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반대, 모순과 역설: 사소하지만 자주 있는 혼동

1. 모순과 반대

헤겔의 모순 개념을 형식논리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굉장히 참신한 국내 논문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이신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헤겔 연구자이시지만 형식논리학에 익숙하지는 않으신 분이신지, 논문에 사소하면서도 결정적인 오류가 있네요. 가령,

(1) 물체는 냄새가 좋다.
(2) 물체는 냄새가 좋지 않다.

라는 문장은

(1′) P
(2′) ~P

가 아니라

(1″) (∀x)(Mx → Gx)
(2″) (∀x)(Mx → ~Gx)

  • M: 물체이다.
  • G: 냄새가 좋다.

로 기호화되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아마 (∀x)(Mx → ~Gx)와 ~(∀x)(Mx → Gx)의 차이를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러셀식으로 말하자면, 부정 기호의 '일차적' 등장과 '이차적' 등장 사이의 혼동일 텐데, 전자는 (1″)과 반대 관계이고, 후자는 (1″)과 모순 관계이죠. 다소 애석하게도, 이 뒷부분에 나오는 내용들이 위의 사소한 혼동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그러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네요.

2. 모순과 역설

최근에 본 다른 글에서는 P → ~P라는 형식의 문장이 논리적 모순이라는 주장이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은 엄격하게 P & ~P로 기호화되죠. P → ~P와 P & ~P의 진리표는 다음과 같이 구분되기 때문에, 둘 중 어느 것을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가 없죠.

P → ~P의 진리표

P & ~P의 진리표

P → ~P라는 형식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역설(paradox)' 정도가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좀 더 정확하게 일반화하자면, 대부분의 논리적 역설은 P ↔︎ ~P처럼 기호화되겠지만요. (실제로, 아비 사이온Avi Sion이라는 논리학자는 P → ~P라는 형식을 단일 역설single paradox라고 명명하고, P ↔︎ ~P라는 형식을 이중 역설double paradox이라고도 명명하더라고요.)

여하튼, 모순과 역설 사이의 차이도 자주 간과되는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논리학을 처음 배우는 분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을 꽤 공부하신 분들 사이에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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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흥미로워 살짝 뒷조사(?)를 해보았는데, 이미 헤겔 사후에 A. Trendelenburg가 헤겔의 모순 개념이 사실 반대 개념에 불과하다고 비판을 했었고 이것이 현재까지도 헤겔의 모순 개념을 비판하는 주된 포인트 중 하나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헤겔(에 호의적인) 연구자들의 대체적 반응은, 헤겔의 논리학이 형식논리학(=지성의 사유)이 아닌 사변적 사유(=이성의 사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헤겔은 형식논리를 몰랐다"라는 비판이 요점을 빗나간 것이라고 보는 듯 합니다. @YOUN 님이 읽으신 논문이 어떤 논문인지 몰라 조심스럽지만, 어쩌면 지적하신 문제가 해당 논문저자의 문제라기보다 헤겔논리학에 내재적인 쟁점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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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논문에 나온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명제 P를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의미로 이해하기가 꺼려집니다. 저자가 그런 의도로 명제 P를 제시한 것이라면, 다음 설명은 틀립니다.

우리가 냄새가 나지 않는 물체를 고려하게 된다면 -PP는 모순적인 명제가 아니라 반대 명제가 되기 때문이다. 즉, 두 명제는 모두 참을 수는 없지만 모두 거짓일 수는 있게 된다.

냄새가 나지 않는 물체를 고려한다면, 그런 물체는 냄새가 좋지도 안 좋지도 않으므로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명제 P는 거짓입니다. 이 명제의 부정 -P는 참이죠. 따라서 두 명제는 모순됩니다. 근데 이게 저자가 제시하고자 한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가 예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만요.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명제를 '이 음료는 냄새가 좋다.' 같은 다른 명제로 바꾸는 것이 저자의 의도에 더 맞을 듯해요. 물론 이런 예를 들려면, '이 음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맥락이 주어졌다고 가정해야겠죠.

'이 음료'가 냄새가 안 난다면, '이 음료'는 냄새가 좋지도 안 좋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음료는 냄새가 좋다."라는 명제와 그 부정은 반대 관계를 맺습니다.

다만 저라면 이 명제와 그 부정을 논문 저자처럼 분석하지 않을 겁니다. 잠시 쉬었다가 댓글을 더 달게요.

(∀x)(Mx → Gx)와 (∀x)(Mx → ~Gx)는 반대(contraries)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대당사각형에서 (∀x)(Mx → Gx)과 (∀x)(Mx → ~Gx)는 위와 같이 서로 반대 관계에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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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ving M. Copi, Symbolic Logic , New York: Macmillan Publishing, 1979, p. 68.

@georgia15 님이 인용하신 글에서의 명제 함수 Φx와 달리, "x는 물체이다."라는 명제 함수 Mx는 참인 치환 사례[substitution instance]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제 책상에 놓인 소니 블루투스 스피커는 물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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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요점은 형식논리상 둘은 반대 관계에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이 논문의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을 (저자는 분명히 반대 명제라고 명시했기 때문에) 저렇게 번역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논문 전체를 읽지 못해 판단이 어렵지만, 아래와 같은 대당사각형을 저자가 고려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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Φ에 해당하는 참인 치환 사례가 존재하지 않아서 전건이 거짓이 되는 경우가 번역을 까다롭게 하네요. 저는 이런 상황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기는 하였습니다. 다만, @chabulhwi 님이 써주셨듯이, "M: 물체이다."라고 위에서처럼 정의한 상황에서는, (그리고 일상적인 의미의 세계를 논의 영역universe of discourse으로 가정한 상황에서는,) (∀x)(Mx → Gx)와 (∀x)(Mx → ~Gx)가 반대 관계라는 주장이 특별히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저런 문장을 번역할 때 굳이 (∀x)(Mx → Gx) & (∃x)Mx 같은 방식으로 참인 치환 사례의 존재를 넣어주는 경우를 저로서는 본 적이 없어서요. 여하튼, 두 분께서 만약 다른 번역들을 제시해 주신다면 공부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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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주석적 문제로 한정한다면,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다
(1) (∀x)(Gx)
(2) (∀x)(Mx → Gx)

(1)보다는 (2)가 자연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 근거는, 칸트가 다른 맥락에서 "모든 물체는 연장을 가진다 (Alle Körper sind ausgedehnt)"를 분석판단으로서 다루고 있는데

M: 물체이다
E: 연장을 가진다.
(1') (∀x)(Ex)
(2') (∀x)(Mx → Ex)

만약 (1')과 같이 번역된다면 이것이 왜 분석판단인지 분명하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에 (2')와 같이 번역한다면 이것은 "Mx"라는 개념과 "Ex"라는 개념 간의 의미론적 관계를 기술하므로, 왜 분석판단인지가 보다 명료하게 보여질 수 있습니다.

같은 원리라면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판단은 "Mx"라는 개념과 "Gx"라는 개념 간의 관계에 대한 진술이 되겠고, 그렇다면 (∀x)(Mx → Gx) 의 꼴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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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가 냄새가 안 나는 음료를 나타내는 상수일 때, 'd는 냄새가 좋다.' 꼴의 진술을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가 보건대, '물은 냄새가 좋다.' 같은 문장은 범주 실수입니다. 이런 문장을 배제하는 방법을 린 코드로 제시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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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가 3인칭 복수형이므로 저자의 해석이 맞아보입니다. 이는 임의의 물체들에 대한 진술로 이해되어야 해요. 즉,

(x: M)Fx
(x: M)~Fx

로 각각 기호화될 진술입니다. 그런데 이 둘은 여전히 모순이 아닌 반대 관계이죠. 그 예화들 각각이 (차불휘님 말씀처럼) 모순일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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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독일어를 몰라서 이 점을 놓쳤네요. 그러면 이제 제 의견도 @YOUN 님과 같습니다.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는 한국어 문장에서는 '물체'가 복수일 수도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요. 저 예문을 칸트가 만들었나요? 아니라면 저자가 예문을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다."라고 서술하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물론 이러면 "모든 물체는 냄새가 좋지 않다."라는 명제가 앞엣것의 부정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겠죠.

음, 애초에 이 논의를 논문 저자가 왜 한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YOUN 님이 인용하신 글에는 헤겔이 언급이 안 됐는데, 저 글에 나온 주장을 칸트와 헤겔 모두 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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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örper sind wohlriechend"에서 'Körper'는 맥락에 따라 단수로도 해석될 수 있고 복수도 해석될 수 있어요. 관사를 'der'로 쓰는지 'die'로 쓰는지에 따라 다른데, 저 예시에서는 관사 자체가 없어서 의미가 불확정적이에요. 그래서 저는 사실 애초에 저 문장 자체가 애매해서 기호화하기에는 그다지 적절한 예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2) 게다가, 예시로 나온 두 문장을 P와 -P로 기호화하면, 그 둘은 반대 관계일 수가 없죠. 또 그 둘이 반대 관계라고 한다면, 두 문장을 P와 -P로 기호화해서도 안 되고요. 저자 분은 대략

"P와 -P로 기호화되면서도 모순이 아닌 반대 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모순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P와 Q라는 서로 대비되는 두 항과 더불어 G라는 제3항이 필요하다."

이런 주장을 하시고 싶어해요. 또 그 입장이 바로 헤겔의 입장이라고 보시는 것 같고요.

(3) 그렇지만 저에게는 P와 -P로 기호화된 문장이 모순이 아니라 반대 관계라는 설명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게 보여요. 물론, 아주 특수한 몇몇 상황에서는 이런 주장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적어도 저자 분이 제시한 저 예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P & -P이면서도 반대 관계인 사례를 해소하기 위해 제3항이 필요하다는 그 이후의 논지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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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단수 해석은 안 되겠네요. 그러려면 ist라고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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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은 모르지만 끼어들어보자면, "Körper sind wohlriechend" 에서 동사가 복수니 복수 문장 아닌가요? 마치 영어로 하자면 "Bodies are fragant" 처럼 해석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 댓글을 쓰는 사이에 답을 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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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Körper에만 주목한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부끄럽네요ㅠㅠ

에이 그 유명한 철학자들도 논문에서 실수하는 경우도 많은데, 철학 포럼에서 실수한 걸로 부끄러우실 필요까진...ㅋㅋ 그래도 덕분에 Körper가 복수 단수가 같다는 걸 배웠네요!

제3항이 필요하다는 헤겔(, 또는 저자)의 논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반대 관계로 둘을 이해한다면 당연히도 제3의 선택지는 있죠. 바로… ‘논의 대상이 물체가 아닌 경우.’

이건 근데 되게 나이브한 문제이기도 한데,

(1) (x: M)Fx
(2) (x: M)~Fx

에 대해 가능한 경우는, 모든 x에 대해,

  • (1)이 참, (2)가 거짓 (Mx&Fx)
  • (2)가 참, (1)이 거짓 (Mx&~Fx)
  • 모두 참 (~Mx)

이니까요.

다만 여기에서의 제3의 경우, 즉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같은 게 헤겔이 고려한 ‘제3항’은 아닐 것 같고, 생각기로는 @chabulhwi 님의 제안처럼 단칭 명제로 고려될 때에나 의미 있는 논의가 될 텐데요.

단칭 명제 버전으로 넘어가면 이런 게 되겠습니다. a가 Ma를 만족하는 임의의 논항임을 상정한 뒤,

(1’) Fa
(2’) ~Fa

를 고려한다면 경우는 셋일 수 있는데,

  • (1’)이 참
  • (2’)이 참
  • (1’)과 (2’) 모두 무의미

여기에서 제3의 경우는 ‘F’가 M-유형에 해당하는 논항에는 적용될 수 없는 기호일 때 성립하겠고, 이건 (메타언어적으로) 선제된 사항을 논리학이 ‘제3의 항’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논거가 되겠죠. (그러면 ‘개념논리학’이란 일종의 유형 이론에 대한 변증이 되는 걸까요? 그건 제가 잘 모르겠지만…)

헤겔이 이런 걸 제3항으로 생각한 건진 모르겠는데, 일단 다른 회원분들께서도 이런 논지에는 동의를 하실 것 같습니다. 이건 시대적으로 헤겔이 메타언어-대상언어에 대한 구별을 딱히 인지하지 못했다면 자연스러운 한계였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논문 저자가 이걸 억지로 교정을 해서… 유형이니 뭐니… 그러면 그건 그것대로 헤겔을 훼손(증강?)하는 거니까요. 저자는 저자대로 저렇게 쓸 만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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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가 지나치게 복잡해진 것 같아 몇가지로 나누어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YOUN님께서 가져오신 그림과 표는 (비록 의도하신 건 아니겠지만) 오도적입니다. SEP ("The Traditional Square of Opposition")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얘는 전통적인 대당사각형의 다이어그램(The diagram for the traditional square of opposition)입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논리학자들이 생각했던 대당사각형입니다. 반면에,


얘는 그림에 나와 있듯이, (프레게의 은총을 입은) 현대 논리학자들이 생각하는 A, E, I, O의 번역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A, E, I, O를 저렇게 번역할 때 전통적인 대당사각형의 다이어그램이 붕괴된다고 현대 논리학자들이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SEP에서는 이를 아래와 같이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If this symbolization is adopted along with standard views about the logic of connectives and quantifiers, the relations embodied in the traditional square mostly disappear. The modern diagram looks lik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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