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뿐만 아니라 우리도 말할 때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철학'이랑 '철학적'이라는 것도 엄밀히 따지다 보면 차이가 있고, '철학적'이라는 것과 '철학함', 심지어 '철학다움'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다면 누군가에게는 이 차이도 분명 세세하게는 있을 것인데 말하기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만약 외국인이 '철학다움' 같은 걸 마주하게 되면 당황할 것 같네요. 즉 어느 나라나 똑같습니다. 유창한 영어권 화자라도 저렇게 duration과 a duration이나 successiveness 와 succession을 모르지는 않지만, 갑자기 저 차이를 세세하게 따지라고 한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위에서 언급한 '철학' 예시가 본문과 다르다고 여기실 수도 있으니, 그럼 위에서 나온 '연속'이라는 것도 한국어로 따진다면 얼마나 복잡할까요? 한국어는 특히 교착어 특징까지 살린다면 '연속'과 '연속함', '연속됨', '연속되는 것', '연속적인 것', '연속인 것', '연속성', '연속되어짐', 심지어 '연속스러운 것(?)', '연속다운 것(?)' 등등의 이상한 것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운, 또는 한국어 어느정도 된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봐도 기가 막힐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분명 사용 방법에 따라 세세하게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언어를 사용할 때 그렇게 복잡하게 따지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어느 정도는 한 묶음으로 치고 '맥락'에서 살펴보는 경향이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게 자연스럽거든요... 그리고 동양철학 쪽은 더 기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삶'을 예시로 들어도, '삶', '생존', '생(生)', '사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있는 것', '살고 있는 것', '생활', '목숨', '활(活)', 명(命) 등등... 이거보다 더 어려운 한자까지 나오는 동양철학 개념들이 존재합니다. 심지어 훈음이 일치하는 중국어 화자들도 이 개념들 때문에 골치 아파 합니다. 한자를 더 잘 알 것 같은 중국어 화자들도 이 모양입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인 거죠. 따라서 이 문제는 영어의 자신감과 전혀 무관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네요.
제가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논문들 보면 'OO' 개념 얘기하고 'OO적인 것'이라는 말들이 이어서 나올 수 있습니다. 만약 칸트의 '물 자체' 얘기를 하는데 한국어 논문에서 '물 자체 적인 것' 등을 갑자기 사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누군가는 대충 알아먹고 넘어갈 수도 있겠죠. 어떤 사람은 꼼꼼히 따져볼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자신이 가지는 문제 의식에 따라 문제를 대하는 방식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떤 개념을 대충 썼다고 해도 무책임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사람은 뭉뚱그려서 그 개념이 사용될 수 있다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믿은 것일 테고, 그러면 그런 의도를 포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탠퍼드 철학사전의 'definitions' 항목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It is a fact about us language users that we somehow come to understand and use a potential infinity of sentences containing a term once we are given a certain small amount of information about the term."
사람은 대충 단어를 배우면 이걸 어느순간 문장에 잘 응용하거나 어떻게든 알고 사용합니다. 미스테리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냥 언어의 신기한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끔 그 신비성 때문에 오해와 오류를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언어 생활을 풍부하게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