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에서 만난 러셀, 융, 쇼펜하우어

푸켓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푸켓의 명소 중에 ‘프라 풋타 밍몽콘’, 일명 'Big Buddha'라고 하는 장소가 있더라고요. 가이드 분 말씀에 따르면, 2004년 푸켓에 쓰나미가 몰려온 뒤로 복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푸켓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태국 왕실이 세운 불상이라고 합니다. 산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불상인데, 쓰나미가 온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 불상을 구경 갔다가 철학자들과 만나게 되어서 놀랐네요. 불상 주위에 여러 과학자들, 철학자들, 명사들이 불교의 우수함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들이 쓰여 있는데, 그 중에 러셀, 융, 쇼펜하우어의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각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러셀: 불교는 진리 분석의 철학과 과학의 결합, 합리주의의 종교이다. 불교는 과학이 아직 알 수 없는 진리를 보여준다. 불교의 승리는 정신의 승리다.

융: 나는 불교가 세상이 알고 있는 가장 완벽한 종교라고 믿는다. 부처의 철학, 진화론과 카르마 법칙, 선과 악을 행하는 것은 다른 어떤 종교들보다 훨씬 위대하다.

쇼펜하우어: 만일 내가 나의 철학의 결과들을 진리의 기준으로 여기길 원한다면,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불교의 우월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타지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에 철학자들의 얼굴을 만나니 반갑더라고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저 글귀들의 출처가 어디인지가 적혀 있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네요. 러셀이나 쇼펜하우어는 저런 이야기를 했을 법도 한데, 융이 종교들을 비교해서 불교가 가장 완벽하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약간 의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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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출처가 없으면 글귀들을 믿기 어렵죠. 사르트르의 B와 D사이 C가 있다는 글귀라던가,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글귀라던가 말이에요. 그리고 특히 철학 전문 장소가 아니면 철학이 정확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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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칸트는 인종주의자였나 보네요. "임마누엘 칸트는 유럽인과 유색인종이 사물들을 다르게 경험한다고 믿었다."라니;;;ㅎㄷㄷㄷ 칸트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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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칸트는 다른 인종들에 대한 백인의 우위를 주장한 인종차별주의적 견해를 (심지어 도덕철학에 대한 작업을 보여주었던 1780년대에 까지도) 가졌다는 혐의가 있고, 이에 대해서 현재까지도 다방면으로 논쟁 중입니다. 칸트가 실제 그러한 견해를 지지했느냐 부터, 그렇게 표현한 의도가 무엇이냐, 혹은 칸트가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그렇다면 그의 고약한 취향과 그의 도덕철학을 어떻게 분리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까지 아주 다양한 주제가 있습니다.

Immanuel Kant believed that Europeans and people of color, experience things differently. This philosophy is known as transcendental idealism.

저는 이 부분이 너무 웃겼는데요 ㅋㅋㅋ 이것을 단순 sarcasm으로 치부하기에는 또 통찰력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과 학문 도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개념적” 인식과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상징으로 이루어진 직관적 언어가 아닌 “단어로 이루어진 논변적 언어”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서구의 언어인 반면, 전자는 동양 특히 인도와 중국의 언어라고 보았죠. (헤겔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칸트는 논변적 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인과 그렇지 않은 다른 인종들이 대상을 경험하는 "개념적 내용"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주장한 것 아닌가? 라는 언어철학적 의심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칸트의 raciology 에 대해서 최근 Huaping Lu-Adler라는 학자가 아주 열정적인 작업들을 하고 있더군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Georgetown University Faculty Dire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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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놀라운 해석이네요! 말씀하신 대로라면 칸트에게 정말 인종주의의 혐의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순수이성비판』의 내용만으로는 인종주의적인 함의가 곧바로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의 칸트쨩이 이렇게 인종주의자일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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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칸트쨩의 혐의(?)에 대해서 저는 다음 글에서 처음 봤어요.

그런데 방금 들어가서 알게 된게,
1000-word philosophy를 정식 번역해서 게시하는 한국어 사이트가 생겼네요..! 오..

p.s. 1000-word외에도 aeon등 철학자들이 투고한 여러글들을 번역 게시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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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이 인종차별적이라니... 무례하긴. 형이상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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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 "kant racism"으로 검색하기만 해도 관련된 논문들이 많이 나올 정도로 칸트의 인종차별은 많이 논의되었고, 또 계속 논의되고 있는 문제로 보입니다.
doingphilosophy 사이트에 서강올빼미로부터의 유입이 있어서 어떻게 된 일인가 보러 왔는데 @russell93 님께서 링크를 걸어주셨네요. 종종 와서 눈팅만 하고 가다가 이번 기회에 회원가입 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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