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너의 『세계 내 정신』 한국어 번역본 출간

종교철학이나 신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시라면 '칼 라너(Karl Rahner)'라는 이름을 모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칼 바르트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었다면, 20세기 가톨릭 신학에는 칼 라너가 있었으니까요. 두 명의 거인이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Rahner

두 인물에게는 신학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계시론과 삼위일체론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지적하면서,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현대신학의 체계를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였다는 점이 그들의 사상에서 매우 특징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외에도, 바르트의 '객관적 화해론'이나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은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원'의 범위가 제도적 교회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대하는 태도에서 두 인물 사이에는 다소 차이가 있죠. 철저하게 '신학자'로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바르트와 달리, 라너는 '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 외부의 연구자들에게 좀 더 흥미로운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라너는 20세기의 대표적인 대륙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가장 뛰어난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을 전공한 인물이니까요. 그래서 그의 사유에서는 아주 고전적인 형이상학 전통과 아주 현대적인 현상학-해석학 전통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됩니다. 중세철학의 유산들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내고 있는 거죠.

아마도 라너의 중요한 철학적 공헌들 중 하나는 '존재'와 '초월' 개념 사이의 연관성을 지적하였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존재자 각각에 대한 우리의 명시적 이해는 존재 일반에 대한 암묵적 이해를 전제한다는 점, 그래서 우리는 이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체 존재의 지평으로 끊임없이 초월을 거듭해 나간다는 점이 라너의 존재론과 인간론을 이루는 핵심 사상입니다. 소위 '초월론적 방법론'이라고도 하는 사유 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틴 하이데거의 논의를 재해석하고, 철학과 신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새롭게 성찰하려는 거죠. 라너의 이러한 입장은 20세기 가톨릭 사상에서 '네오토미즘'이라고 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칼 라너를 포함해서, 에머리히 코레트와 버나드 로너간 등이 네오토미즘의 대표적인 인물들로 꼽힙니다.

저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서강대 철학과와 종교학과에서 공부하였다 보니, 학부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네오토미즘을 접하였습니다. 종교철학 수업에서 버나드 로너간의 책을 읽기도 하였고, 철학적 인간학 수업에서 에머리히 코레트의 책을 읽기도 하였죠. 특별히, 석사 시절 제 지도교수님이 네오토미즘을 전공하신 신부님이셔서 더욱 이 사조에 친숙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 자신도 이 사조에 꽤 관심이 있는 편이어서 종종 공부해 보기도 하였고요. (제가 석사 시절 지도교수님과 공동으로 작업한 논문 중에서 「영성과 치유: '치유의 철학'을 위한 영성 개념의 정초 작업」라는 글이 바로 네오토미즘의 영성 개념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네오토미즘의 주요 텍스트들을 찾아볼 때마다, 라너의 대표 저서인 『세계 내 정신』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쉽더라고요. 바르트의 대표 저서인 『교회교의학』은 9250쪽이나 되는 13권짜리 저서인데도 번역되어 있고, 아퀴나스의 대표 저서인 『신학대전』 역시 38권까지 번역되었는데 말이에요. 위상 면에서 보면 그 책들에 결코 뒤지지 않고, 분량 면에서 보면 그 책들보다 훨씬 적은 라너의 『세계 내 정신』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참 이상했죠. (가톨릭 출판사들이 그리스도교 고전 번역에 얼마나 열심인지 생각해 보면, 현대 가톨릭 신학의 고전 중 고전인 이 책이 번역되어 있지 않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죠.)

이번 번역은 80년만의 한국어 번역이라고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책이 번역되었다는 것이 매우 반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렇게 중요한 책조자 이렇게나 늦게 번역되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네요. 여하튼, 이번 번역을 계기로 라너에 대한 관심과 함께, 중세철학과 현대철학 사이의 연결 지점에 대한 관심도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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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신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칼 바르트와 더불어 칼 라너는 너무 익숙한 사람입니다. 신학적으로 그들이 보편교회가 인정하는 삼위일체론에서 벗어났을지라도 실존주의를 토대로 현실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해 할 수 있도록 인간이었던 예수에 집중했던 바르트와 존재론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를 동일시했던 라너, 어쩌면 현대인들의 사고방식이라는 틀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소개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신학전공하기에 또 읽어볼 재밌는 책이 나온거 같아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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