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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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오랜만에 <데스노트>를 다시 감상하면서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 속 키라의 행위를 '정의'와 '악' 중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철학적 토론을 벌인다. 그러나 데스노트를 통해 흉악 범죄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키라를 과연 정의롭다고 볼 수 있는지는 철학 초보자(?)들이나 고민하는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이름이 '고정지시어'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키라가 데스노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인의 얼굴을 특정인의 이름을 통해 고정적으로 지시해야 한다. <데스노트>는 이름이 고정지시어라고 지적하는 크립키의 입장에 근거하여 이름이 한정기술구라고 주장하는 프레게와 러셀의 입장을 비판하는 작품이다. 크립키는 분명 <데스노트>가 철학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며 극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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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데스노트에서는 이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얼굴이었던 거 같아요.
이름을 알아도 얼굴을 몰라서 못 죽이는 경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크립키가 지시체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인 정보가 없거나 틀린 정보를 가져도 지시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는 제 이해가 맞다면, 데스노트의 지시는 훨씬 제한적인 것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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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요 ㅎㅎ 데스노트 읽은 지가 한참 되어서 자세한 규칙은 기억이 안납니다만, 데스노트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이름의 고정지시어적 측면 뿐만 아니라 Speaker meaning의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고실험 하나를 제시합니다. 야가미 라이토가 도쿄와 교토에 살고 있는 두 동명이인 야마다 고로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안다고 합시다. 필요하다면 두 사람이 질적 측면에서 모두 동일한 도플갱어라고 가정해도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 추가적인 규칙이 없고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통해 도쿄에 있는 야마다 고로를 죽일 수 있다면(사인은 두 사람에게 모두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적어도 데스노트의 기능은 이름을 작성하는 순간의 라이토의 의도(intention)에 의존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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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내용은 기술주의자들이 크립키에게 제시하는 비판과도 유사하네요. 지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조차 기술구가 요구된다는 비판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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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ㅋㅋㅋㅋㅋ 재미있는 실험이네요ㅋㅋㅋㅋ <데스노트> 9화에서 이미 비슷한 사고실험이 나와요. (제가 어제 보던 부분이었습니다.) L이 '류가 히데키'라는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사용해서 라이토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데, 이때 라이토가 고민에 빠지게 되거든요. 데스노트에 '류가 히데키'라고 쓰면 과연 L을 죽일 수 있을지, 혹시 자칫 잘못해서 동명이인 류가 히데키를 죽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요. 이런 걸 보면, 적어도 <데스노트>의 작가는 '의도(intention)'가 지시체를 결정한다는 입장을 거부하는 것 같습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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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런 장면이 있었네요!ㅋㅋ 그렇다면 데스노트 세계관에서 라이토는 동명이인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히 있겠군요..
한 가지 더 떠오른 사고실험이 있습니다. 이름은 고정지시어로써 모든 가능세계에서 동일한 존재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통세계적 동일성 문제가 진정한 문제(non-pseudoproblem)라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류가 히데키'라는 이름은 임의의 가능세계 w1과 w2에서 동일한 존재자를 가리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w1에서는 이 사람이 이미 죽었고 w2에서는 살아있다고 합시다. 이 때 w1의 신이 되고 싶은 라이토가 '류가 히데키'를 데스노트에 썼다면 w2의 그 존재자는 죽는 걸까요?

결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이런 사고실험에 비추어볼 때, 물론 애초에 통세계적 동일성 문제가 사이비 문제라면 얘기가 좀 다르지만 데스노트 세계관에서 이름은 기술구 축약으로 간주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ㅋㅋ 그러면 동명이인을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도 설명이 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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