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덕,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 제5장 요약

이병덕,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7.

제5장 이름의 의미와 기술주의

  1. 러셀의 기술주의

확정기술구가 진정한 단칭어가 아니라면, 무엇이 진정한 단칭어인가? 이름은 명백히 단칭어로 생각된다. 따라서 의미지칭이론에 의하면 ‘한 이름의 의미는 그 이름의 지칭체이다’라는 논제가 성립한다. 그러나 이 논제도 여전히 의미지칭이론의 네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이에 러셀은 일상적 이름들ordinary proper names이 확정기술구들과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는 기술주의Descriptivism를 주장한다. 따라서 확정기술구와 마찬가지로 일상적 이름도 진정한 단칭어가 아니며, 의미지칭이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위의 논제가 성립할 필요는 없다. 또한 일상적 이름들을 확정기술구들로 대체함으로써 앞서 제기된 네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1]

기술주의를 옹호하는 논증으로는 즉석 확인 논증the spot-check argument이 있다. 한 이름에 대하여 ‘그것이 누구냐’고 질문할 때, 질문받은 사람은 그에 대응하는 확정기술구를 제시하고 질문한 사람은 그를 통해 그 이름을 이해한다. 이름을 가르치고 배우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 이상의 기술구를 만들어내고, 배우는 사람은 기술구를 끌어낸다. 이러한 현상은 기술주의에 대한 중요한 논거이다.[2]

  1. 러셀 기술주의의 문제들

의미의 불안정성 문제

지칭이론에 의하면 한 이름은 특정한 확정기술구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한데, 문제는 사람마다 이름에 연관시키는 기술구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름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기 위해서 의미는 공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적인 명제를 정보적이지 않는 명제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던 그리스 철학자’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고 가정해보자.

(1)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

(2)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던 그리스 철학자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던 그리스 철학자’는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므로, (1)과 (2)의 전체 문장의 의미는 동일하다. 즉 두 문장은 동일한 명제를 표현한다. 그런데 (1)은 우연적으로 참이어서 우리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반면, (2)는 분석적으로 참이어서 실질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어떻게 동일한 명제가 한편으로는 정보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허구의 이름의 문제

(3) 셜록 홈즈는 탐정이다.

(4) 셜록 홈즈는 발레 댄서이다.

(3’) (∃x)(Hx & (∀y)(Hy ⊃ x=y) & Dx)

(4’) (∃x)(Hx & (∀y)(Hy ⊃ x=y) & Bx)

(‘Hx’는 셜록 홈즈를 기술하는 술어이고, ‘Dx’와 ‘Bx’는 각각 ‘x는 탐정이다’와 ‘x는 발레 댄서이다’라는 술어이다.)

직관적으로 (3)은 참인 반면, (4)는 거짓이다. 그런데 러셀의 기술주의에 따르면 (3)과 (4)는 각각 (3’)과 (4’)로 분석되고, (3’)과 (4’)는 모두 거짓이다. 왜냐하면 셜록 홈즈에 대한 기술을 만족하는 유일한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중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3)이라는 참인 문장을 거짓으로 분류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4)라는 거짓인 문장을 직관적으로 그것이 거짓이게끔 하는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에 의하여 거짓으로 분류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셜록 홈즈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떤 가능한 존재도 그것이 존재한다 할 때 그를 셜록 홈즈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러셀의 분석은 (3)과 같은 문장이 참이기 위해서 셜록 홈즈에 대한 기술을 만족하는 대상이 있어야((∃x)(Hx)) 한다고 주장한다.

러셀의 내재주의 인식론과 관련된 반직관적 함축

러셀에게 진정한 이름들이란 논리적으로 고유한 이름들logically proper names이고, 이들은 논리적으로 분석되지 않는 순수한 지시사들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지칭하는 것들은 의미론의 토대를 구성하는, 오류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이는 주체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 즉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시 이들은 감각자료들, 추상적 대상들, 그리고 인식 주체 자신이다.

그러나 이는 반직관적이다. 직관적으로 우리는 일상적 물체와 타인을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고, 또한 일상적 이름을 그가 직접 대면한 것을 지칭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셀의 입장은 의미론적 내재주의이다. 즉 인식주체가 이해하는 언어표현의 의미는 주체가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들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의미론적 내재주의에는 난점이 있다.[3]

  1. 설의 다발이론

기술주의의 세 가지 버전과 이론적 동기

(1) 이름은 특정한 기술구 또는 몇 개의 단순한 기술구들의 연언과 동등한 복잡한 기술구와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

(2) 이름은 기술구들의 전체 연언과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

(3) 이름은 기술구들의 한 다발a cluster of descriptions과 의미론적으로 동등하다.

러셀과 프레게는 (1)의 기술주의를 옹호하였다. 그러나 이는 의미의 불안정성 문제에 직면한다. 또한 (2)의 기술주의도 난점이 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한 이름과 연관된 모든 기술구들을 전부 다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설은 (3)의 기술주의, 다발이론을 제시한다. 이름은 이름과 연관된 기술구들을 충분히 많이 만족하는 특정 대상을 지칭한다.

다발이론의 이론적 동기는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연관된 충분한 수의 진술들이 거짓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진술들이 거짓으로 밝혀져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런 점에서 (3)은 설득력을 가진다.

다발이론의 장점

첫째, 다발이론은 의미의 불안정성 문제를 덜 심각하게 만든다. 한 사람이 한 이름에 연관시키는 기술구들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를지라도 많은 부분이 서로 겹칠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수의 기술구들이 겹친다면 사람들 간의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다발이론은 이름에 연관되는 기술구들을 모두 알아야 함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2)의 기술주의가 직면하는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셋째, 정보적인 명제를 정보적이지 않은 명제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를 덜 심각하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라는 문장을 이해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을 반드시 특정한 기술구와 연관시켜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발이론의 문제점

첫째, 설의 다발이론은 (1)과 (2)의 기술주의를 절충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술주의의 두 버전 사이에는 매우 다양한 경우들이 존재하는데, 다발이론이 이 매우 다양한 경우들 중 어디서부터 충분한 수의 기술구들을 포함하는 다발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한 원리적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둘째, 다음 문장을 보자.

(5) 어떤 사람들은 마크 트웨인이 새뮤얼 클레먼스라는 것을 모른다.

다발이론에 의하면 종속절 ‘마크 트웨인은 새뮤얼 클레먼스이다’가 표현하는 단일한 명제가 없게 된다. 사람마다 ‘마크 트웨인’과 ‘새뮤얼 클레먼스’에 연관시키는 기술구가 다르기 때문이다.[4][5]

나아가 내가 (5)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마크 트웨인과 새뮤얼 클레먼스가 동일한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크 트웨인’과 ‘새뮤얼 클레먼스’에 같은 기술들의 집합을 연관시킬 것이다. 그러한 기술구의 다발을 C'라고 한다면, (5)는 다음과 동치이다.

(6) C'를 만족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고, C'를 만족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으며, C'를 만족하는 사람은 누구나 C'를 만족한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모른다.

이는 다시 다음과 동치이다.

(7) C'를 만족하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모른다.

그러나 (7)은 내가 (5)를 주장하면서 의미한 바와는 전혀 다르다.


[1] 확정기술구가 어떻게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지는 제4장을 참조하라.
[2] 이 단락은 라이컨, 『현대 언어철학』, 서상복 역, 책세상, 2021. p87을 참고함.
[3] 의미론적 내재주의의 난점은 제8장과 제10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4] 이 단락은 의미의 불안정성 문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발이론의 장점에서 서술했듯이 기술구들의 다발은 서로 상당 부분 겹칠 수 있다. 충분한 수의 기술구들이 겹친다면 ‘마크 트웨인은 새뮤얼 클레먼스이다’가 표현하는 명제가 단일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언어 사용자들이 이를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다발이론이 아니라 러셀의 기술주의에 가해지는 문제라는 점에서 저자가 라이컨의 책을 참조하면서 잘못 옮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5] 이후의 내용은 본서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고 라이컨, 『현대 언어철학』, 서상복 역, 책세상, 2021. p98-99를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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