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신학』
첫 번째로 고른 책은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A Theology of Liberation: History, Politics, and Salvation)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성경』을 고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학창 시절 제가 가장 열심히 읽었던 그리스도교 관련 책들은 대부분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 계통의 책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해방신학』은 제가 그리스도교를 단순한 종교적 신앙의 차원을 넘어 사회와 역사, 인간의 해방이라는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하기 시작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해방신학』은 제게 ‘신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신앙인은 역사 속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던지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해방신학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후 제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줄곧 붙들고 있었던 ‘인간의 자유와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출발점에는 이 책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네 권 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어서가 아니라, 제 사유가 처음 출발한 지점에 놓여 있는 책이라는 의미에서 1번으로 꼽았습니다.
- 『이성과 혁명』
두 번째는 허버트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Reason and Revolution)입니다. 마르쿠제는 이 책에서 헤겔 철학을 단순히 과거의 관념론적 철학으로 다루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사상적 원천으로 다시 불러냅니다. 특히 헤겔의 ‘이성(Vernunft)’은 이미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긍정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고 이를 변혁하려는 ‘부정(Negation)’의 힘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은 현실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는 힘이 됩니다.
돌이켜보면 이 책은 제가 이후 헤겔과 마르크스, 그리고 서양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데 중요한 하나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그 모순을 인식하는 인간은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이후 사르트르와 루카치를 읽을 때에도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질문이었습니다.
- 『존재와 무』
장-폴 사르트르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 읽은 책은 『자아의 초월성』(La Transcendance de l'Ego)이었고, 이후 『존재와 무』(L'Être et le Néant)를 거쳐 『변증법적 이성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으로 나아갔습니다. 『존재와 무』를 읽는 데만 꼬박 반년이 걸렸고, 『변증법적 이성비판』 역시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책을 읽는 것이라기보다 책과 씨름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을 것입니다.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가고, 개념 하나를 붙들고 며칠씩 생각하곤 했습니다.
특히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읽으면서는 개인의 자유와 역사적 조건을 어떻게 함께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역사적·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자유로운 개인들의 실천이 어떻게 집단적 행동으로 결집하고, 그 실천이 다시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천(Praxis)’과 ‘실천적 타성태(practico-inert)’의 긴장 속에서 저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책이 다음 책이었습니다.
-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게오르그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Zur Ontologie des gesellschaftlichen Seins)을 읽게 된 건 한참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붙들고 ‘소외된 현대 사회의 구조, 즉 실천적 타성태와 사물화의 조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주체적인 실천과 노동을 통해 자유와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던 무렵이었습니다. 루카치는 인간을 사회적 관계와 역사적 현실에서 떼어내어 이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현실 속에서 인간의 능동적인 실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그래서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은 제게 사르트르의 문제의식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네 권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책들이 아닙니다. 『해방신학』에서 시작된 ‘인간의 해방’이라는 문제는 마르쿠제의 『이성과 혁명』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하는 이성’의 문제로 이어졌고, 사르트르에게서는 자유로운 인간의 ‘실천’과 역사 형성의 문제로, 루카치에게서는 사회적 존재와 노동, 공동체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지금의 저는 이 책들을 처음 읽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어떤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게 되었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한계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인생의 책’으로 꼽은 것은 여전히 이 책들이 제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들이 다른 책을 읽게 만들었으며, 결국 제가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고민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생의 책’이라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기보다, 읽은 뒤의 나를 이전의 나와 조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네 권은 단순한 ‘인생의 책 네 권’의 목록이 아니라, 신앙에서 출발한 하나의 질문이 철학적 질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네 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들은 제가 지나온 독서와 사유의 길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네 개의 이정표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그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인간의 자유와 해방, 역사와 공동체,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바탕에 놓인 인간의 삶과 신앙의 의미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