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철학서를 읽을 때 어떤 점에 주목하시나요?

강용수 선생님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이 요즘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얻고 있네요. 대중을 위해 쓰인 교양서이지만 저자이신 강용수 선생님이 니체 전공자이신 만큼, 내용 면에서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석사생 시절에 강용수 선생님과 함께 몇 학기 동안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 수업,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수업, 야스퍼스의 『철학』 제2권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 논문상에 키에르케고어와 니체에 관한 글을 제출할 때 내용에 대해 조언을 받기도 했고요. 그래서 강용수 선생님의 책이 요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니 정말 반갑네요.)

그런데 저는 철학 교양서들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모습을 보면 전공자로서 뿌듯하다가도, 괜히 좀 의문스러워지기도 합니다. 과연 이런 교양서들을 구매하는 분들 중에서 책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실 만한 독자 분들이 얼마나 될까 해서요. 철학 책에 관심을 가지고서 실제로도 책을 구매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이렇게 판매된 책들이 일반 대중 독자 분들에게 얼마나 이해되고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다소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생각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이나 학부 1-2학년 시절에 철학 교양서나 입문서를 틈 날 때마다 뒤적여 보았지만, 그 시절에 제가 책 한 권을 끝까지 완독한 경험은 많지 않습니다. 책 내용을 부분적으로나마 제대로 소화한 경험도 그다지 많지 않고요. 학부 3학년 말쯤이 되어서야 철학 책을 읽는 것이 좀 편해졌던 것 같아요.

물론,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면서도 철학 책을 읽어내는 일이란 저에게는 그다지 쉽지 않았습니다. 내용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려웠던 적을 제쳐두더라도, 솔직히 '책'이라는 매체에 집중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유튜브 같은 훨씬 자극적인 매체도 많은데, 활자를 읽어내기 위해 몇 시간을 앉아서 집중하는 일은 습관이 충분히 들지 않으면 그 활동 자체가 고역이니까요. 책의 난이도와 상관 없이 '읽는 일' 자체가 힘들었던 것이죠.

그래서 철학 책이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읽혀지고 있을지가 항상 궁금합니다. 철학 책과 논문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업인 대학원생들이야 어쩔 수 없이 노력을 해서라도 의무적으로 책을 읽어내야 하지만, 철학과 크게 관련 없는 직종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은 철학 교양서를 구매하거나 읽으실 때 어떤 점들에 주목하시나 해서요. 가령,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정도라면, 이 책이 단순히 철학과 유관한 분야의 독자 층을 넘어서 대단히 폭넓은 독자 층에 호소력이 있다는 것일 텐데요. 이런 독자 분들은 이 책을 어떤 목적으로 구매하셨는지, 어떤 내용이 인상적이셨는지, 책을 얼마만큼 읽으셨는지 궁금해서요.

물론, 이 모든 생각과 의문이 어쩌면 저의 다소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야스퍼스의 철학을 전공하신 L 선생님은 "일반 독자 분들이 철학 교양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제 의문을 들으시더니 예전에 이런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셨어요.

L: 유석 씨는 일반 독자들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거 아닌가요? 교양 철학서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게다가, 철학 책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면 어떤가요? 우리 같은 학자들은 너무 '체계 철학'을 하다 보니까, 책 내용 전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책을 부분적으로 읽고도 자기 삶에 무엇인가 영감을 받으면 그걸로도 충분한 거죠.

저도 L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에 좀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요즘 들어 더욱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인데, 상대방의 주장을 잘 이해해주는 일이나 나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잘 납득시키는 일이란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서요. 이건 정말 상호 간에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일인데, 저 자신도 이런 노력을 하기가 쉽지 않은 판에, 상대방에게 이런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무리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고 해도, 이런 글과 말을 이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상대방을 발견하는 일이란 쉽지 않네요. 물론, 제가 그런 상대방이 되어주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이해받지 못할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가정한 상태에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하는 역설에 언제나 빠지게 되는데, 철학을 공부하는 이상 이건 벗어날 수 없는 역설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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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위에서 언급한 일반 독자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사에서 갑자기 교육 업무를 맡아서 다시 어려운 책들을 이것 저것 찾아 보고 있습니다. 수십년전 학부시절에도 잘 이해를 못했던 책을 다시 꺼내들면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중장년층의 경우 중국철학이나 고전에 대한 내용은 상대적으로 서양 철학보다는 쉽게 이해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60대 이상의 경우 한자나 고전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양 철학은 조금 어렵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경우 위에서 언급된 2차 자료 등은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콜린 맥긴의 언어철학을 꼼꼼히 읽고 있는데, 혼자 읽다보니 올빼미에 올려놓은 요약들을 보면서 아 이런 의미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보고서 작성과 관련해서 논리적 접근을 강조합니다. 그러다 보면 언어와 논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나 해서 올빼미에서 언어 철학을 검색해보고 책을 샀습니다. 저도 1학년 2학기에 어빙 가피의 책(88년에 처음으로 번역본이 나왔는데 지금도 이 책이 출판되고 있더군요)으로 논리학 개론을 들었는데 기호논리는 후반부에 조금 다뤘고 그나마 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연결되서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의외로 대륙 철학의 경우 일반인 대상 강의들도 제법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학이나 다른 인문학에 관심있는 분들은 푸코나 라깡, 데리다에 관심있는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1차 자료를 읽지는 않겠지만, 2차 자료들은 어느 정도는 팔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식용으로 쓸지도 모르죠 ㅎㅎㅎ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은 백만권이상 팔렸다고 하던데요. 저도 조금 봤지만 일반인이 읽을만한 책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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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본 sns의 글이 생각나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애초에 원글도 토막글이지만;;;)
글쓴이에 따르면, 자기계발서의 주된 소비층들은 ''젊었을때보다 여유는 생겼지만, 여전히 취향의 질에 신경쓰는것은 왠지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여기는'' 40대 이상 성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자기계발서가 압축적이고 실용적인 유사-문화생활이 될수있는거죠.
따라서 자기계발서를 주로 소비하는 사람들조차도, 자계서의 내용을 그다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않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일부의 교양철학서를 자기계발서의 세련된 유행이라고 볼수있다면, '마침 압축본에다, 적당히 진중한 느낌도 주는' 아포리즘으로 된 교양철학서의 세일즈포인트도 아마 비슷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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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학문이나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아닐까요? 교양 철학서를 읽은 사람들이 철학에 흥미를 느껴서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어하고 더 공부하고 싶은 동기를 불러 일으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푸코의 『말과 사물』이 바게트가 팔려나가듯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렸고,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그 독자 중에서 완독한 사람이나 내용을 온전히 파악한 사람은 거의 드물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호킹 지수라는 말도 있죠) 우리나라에도 철학 교양서가 잘 팔려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철학이 취미와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어서 사람들끼리 만나서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를 하지 않고 철학 내용으로 스몰토크(?)가 이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저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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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해서

이게 생각났습니다. 해당 영상은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가 아들러의 저작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단 유튜브 영상입니다. 실제로 심리학과 다니는 제 친구도 저 영상이 맞다고 하더군요. 저는 전공자가 아니라서 정확한 시비는 모르겠습니다만 저 영상의 내용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이러한 예시를 통해 독자들이 내용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교양서적의 작가가 잘못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상이 나오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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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기존 철학자들’과는 많이 다른 면이 있어서 대중들이 좋아하는 것 같네요.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까요...

저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해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양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자기가 오해하는지 안하는지는 별로 신경쓰지 않을거에요. 철학 전공자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양 철학 책을 시험 보는 것처럼 개념을 오류없이 받아들이고, 철저히 공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그런 것까지 바라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철학을 접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교양‘ 서적이니까요.

과거의 저는 ‘쇼펜하우어를 읽는다면 칸트의 인식론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켰는지는 알아야지. 플라톤의 철학이 어떻게 녹아들어있는지도 알아야지. 표상의 세계를 지배하는 4가지 충족이유율도 모르고 의지에 대해서 논한다고? 박사 학위 논문은 읽어본거야?‘와 같은 지적 허영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그게 사실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또 결국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교양 철학 서적을 읽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 오류 가득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는다면 약간은 어이가 없고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죠...저도 제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잘 공부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으니까요.

저 교양 책을 쓰신 분이 니체 전공자시라면 믿음이 가지만, 요즘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표피만 들추어보고 오독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서 저도 안타깝기는 합니다. 저런 교양 철학책을 찾아서 읽어볼 정도로 한 번쯤은 철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저 교양 서적이 담고 싶어하는 내용과는 별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것은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처럼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흥미를 돋울 만한 것들만 집어와서 ‘삶이 고통인 이유!’, ‘인간관계, 어차피 혼자다. 아무도 믿지 마라!’, ‘지상 최대의 철학자도 여성혐오론자였다?’ 이런 토픽이겠죠. 물론 가십거리같은 가벼운 주제에서부터 시작해서 철학에 빠져들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대부분은 쇼펜하우어가 그런 결론(앞의 그 결론들도 단지 저렇게만 말한다면 왜곡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을 내리게 된 이론적 배경에 대한 부분까지 복잡하게 알려고 하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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