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인 두 가지 정의로운 전쟁 개념

정의로운 전쟁이란 모델의 두 형태

<정의로운 명분의 전쟁>: 동기가 정의롭다면 전쟁도 정당화될 수 있다.
사례 1: 자신은 전적으로 무고하고 합법적인데, 상대에게 공격이나 침략을 당하는 경우다. 자기방어와 수호를 위한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례 2: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지만 상대에게 당한 불의에 대한 배상(복구)을 요구하는 경우다. 불량국가를 처벌하거나 폭군이나 독재자를 처단하기 위한 전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특징 1: 선한 편과 악한 편을 구분 짓는다. 즉, 두 전쟁 주체는 도덕적으로 비대칭적이다.
특징 2: 정의로운 명분의 전쟁 개념이 존속하던 시대는 근대 이전이기에, 전쟁의 권한은 한 개인에게 달려 있었다. 즉, 전쟁 개시의 동기 혹은 의도가 도덕적인가(혹은 순수한가)는 권력의 개인화를 전제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자신은 선한데 상대가 악한 행위를 행하는(혹은 행할) 자이면 전쟁은 개시된다.

근대 국가론이 등장한 이후, 도덕주의와 연결되어 있던 정의로운 전쟁 개념은 변모한다. 근대 국가론에 따르면 모든 주권국은 서로 동등하다. 모든 국가 사이의 위계는 최소한 법적으로 대칭적이다. 이에 선한 자와 악한 자, 심판자와 범죄자를 구분하여 이뤄지던 <정의로운 명분의 전쟁>은 <정의로운 수단의 전쟁>으로 변모한다.

<정의로운 수단의 전쟁>: 교전 수칙만 잘 지키면 전쟁도 정당화될 수 있다.
특징 1: 전쟁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특권이다. 그리고 전쟁할 권리는 자국의 권리에 속하므로, 전쟁을 선포하고 나면 그대로 수행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특징 2: 과거와 달리 이유와 동기를 따질 필요 없이 규칙만 준수하면 정의로운 전쟁으로 취급된다. 이제 문제는 이유나 동기가 아닌 형식이다.

전쟁이 형식적인 측면에 치우쳐서 도덕적인 측면이 배제되자 전쟁은 이제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형태가 변화됐다. 전후 대규모 국제기구(UN 등)이 설립된 것도 이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그럼 <정의로운 명분의 전쟁>이 더 좋은 것인가? 아니다.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 전쟁이라는 가장 비도덕적인 행위를 펼치는 정의로운 명분의 전쟁은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기에 훨씬 더 공격적인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멸절하려는 ‘총력전’의 형태를 띨 더 큰 가능성을 지닌다. 도덕에 입각하는 순간 나와 상대방의 위치는 절대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화해와 타협이란 상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자의적일 가능성이 높다. 피카츄 신을 믿으면 선이고 아구몬 신을 믿으면 악인가?

그럼 다시, <정의로운 수단의 전쟁>이 더 좋은가? 아니다. 법적 형태를 취하는 이 전쟁 모델에서는 위선적이게도 모든 도덕적 판단을 포기한 채 가해자와 희생자를 구분하기를 거부하게 될 위험이 있다. 두 전쟁 모델은 똑같이 잔혹하고 정당하다.


참고자료: 프레데릭 그로, 2024: 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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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해 "도덕적" 층위를 논하는 것이 일정부분 형용모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량 살상을 의도적으로 수행하는 전쟁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어 보이고, 철학자들 역시 굳이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전쟁"을 주장해야 할 이러한 이론적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어 보이거든요. 다만 위에서 논의되는 "정의로운 전쟁"은, 도덕적 층위가 아니라 정치적 층위에서 (때때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여요. 즉 시민들의 의지를 대리하여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국가에게 부여된 정치적 권리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도덕적 명분 (예컨대 상대가 침략했을 경우 자기방어를 할 수 있다) 이나 도덕적 규칙 (예컨대 민간인을 살상하지 않는다는 교전 수칙 등)만을 지킨다면, 전쟁 중 발생하는 일련의 비도덕적 상황에 대한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것이죠.

따라서 도덕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을 구분하려는 입장에 대해서, 이것을 다시 도덕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비판하는 것은 크게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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