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과 논리적 형식 (上)

이 글은 Kai Wehmeier의 "In the Mood"( Journal of Philosophical Logic, Vol.33, 2004)와 "Subjunctivity and Conditionals"(Journal of Philosophy, Vol.110, No.3, 2013)의 아이디어를 형식적인 전개를 최대한 배제하고 정리한 글입니다. 일전에도 Subjunctive Mood - 약간의 정리라는 글에서 관련된 내용을 정리했었는데 조금 더 다듬어 봤습니다. 어딘가 쓸 데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상편에서는 가정법 문장을 처리하는 기존의 방법론들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고
하편에서는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가정법적 양상 논리(Subjunctive Modal Logic)를 소개합니다.
논리적 체계에 대한 감이 좀 떨어져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비판적인 발상이 잘 안 떠오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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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립키의 양상 논증

솔 크립키(Saul Kripke)는 유명한 저서 Naming and Necessity에서 고유명과 기술구가 동의어 관계일 수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논증을 제시합니다.

P1. 고유명에 대한 기술구 이론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동의어이다.
P2. 만일 두 언어적 표현이 동의어 관계이면, 모든 맥락에서 진리치 변경 없이 대체가능하다.
P3.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참이다.
P4.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거짓이다.
C. 따라서 둘은 동의어 관계가 아니고 (일반화 가능한 사례라는 점에서) 기술구 이론은 거짓이다.

베마이어는 여기서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the teacher of Alexander the Great)이라는 표현이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친 사람'(the person who taught Alexander)과 같은 의미이다.

이렇게 읽는 경우 양상 논증의 P4는 다음과 동치입니다.

P4'.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거짓이다.
('The person who taught Alexander the Great would not have taught Alexander the Great' is false.)

하지만 P4'는 거짓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양상 논증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원래 논증이 성공적이려면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을 다음과 같이 읽으면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을 사람'(the person who would have taught Alexander the Great)과 같은 의미이다.
P4''.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을 사람은 알렉산더를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거짓이다.
('The person who would have taught Alexander the Great would not have taught Alexander the Great' is false.)

이렇게 되면 양상논증은 성립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으로 의미하는 바가 이와 같은 것일리 없습니다. 즉, 애초에 저 두 표현은 동의어 관계가 아닙니다. 따라서 P4''는 P4에 대한 올바른 독해가 아닙니다.

양상논증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 비판을 피해갈 수 있습니다. 그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렇습니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Ta (Tx : x는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쳤다)

문제가 되는 문장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친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직설법으로 쓰인 요소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침'과 가정법으로 쓰인 요소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치지 않았을 수도 있음'이 섞여 있습니다. 전자는 통상 'Tx', 후자는 통상 '◇~Tx'로 표현할 수 있는바(여기서는 'Tx'를 'x가 알렉산더 대왕을 가르침'으로 두겠습니다), 양상 연산자의 지배범위를 괄호로 적절히 표기해주면 P4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습니다.

(∃x)(Tx & (y)(Ty → y=x) & ◇~Tx) 혹은 기술구 기호를 사용해 [(ιx)Tx]◇~T(ιx)(Tx)

기술구 기호를 사용해 번역한 부분을 잘 보면 '◇~Ta'에서 고유명 'a' 대신 기술구 '(ιx)Tx'를 대입한 꼴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입예는 양상 연산자에 지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기술구가 등장하는 wide scope 해석인데, 크립키는 자신의 논증이 이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지적하고 있습니다. (Naming and Necessity p.13) 크립키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해석은 양상 연산자 범위 안에서 기술구가 등장하는 narrow scope 해석인데 이에 따르면

◇(∃x)(Tx & (y)(Ty → y=x) & ~Tx) 혹은 ◇[(ιx)Tx]~T(ιx)(Tx)

이런 꼴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장에는 'Tx & ~Tx' 꼴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문장은 반드시 거짓입니다.

베마이어는 이런 대응이 표준적인 일차 양상 논리학이 양상 담화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에 적합한 논리학이라는 가정을 깔고 있는데, 이 가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다음 문장을 봅시다.

(ㄱ) 어떤 가능한 상황에서, 모든 가난한 사람이 부자일 수 있다.
(Under certain circumstances, everyone who is poor would have been rich.)

이 문장에서 술어 '가난함'은 직설법으로, '부자임'은 가정법으로 쓰였으므로 양상 연산자의 범위로 이를 구분해서 형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ㄱ') ∀x(Px → ◇Rx) (Px : x는 가난하다, Rx: x는 부자다)

그런데 이 문장의 진리조건은 앞서의 한국어(혹은 영어) 문장의 자연스러운 의미를 잘 표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에 따르면 우리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부자인 그런 가능세계가 있는 경우에 (ㄱ)이 참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은데, (ㄱ')는 우리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부자가 된 세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참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세계에 가난한 사람의 외연이 {개코, 놀부, 돌배}라면 (ㄱ)이 참이 되는 것은 개코, 놀부, 돌배가 모두 부자인 가능세계가 있을 때인 반면, (ㄱ')은 개코가 부자인 세계, 놀부가 부자인 세계, 돌배가 부자인 세계가 하나씩 존재하기만 하면 참이 됩니다.
(ㄱ)의 자연스러운 의미는 양상 연산자와 괄호를 통한 범위 구분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일차 양상 논리로는 표현되지 않는 문장이 존재하고, 따라서 그것 자체는 양상 담화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에 적절한 도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양상 논증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툴을 가지고 시도한 것인 셈이지요.

  1. 또 다른 예시 : 반사실적 조건문에 대한 스톨네이커-루이스 의미론의 한계

다음 상황을 봅시다.

어떤 위원회에 11명의 위원들이 속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중에서 투표를 통해 1명의 위원장을 선출합니다. 1인 1표 다수결로 선출되는 위원장 선거에 총 세 명의 위원, 금동, 나래, 두리가 출마했고 투표 결과는 금동 5표, 나래 3표, 두리 3표로 금동이가 위원장이 되었습니다. 두리를 뽑은 사람 중 금동이에게 평소 반감을 품고 있었던 로하는 다음과 같이 불평했습니다.
"두리를 뽑았던 모든 사람이 나래를 뽑았더라면 금동이가 당선되지 않았을 텐데!"

로하의 발언은 반사실적 조건문의 꼴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했더라면, ~였을 것이다'와 같은 식입니다.
이런 반사실적 조건문에 대한 표준적인 의미론은 스톨네이커-루이스(Stalnaker-Lewis) 의미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측면에서 스톨네이커와 루이스의 입장이 좀 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이 의미론에 따르면 반사실적 조건문 'A > B'는 현실 세계와 가장 가까우면서 A가 참인 가능세계에서 B도 참인 경우 오직 그러한 경우에 참입니다. (여기서 '가깝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기기는 참 어려운데, 일단은 '가장 비슷한' 정도의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
(1) If Shakespeare didn't write Hamlet, then somebody else did.
(2) If Shakespeare hadn't written Hamlet, then somebody else would have.
(1)은 우리 세계의 사실들을 바탕으로 평가하는 반면, (2)는 우리 세계와 비슷한 세계, 즉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쓰지 않았고 그 외에는 거의 비슷한 어떤 가능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햄릿을 썼을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황으로 돌아와봅시다. 로하의 발언, "두리를 뽑았던 모든 사람이 나래를 뽑았더라면 금동이가 당선되지 않았을 텐데!"는 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단순 조건문(→)과 가정법적 조건문(>)을 사용해서 번역해보면 원래 의미를 잘 포착하지 못하게 됩니다.

두리를 뽑았던 모든 사람이 나래를 뽑았더라면 금동이가 당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x[Vxd → (Vxn > ~Eg)] (Vxy : x가 y를 뽑다, Ex : x가 당선되다)

이 문장이 참이라면, 다음과 같은 논리적 귀결이 따라 나옵니다.

Vrd → (Vrn > ~Eg) (보편예화)
Vrd (가정에 의해)
Vrn > ~Eg

그런데 로하가 나래를 뽑았다고 해도 금동이가 당선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세계와 가장 가까운 Vrn이 참인 세계는 로하만 나래를 찍고 나머지는 다 그대로인 세계일 테니 말입니다.
혹은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x[(Vxd → Vxn) > ~Eg]

이렇게 되면 우리 세계와 가장 가까운 가능세계에서 두리를 뽑은 모든 사람이 나래를 뽑는다는 게 참이라면 그 세계에서 금동이는 당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1인 1표라는 것이 가정되어 있는 한, '∀x(Vxd → Vxn)'은 '∀x~Vxd'와 동치입니다.

(Vyd→Vyn) & ~(Vyd & Vyn)
(Vyd→Vyn) & (~Vyd ∨ ~Vyn)
(Vyd→Vyn) & (Vyd→ ~Vyn)
~Vyn→~Vyd
Vyd→~Vyn
Vyd→~Vyd
~Vyd

그렇다면

∀x(~Vxd > ~Eg)

이렇게 되는데, 모든 사람이 두리를 뽑지 않은 현실세계와 가장 가까운 가능세계에서 그 사람들이 모두 금동이를 뽑았을 수도 있으므로 이 또한 거짓입니다.

위 두 문제에 대한 베마이어의 진단은 표준 일차 양상논리가 가정법으로 쓰인 술어를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1. '현실적으로' 연산자

표준 일차 양상논리의 이러한 단점은 '현실적으로'(actually)라는 자연언어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연산자 'A'를 추가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습니다.

'Ap'는 w에서 참이다 iff p가 현실세계(w@)에서 참이다.

말하자면 이는 해당 연산자가 붙은 명제의 진릿값 평가세계를 현실세계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앞서의 예시 (ㄱ)을 다시 보시죠.

(ㄱ) 어떤 가능한 상황에서, 모든 가난한 사람이 부자일 수 있다.
(Under certain circumstances, everyone who is poor would have been rich.)

이제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고, 올바른 진리조건을 표현합니다.

(ㄱ'') ◇∀x(APx → Rx)
(어떤 가능세계가 있어서, 현실에서 가난한 모든 사람이 그 세계에서 부자다.)

그런데 베마이어는 이런 현실성 연산자가 최소한 다음 이유에서 ad hoc device라고 비판합니다.

(1) 현실성 연산자를 도입하는 언어에서는 '어떤 가능한 상황에서 패자들은 모두 승자일 수 있었다.'(Under certain circumstances, everyone who lost would have won)를 '◇∀x(ALx → Wx)'로 번역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패자다.'(Everyone lost)라는 문장은 '∀xALx'로도 '∀xLx'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직설법 술어만 포함하는 문장에서는 별 필요 없는 잉여적 연산자인 셈이지요.

(2) '모든 사람은 패자다'와 같은 문장의 상황이 저러하다면 자연어에서는 문장의 의미가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의미가 미결정적이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xALx'와 '∀xLx'는 동일한 진릿값을 산출하지만 모든 맥락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애초에 양상 의미론에서 두 문장의 의미는 다릅니다.

'∀xALx'이 w에서 참이다 iff 현실세계 w@에서 모든 것이 L이다.
'∀xLx'이 w에서 참이다 iff w에서 모든 것이 L이다.

베마이어는 이런 의미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패자다'와 같은 "비양상적 직설법 발화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임의의 가능세계에서 그 진술이 어떻게 평가될지에 관한 지식이 요구된다는 함의"가 있는데 직관적으로 이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합니다.

下편에서는 베마이어가 제안하는 가정법적 양상 논리(Subjunctive Modal Logic)의 체계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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