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6장의 문제점은, '문화 상품의 한계를 극복했다'라는 말 자체가 너무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형태의 예술작품들이 단지 문화 상품이 보여주는 특징들로부터 벗어났다고 해서, 그것들이 "문화 상품의 한계점을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여전히 존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호함을 해결하기 위해 저는 6장과 7장을 분리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제시하는 접근 방법은 6장에서 1) 문화 산업과는 구분되는 형태의 예술 작품들을 제시 및 정의하고 2) 그러한 작품들이 문화 상품과 어떠한 점에서 구분되는지 밝힌 후에 3) 7장에서 그러한 구분점들이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에 어떻게 부합하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 부합점의 핵심이 '부정성'의 이념인 것인가, 라고 질문해주셨는데... 이 부분은 아직 제 머릿 속에서도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답변을 해보자면 '부정성'의 이념은 5장에서 아도르노의 미적 계기를 해명하는 부분에서 이미 설명이 이루어질 것이고, 7장에서는 이 누벨바그 영화들이 부정성의 이념을 영화 안에서 실현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영화들이 아도르노가 제시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 작품에 부합하게 된다 라는 주장을 펼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7장의 주된 목적은 "이론으로서의 '부정성'이라는 것이 실제 예술 작품 안에서 '형상화'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 대한 해명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답변이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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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윤님의 댓글을 보고, 또 제가 댓글을 남기면서 든 생각인데, 6장과 7장을 통합시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 논문이 7장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내 박사 학위 기준으로 보통 7장에서 길게는 9장 내외로 많이 구성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7장이냐 9장이냐가 아니라, 각 장의 내용이 얼마만큼의 개별적인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논문 전체의 내용을 구성하는데에 얼마만큼의 긴밀한 기여를 하고 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논문이 초기적인 구상 단계이기 때문에 독립성과 긴밀성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7장으로 구성되어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5장까지는 결국 아도르노 미학 이론의 소개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최소한 본고의 1장과 2장에서 하고 있는 작업은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대중 매체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1장) 이와 같은 문제점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가 왜 아도르노의 시선을 빌려야하는지에 대한 정당성을 제시하는 것 (2장) 이기 때문입니다. 1장과 2장의 작업은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도르노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결론적으로 "3~5장은 결국 아도르노 미학 이론의 소개고, 이것만으로도 이미 좋지 않은 구성이다"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항상 딜레마인데,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논함에 있어서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이 무엇인지를 해명하지 않고 논의를 이끌어나가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논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본고의 목적이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그 자체에 대한 해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긴합니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논의의 밑바탕부터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6장의 내용은 의외이지만 생각보다 이에 대한 학술 논문이 많이 출간되어있지 않습니다. 특히 후기 아도르노와 누벨바그 영화의 출현은 시기상 어느정도 맞물린다고 볼 수 있는데, 아도르노가 영화 매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함에 있어서 누벨바그 영화라는 대안적 형태의 영화 매체에 대해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지도교수님께 여쭤본적이 있는데, 아마 그 나이의 아도르노가 학문적으로 active 하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네요.) 아도르노는 왜 누벨바그 영화라는 대안적 형태의 영화 매체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라는 주제는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하지만 양자를 연결짓는 연구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도르노는 '오버하우젠 운동'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오버하우젠 운동'은... 쉽게 말하자면 독일판 누벨바그 운동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쉽게 말할 주제가 아니긴 합니다. 또한 아도르노는 오버하우젠 운동을 <영화투명성> 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이에 대한 논평은 정말 제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양자를 연결짓는 연구가 많이 없는 듯 싶습니다.

그래서, 음.. 여기까지의 답변을 정리해보자면 논문이 7장이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을 재구성하는 부분은 3-5장이며, 6장의 내용은 생각보다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의 내용을 조사할 자신은 당연히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논문의 핵심이기도 하구요.

조금 더 덧붙이자면, 누벨바그 영화 자체가 아도르노 본인이 생각한 '대안적 형태'의 매체가 아니라거나, 혹은 대중 매체의 한계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논문의 구상은 아도르노 본인의 미학이론, 혹은 미적계기에 비추어보았을때 이러한 형태의 매체를 진정한 예술의 일환으로 인정해야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뭔가.. 그래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첫번째로

이 부분은 1장에서 해결될 문제입니다. 현대 대중 매체의 문제점을 매우 적절하게 제시할 수 있고, 또 그러한 문제점이 많은 독자들에게 시의성을 지니게 된다면, 자연스레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분석틀로 제시될 아도르노의 이론 또한 시의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연계하여 2장에서도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에 대한 수용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 또한 적절하게 제시되야 할 것이구요. 결론적으로 1-2장에서의 문제제기가 얼마나 탄탄하게 이루어지느냐가 관건이겠습니다.

제 논문의 전략은 '대중문화 = 나쁜문화 / 대안적 문화 = 좋은문화' 로 이분화한 후, 이에 맞춰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해명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3장과 4장의 논의를 분리하게 된 것인데, 즉 3장에서 제가 하게 될 작업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을 재구성함으로써, (아도르노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중 문화가 지닌 특징들을 서술하는 것이고, 이후 4장에서 그러한 대중 문화의 특징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대중문화가 왜 나쁜가? 에 대한 해명이 포함되어있다는 점에서, '대중문화 = 나쁜문화'라고 전제하는 것과는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인디 문화나 누벨바그 문화를 서술하는데에 있어서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합니다. 저는 인디 문화나 누벨바그가 애초부터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인디 문화와 누벨바그 문화의, 대중 문화와는 대비되는 특징들을 서술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안적 문화의 특징들이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적 계기와 지니고 있는 유사점을 해명할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말하고자하는 대안적 문화는 '좋은문화'가 아닌,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적계기에 부합하는 문화'가 될 것이고, 이는 좋음과 나쁨을 떠난 논의가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인디문화 및 누벨바그 영화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생산물들이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적 계기에 부합하지 않을 때에는 '좋은' 문화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에 대한 내용을 본고의 5.3 장

에서 충분히 해명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해당 부분을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문화적 생산물을 '대중문화에 대해 종속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으며, 이러한 요소를 얼마만큼 포함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아도르노에게 해당 문화적 생산물이 문화 상품으로 받아들여질지, 혹은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질지가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대중들에 의해 '대중 문화'라고 받아들여진다고 할지라도, (혹은 그러한 수용과 관계없이) 그러한 생산물이 자율성이라는 요소를 충분하게 포함하고 있다면, 아도르노에게 있어서는 당연히 예술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자율성이라는 요소를 충분하게 포함하고 있다'라는 말 자체도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으며 아도르노에게 있어서는 이 자율성과 종속성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그 자체가 예술의 한 계기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찌됐든 이러한 자세한 서술은 논문 안에서 해명되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PSB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구성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인디 문화와 자본주의적 사화 및 생산 구조와의 관계는 6.2 장의 "'새로운 매체'와 대중 매체 사이의 차이점들"에서 설명될 것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대중 문화와 아도르노의 미적계기를 구분하는 가장 큰 지점 중 하나로서 자본에 대한 종속성의 유무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과연 이 문화가 자본주의적 생산 구조의 그물망을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어떤 혁명적 문화인지도 의문"이라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인디 문화"라는 말 자체도 아도르노에게는 변증법적 숙고가 필요한 지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디 문화"라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닌 속성이 되겠지요. 따라서 위의 답변과 어느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본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은 "인디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인디 문화가 진정으로 Independent 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알고 봤더니 그 요소가 아도르노가 제시한 미적 계기와 유사 (사실 '일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만) 하더라! 라는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결론이구요.

충분한 답변이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남겨주신 세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제 논문의 작업을 설명하고, 여러분들이 제기해주시는 의문점 및 문제점들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이 무척 즐겁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도 참여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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