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정부 형태 이름들에 대한 제안

로마사 논고에서 등장하는, 정부 형태의 이름들에 대한 제안입니다. 생각나는 걸 쓴 것이다 보니, 구체화를 위한 많은 다른 제안들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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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도, 거기서 정부 형태의 이름들을 등장시킨 것도, 상세히 분석하자는 의도 없이 작성되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대략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 people의 정부, 정치에서의 역할을 더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그가 people을 중시한 더 큰 의도에 부합하도록, 정부 형태의 이름들이 상세해져야 하며, 여기에 본 작업의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는 monarchy가 tyranny로 갈 수 있고, aristocracy는 oligarchy, democracy는 anarchy로 간다고 로마사 논고에서 쓰고 있다. 그가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Prince만큼이나 people을 중시했다면, 이것을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어느 정부 형태든 people이 악한 경우가 있다.

  • Monarchy는 tyranny가 될 수 있다: Prince가 악할 때; people이 악하면, 그야말로 anarchy가 될 것이다 - 군주가 끌어내려질 것이다.

  • Aristocracy는 oligarchy가 될 수 있다: 귀족들이 악할 때; people이 악하면, 마찬가지의 이유로 anarchy가 되거나, 덜 극단적으로는 ochlocracy가 될 것이다.

  • Democracy는 anarchy가 될 수 있다: 통치되는 people이 악할 때; 지도자 시민이 악하면, ochlocracy를 위장한 dictatorship이나, anarchy보다 심각한 "chaos"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형태의 이름은, 세 개의 중도인 monarchy, aristocracy, democracy를 우선 갖는다. 이어서, Prince가 악할 때의 네 이름과 people이 악할 때의 두 이름을 가진다. 이로부터, 정부 형태의 이름은 아홉 개가 된다 - 만약 "chaos" 같은 게 정부 형태의 이름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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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안 읽어보아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러 정체의 구별은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것과 거의 유사하네요. 이에 기반해서 유추해보자면, 아마도 각 정체들의 이름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뉜 기준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인 것 같은데 맞을까요?

만약에 피지배자들의 악(?)을 다른 규준으로 삼아 정체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라면 이것이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말씀해주신 바에 따르면 마키아벨리의 각 정체의 구분 기준은 지배자(들)의 좋음과 나쁨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만일 피지배자인 people(?)이 악(?)하여 그들이 기존 체제를 전복한다면 체제를 전복하는 이 사람들은 지배자가 되겠지요. 따라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democracy의 나쁜 형태로 귀결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 역시 너무나 애매한 표현이고 따라서 그들이 악할 때 이들이 기존 체제의 지배자를 끌어내린다는 설명도 사실 마키아벨리의 논의를 몰라서 그런지 선뜻 이해되지 않네요. 어떤 논리가 있을까요? 악하다는 게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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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감사합니다. 계속 제 논리에 매몰되어 있었더니, 정확히 말씀해주신 부분(무엇을 악이라고 명명했는지와 같은 마키아벨리의 의도/논증)은 뒷전이었던 것 같네요. 또 확실히, 러프만 면밖에 없는 사고 전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기억나는 한에서, 마키아벨리는 "끌어내린다"기보다, 그렇게 "이행한다" 정도로 (예를 들면 democracy에서 anarchy로 이행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또 러프하게도, 피지배자의 악이 행동으로 드러나기 이전까지는 해당 정체에 속하기 때문에, 그 정체의 people의 악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Prince의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monarchy는 tyranny로 이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people의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monarchy는 anarchy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쓰고 보니, Prince와 people의 지위와 부담이 다르고, 1인이냐 다수냐의 차이도 있는데, 과연 유비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이 됩니다.)

Democracy의 악한 이름들에 이것들이 해당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지배되는 동료 시민이 악하면 ochlocracy도 anarchy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는, democracy에서 정반대로, "지도자 시민"이 악할 때를 말했습니다.)

이렇게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더 구체화(?)하려던 계기는 다음의 사고 흐름에서 기인합니다: 마키아벨리는 people의 마음을 얻지 못한 Prince를 최악으로 여겼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Prince 또한 동기 부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물론 국가도, 자신도 망하고 쇠한다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망하고 쇠하기에 마음을 얻어야 하는지 아는 것은, people의 본성을 아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즉 Prince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가 people의 (또한 자신의) 본성을 알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피지배층의 악이 낳는 귀결을 말하는 것은 어떤가?

《군주론》에서 악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 등이 있겠네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추가) 애초에 로마사 논고에서, 영역본이기는 하지만, people이 악해서라는 말이 아니라 "from their inherent badness"라고 되어 있군요. 그렇다면 "people이 악할 때 anarchy로 이행한다"는 말을 어디에서 보아야 하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적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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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짜리 질문지로 정리하다가 생각난 내용을 덧붙입니다.


나 자신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 첫째, Prince는 그의 지위와 부담을 가지지만, people에게도 그와 같은 것이 있는가: 그들에게 그런 것이 없다면, 그들은 anarchy로 이끌 만한 존재가 아니다.

  • 둘째, dictatorship은 정부의 형태가 아니다: 이것이 지속될 경우, aristocracy에서 우려되는 것(coup d'etat)이 마찬가지로 발생하며, 그것이 대개 일회적이지 않으므로 결국 anarchy가 된다.

  • 셋째, democracy의 이행에서 양면으로 나누는 것이 부당할 수 있다: 통치하는 시민과 피지배 시민이 Prince와 people만큼 수직적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한 쪽의 악이 다른 쪽의 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심지어 '한 쪽의 악', '다른 쪽의 악'이라는 말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 넷째, 궁극적으로 ochlocracy는 통치하는 시민의 힘을 뺏는 월권 행위로 anarchy와 같고, "chaos"도 통치하는 시민이 제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anarchy로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정부 형태가 아니라 정부 형태의 여러 면의 이름을 말하는 셈으로, Machiavelli가 말하려던 바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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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습을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10장-11장을 읽다가 이 부분이 바로 생각나서 덧붙이는 글
주의: 이하의 commitment는 군주에게 해당한다; 대통령군주가 아니다. (항상 이렇게 덧붙여야 한다면, 달리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부화뇌동하는 것만큼이나, 고집 부리는 것도 나쁜데 말이다.) (어째서 내가 군주에게 이렇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지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 형태를 군주정, 귀족정, 금권정(혼합정/공화제)으로 나누고, 각각이 왜곡되면 폭군정, 과두정, 민주정이라고 말한다. (금권정이 왜곡된 것이 민주정이라는 말에 약간 당혹스러웠다.)

처음 이 글을 쓸 때 people이 "악하다"고 한 것의 의미만큼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각 정부 형태가 "왜곡된다"는 것의 의미가 분명해져야 한다. 군주정-폭군정에서, 폭군은 자신의 이익을; 군주는 신민의 이익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대상이 누구냐, 그리고 어디로 (관심이) 향해 있느냐의 문제에서 "왜곡"되었다고 하는 듯하다. 과두정에서는 귀족들의 "악덕"을 말하는데, 그가 그 앞 장들에서 말한 "미덕"이 이해되는 방식을 고려하면 "악덕"은 "나쁨"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여전히 모호한 표현이지만).

Digress note: 금권정이 재산 자격을 충족하는 누구나 동등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금권정이 민주정의 왜곡된 형태여야 하지 않은가?

글을 덧붙인 계기는 11장 첫머리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피지배자에 대한 군주의 philia는 더 많은 선행에 있고, 군주는 훌륭하므로 피지배자의 복리 증진에 관심을 갖기에 그들에게 잘해 준다고. (천병희 역, p. 327.)

쓰다 보니까 오히려 모든 문장이 digress 같아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걸 궁극적으로 주장하려던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좀 의기소침해지긴 했는데, 어쨌든 나는 훌륭한 군주가 신민의 복리 증진에 관심을 가져서 그들에게 잘해주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첫째, 군주에게 신민의 복리는 부차적인 문제다. 혈통에 의한 군주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고 (그러지 않으면 신민들은 그가 단지 혈통의 덕을 보았을 뿐이라며 그에게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닌 찬탈자라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피정복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원래 군주 또는 자유를 되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입지를 다지는 일에서 신민의 복리는 one of them이다. 군사가 one of them인 것과 동등하거나 못한 수준으로 말이다. 군주는 신민의 복리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신민이 잘 대우받는다고 생각하도록 기만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둘째, 군주가 신민에게 잘해주더라도, 그들의 복리 증진에 관심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지위와 영토는 신민의 존재로 성립한다. 즉 그가 신민에게 잘해주는 것은 필요해서다. 그들이 잘 살든 못 살든, 그와는 크게 상관 없다; 그 자신의 평판과 이름(사적인 명예, 명성)이 상관 있고 중요하다. 오히려 특히 신민과 그 자신의 돈으로 일할 때 그는 낭비하면 안 되는데, 이렇게 근검절약하면 "외양과 결과에 미혹되는" vulgo인 신민들은 (사실 잘 살고 있어도) 못 살고 있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세금을 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못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못 살고 있는데도 베풀지 않는 군주는 악한 사람으로 보인다." (so forth.)

셋째, 피지배자(신민)를, 군주는 얼마나 사랑할 것인가: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우애(philia)를 가질 것인가?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 그들은 그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가 군림하기 위한, 통치하기 위한, 정복하기 위한, etc. 우리가 어떠한 수단을 사랑하는가? 수단으로서는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하는가? 그것이 심지어 "우애"라고 불리는가? 우리의 언어 관습은, 어떠한 수단에 감사한다는 표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생각할 때, 그것은 어떠한 수단의 존재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소유임에 있어 감사한다는 것이고, 만약 화자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감사라는 표현은 "다행"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요컨대 군주는 신민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이 군주일 수 있고, 다른 나라를 정복하려 시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이름이 역사서와 어쩌면 일부 학계에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그들을 사랑하는 경우는, 그가 박애적인 사람인 경우에서나 성립할 것이다.

  • 내 생각에 마키아벨리는 이 주장에 어떤 의미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gloria (영광) 개념이 patria (조국) 개념과 연관된다는 연구가 옳다면 군주는 그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신민으로 구성되고 성립하는 조국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신민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에 차이가 있고 그들 모두가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악하다면, 그는 신민을 사랑하는 척 기만할 뿐일 것이며, 그가 박애적인 경우에나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 이것이 훌륭한 군주라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사람의 본성이 악할 때, 군주도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 그도 한 명의 군림할 필요가 있는 존재일 뿐이므로 그에게 신민은 수단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 쓰고 넘어간 것 같은 지점: 피지배자에 대한 군주의 philia는 선행에 있는가?

이 말은 이렇게 이해된다. 군주가 신민을 사랑할 때, 그것은 그의 선행을 통해 증명되는가?

'선행'이 먼저 정의되지 않으면, 선행으로 인해 그의 사랑이 증명되는지 알 수가 없다. 최소한 두 의미의 '선행'을 고찰해야 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행 개념 - 그에게 좋음이란 무엇인지의 논의가 여기에 연관될 것이다 - 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생각하는 (군주의) 선행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 후자부터 쓰자면 - 전자는 논문을 찾아보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 어떤 행위가 좋은 것이려면, 자신의 몸 또는(OR) 마음을 고양하거나(OR), 행위자에게 금전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 이때 고양은 향정신성 약물 같은 것으로 얻는 고양감이 아니라, "이전에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는, "자신을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또는 그럴 개연성이 높도록" 하는 고취를 말한다.

Digress note: 어떤 사람이 자기 생각에 비판을 받아 공격받은 느낌에 의기소침해졌다고 하자. 그것은 그에게 좋지 않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좋은 것이다. 비난이 아니라 비판인 한, 그를 보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비판이 보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비판은 그에게 부적절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주가 신민에게 philia를 가질 때, 그들을 가르치거나 시혜함을 통해 (단, 타인의 돈인 편이 좋겠다) 충분히 증명될 수 있어 보인다. 어디까지나 사랑한다면 말이다: philia가 긍정적 감정인 한, 군주는 신민에게 그런 것을 가질 필요도 개연성도 거의 없다. 필요성 하에서, 군주가 신민에게 philia를 갖는 척할 것은 확실하다. 그는 이미 그들의, 나아가 인간의 악함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악한 존재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

많은 군주의 양태 중에서 그나마 사람에게 philia를 가질 법한 것은 자기 힘으로 군주가 된 경우다. 그러나 그 외에는, 혈통으로 되었든, 타인의 호의로 되었든, 범죄로 되었든 philia를 누구에게도 갖지 못할 것이다. 혈통으로 된 자도 역사나 주변에서 하극상과 배신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고, fortuna에 의한 자는 옹립된 이후 그것의 관여를 최소화하려면 늘 의심에 빠지지 않으면 안 되며, 범죄에 의한 자는 그가 옹립된 방식에 의해 반드시 모두를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힘으로 군주가 된 사람이라도 신민에게 갖는 philia란 요구(이득)에 의한 것이다. 신민이 없으면 군주일 수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되는 데 상당히 직접적이었던 자신의 군대에게도 그는 요구(이득)에 의한 philia를 가진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fortuna를 극복하고 군주가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인 즉 그들은 그가 군주가 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목수가 망치를 사랑하듯이 그의 군대를 사랑한다.

Note: 내가 요구(이득)에 의한 philia 외에는 불가능/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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