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슨 스톤, 『페미니즘 철학』, 「섹스」

1. 도입

섹스/젠더 구분은 페미니즘의 토대가 된다. 이 구분에 따르면 섹스는 생물학적이고, 젠더는 사회적이다. 이때 사회적이라는 말은 ①젠더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관념과 기대로 이루어져 있다 ②여성은 여성적이어야 하고, 남성은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한층 더 높은 수준의 기대가 존재한다는 말을 의미한다.

페미니즘 사상가들은 섹스/젠더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구분에 따라 젠더 관념과 기대가 문화와 사회의 생산물이라면, 여성 지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즉, 여성들과 남성들의 생물학적 특성이 그들이 활동하는 사회적 위치와 지위의 원인이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항할 좋은 근거가 된다.

섹스/젠더 구분 논증의 두 가지 큰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젠더에 대한 기대는 굉장히 다양하다. (인류학적 근거)

둘째, 우리는 남성 트랜스섹슈얼의 사례를 통해 섹스/젠더 갈등이 존재함을 안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은 젠더가 섹스에 의해 결정된다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젠더와 섹스는 구분 가능하다. (심리학적 근거)

그러나 많은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고전적인 섹스/젠더 구분 방식이 개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관계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 탓에 현대 페미니즘에서 섹스/젠더는 다양한 의미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섹스는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최소한 어느 정도는 젠더에 영향 받는다.

호르몬 수치 같은 생물학적 섹스 특성이 젠더적 관념이나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자들의 말마따나 생물학적 특징(섹스)가 사회 활동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해 재거와 같은 페미니스트는 생물학적 섹스가 변화될 수 없다는 통념적인 가정을 거부함으로써 사회생물학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녀에 따르면 생물학적 특성은 우리의 삶과 사회 조직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사회적 배치가 많은 생물학적 특성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에 근거해 재거는 자연[섹스]과 문화[젠더]를 나누는 구분선은 없다며 섹스/젠더 구분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으로부터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섹스와 젠더가 상호작용한다는 주장으로부터 섹스/젠더 구분이 거부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섹스/젠더 구분에 대한 거리감을 과장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3. 섹스에 대한 과학적 견해는 불변하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섹스/젠더 구분은 과학의 지위와도 관련된다.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섹스와 관련된 현재의 과학적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생물학적 섹스 그 자체를 알고 있다고, 혹은 그것을 과학이 알려준다고 가정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주장은 여태껏 생물학적 섹스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하나의 성별 모델’과 ‘두 성별 모델’이라는 개념적 모델에 의해 만들어졌음이 뒷받침한다.

그들에 따르면 섹스에 대한 과학적 견해는 젠더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가정을 반영하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남성 과학자들은 남성의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여성 신체의 근본적인 차이가 여성을 공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을 보이려고 애썼다. 과학자들이 그런 의도로 연구를 수행했기에 그들이 아무리 섹스를 있는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해도 생물학적 섹스에 관한 그들 주장은 여성과 남성에게 적절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전 가정을 반영하고 있다.

4. 섹스를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은 젠더에 대한 관념과 얽혀있다.

페미니스트는 ‘성별이 남성과 여성 둘로 나눠서 존재한다는 생각은 행동이 젠더화된 두 행동(남성적 행동과 여성적 행동)으로 나눌 수 있다는 가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은 생물학적으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인터섹스가 존재한다는 데에 근거를 둔다.

생물학적 섹스에 대한 표준적인 생각에 따르면 남성을 남성으로 만들고, 여성을 여성으로 만드는 생물학적 속성들(XX 혹은 XY염색체, 정소 혹은 난소, 높은 안드로겐 분비량 혹은 높은 에스트로겐 분비량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터섹스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 속성들이 하나의 집합으로 모두 함께 갖추어져야 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즉, 인터섹스는 그 속성 구분에 따라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구별하는 것이 자의적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인터섹스 외에도 트랜스섹스과 트랜스젠더는 ‘남성됨과 여성됨과 관련된 다양한 속성이 하나의 집합으로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위 주장을 강화하는 좋은 근거가 된다.

어쨌든, 인터섹스와 트랜스섹스 그리고 트랜스젠더는 섹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범주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남성으로 간주되려면 ‘남성’의 속성들로 이루어진 전체 집합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정하지만, 이 모든 속성을 갖추지 않은 사람도 남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결국, 특정한 섹스를 부여하는 필요충분조건을 자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5. 개념 묶음으로서의 섹스(남성과 여성)

앞선 장에 따르면 인터섹스, 트랜스섹스 및 트렌스젠더는 섹스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범주가 혼란스럽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남성을 남성으로 만들어주는 속성 집합 전체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남성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속성 묶음이라는 개념 전체를 버릴 필요는 없다. 즉, ‘남성임 또는 여성임과 관련된 속성들의 묶음이 있다’ 정도로 주장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섹스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다. 속성 전체를 가지지 않더라도, 속성들이 충분히 묶인 신체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주장은 견지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여성이거나 남성이려면 그가 관련 속성들을 충분한 만큼 갖추어야 한다는 식으로 섹스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재구성한다면, 여성임 또는 남성임은 정도의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인터섹스, 트랜스섹스 및 트렌스젠더인 사람이 섹스에 관해 불분명하다는 사실이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자로 만들지 못한다. 남성·여성과 그들을 성별상 엄격하게 분리하는 구분선은 없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서 있는 스펙트럼에 분포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수정된 견해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첫째, 남녀 모두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헤르마프로디즘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수정된 견해에 따르면 이들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점은 누군가를 확실히 남성 혹은 여성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남성 관련 속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 동시에, 그를 여성으로 만드는 속성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수정된 견해는 여성이라면 출산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가? 아니다. 누군가가 여성이 되기에 충분한 속성들을 갖고 있더라도 임신을 할 수 없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일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성됨은 출산할 수 있음과 동일하지 않고, 모든 여성이 아기를 가짐으로써 여성의 본질을 실현할 필요는 없다.

6. 젠더에 대한 기대는 섹스 구분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페미니즘 철학자들은 ‘우리가 오직 젠더만을 행하고 있기에 두 가지 생물학적 섹스만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그중 한 사람인 윈케는 의술의 사례 근거로 들며 ‘우리는 어떤 사람을 관련된 일련의 젠더 기대들을 신체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받아들이는지 아닌지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로(섹스를)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남성이 여성과 삽입이 포함되는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를 신체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 사람을 남성으로 구분한다. 만일 젠더에 대한 가정이 섹스 구분을 추동한다는 그들 주장이 옳다면, 섹스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해석적이다.

윈케는 나아가 ‘우리가 젠더 기대와 관련하여 신체를 범주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능력을 섹스에 주는 그 속성들을 애초에 묶음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섹스라는 자연적 차이를 기반으로 사람들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기에, 속성 묶음에 대한 근본적 수준의 비판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정당한가?

아무리 그녀가 부정하려 해도, 출산과 같은 활동에 실제로 필요한 몇 가지 신체적 속성과 그 묶음은 존재한다. 아무리 섹스에 관련된 속성들이 사회적으로 매개되는 것이라고 해도, 인간을 구분하는 것을 도저히 멈추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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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주장이 가장 의심스럽긴 하네요. 젠더가 섹스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근거는 제시된 거 같은데, 섹스가 젠더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사례나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구체적인 사례의 경우, 책에는 소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긴 글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제가 사상시켰습니다. 재거가 자신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드는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수정)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운동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며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이 남성보다 더 약해지는 원인이다. 여성의 식단은 자주 남성보다 부실해서 여성을 남성보다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든다. 하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은 유방이 아주 작고, 남성은 털이 거의 없는 등 남성과 여성 사이에 신체적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 산업사회에서 보이는 상대적으로 과장된 남녀의 신체적 사차이가 사회적인 힘의 효과라는 것을 시사한다."

저는 '섹스는 젠더에 의해 영향받는다'라는 주장에 대한 설득력이 있는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섹스/젠더 구분은 거부되어야 한다'라는 대결론이 도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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