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반대, 모순과 역설: 사소하지만 자주 있는 혼동

(1) 네, 맞습니다. 조건문에서 전건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경우에는 전통적인 대당 사각형에서의 반대 관계는 성립하지 않죠. 저는 그 사례를 생각하지 못하고 일상적인 직관으로 예시의 문장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했어요.

(2) 그런데 제가 문제 삼고 싶은 건,

(a) P & -P는 너무나 명백하게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형식이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두 문장이 P & -P로 기호화되지만 모순이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위의 내용만으로는 어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b) 그렇다면 두 문장이 ‘반대’ 관계라는 것이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느냐고 할 때는, (기호화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P와 -P라는 명제논리의 형태로 기호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문장을 술어논리로 바꾸고, 변항에 들어갈 수 있는 개체들의 범위를 조정하는 식으로 기호화를 수행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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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계속 추측성으로 쓰는 것이 좀 유감스럽긴 한데, @car_nap 님의 논의를 이어받아 이렇게 이해 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요.

(1) Fa : a는 냄새가 좋다 (= 저자가 "P"라고 부르는 것)
(2) non - Fa : "a는 냄새가 좋다"가 아니다 (= 저자가 "~P" 라고 부르는 것)

(2)의 (indefinite) negation은 다시

(2-1) ~Fa : a는 냄새가 안 좋다.
(2-2) non - Fa : "a는 냄새가 좋다"는 무의미하다 (= a 에 냄새가 좋다/안좋다 라는 술어가 적용되지 못한다).

(2-1) 에 해당하는 경우 "non-Fa" (=저자의 "~P")라는 발화를 통해 G - {x ∈ G |Fx } = {x ∈ G |~Fx }가 "보여지고",
(2-2) 에 해당하는 경우 "non-Fa" (=저자의 "~P")라는 발화를 통해 a가 G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즉 어떤 경우에도 Fa와 non-Fa 의 제3항으로 G가 드러나는 것이죠. 다만 이것이 메타언어적으로 선제된다기 보다는, 부정판단과 이에 대한 헤겔-논리학적 고찰을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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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핀의 논문을 읽다가 우연히 이 글을 재발견하게 되어서 짧게 답글을 달아봅니다. 트렌델렌부르크의 비판에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1) 헤겔의 모순이 사실상 반대개념이 맞다고 인정하는 방향, (2) 트렌델렌부르크의 비판을 거부하고 헤겔의 모순이 진정한 의미의 형식논리적 모순을 포함한다고 나아가는 방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일단 피핀은, 헤겔의 모순개념이 사실상 반대개념이라는 트렌델렌부르크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제야?"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헤겔의 관심사는 단순히 A와 ~A 사이의 형식적 모순 관계가 아니라, 상이한 두 개념(에 대한 진술) A와 B 사이의 내용적인 배제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모순 개념을 반대 개념으로 해석해야만 헤겔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더 분명해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라고요. 상충하는 두 범주(를 서술하는 명제)가 사실 모순이 아니라 반대라는 점, 따라서 둘 다 거짓일 수 있다는 점을 보이고, 두 범주를 정합적으로 포함하는 제3의 개념을 도출함으로써 (광의의) '모순'이 헤겔 철학에서 작동한다고 피핀은 설명합니다.

(2) 한편 전략을 바꿔서 헤겔의 모순 개념이 진정한 (형식논리적인) 모순을 포함한다고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고, 나아가 헤겔이 일종의 양진주의자라는 주장, 즉 참이면서 거짓인 명제를 받아들인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다만 모순을 받아들이면 그 어떤 명제이든 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폭발 논증(ex contradictione sequitur quodlibet)이 치명적인 귀결로 따라오고, 현대 형식논리학에서의 양진주의자들은 이 전진주의적인 귀결을 피하기 위해 조건문의 정의를 수정하는 등 여러 장치들을 도입하는 것으로 아는데, 헤겔학자들은 이 폭발 논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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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게도 제가 저때 무엇을 읽고 저 코멘트를 달았는지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

설명해주신 분류에 따르면 (1)번 전략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기도 하고 제 헤겔 이해에도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TheNewHegel 님 설명 덕분에 최근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바가 좀 더 명확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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