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천아카데미 추계 강좌] 철학의 길, 제7강: 한국철학

1. 대학원생들에게 ‘한국 현대철학자’란?

이승종: 사실 우리 시대의 연예인들은 많이 알아도, 대학원생조차 우리나라에 지금 활동하고 계시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에 대해 거의 백지상태인 것을 보고, 제가 놀란 적이 있습니다. 대학원생분들이 알고 있는 우리 시대의 철학자는 각각의 대학원생들이 소속되어 있는 해당 학교의 철학과 교수님들 정도인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사실 이게 선학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 시대에 만연한 사대주의가 학문 후속 세대에게도 그대로 전파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죠. 저로서도 책임이 큽니다.

2. 유령학이냐, 즐거운 학문이냐?

이승종: 저는 동과 서를 가리지 않고 제 관심이 이끄는 글들을 찾아 읽었지만, 지금까지 지어낸 저의 책이 주목하고 있는 글의 저자들은 모두 먼 과거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다 작고하신 분들이죠. 결국 제가 추구하는 철학은 일종의 유령학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돌아가신 유령들, 영혼들에게 사사해온 셈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여러분과 오늘 토론할 이 책, 『우리와의 철학적 대화』에서는 제가 걸어온 철학의 길에서 직접 만난, 제게 직접 영향을 끼친 동시대의 분들로 대화 상대자의 범위를 설정하였습니다. 유령은 더 이상 환대하지 않고요, 살아계신 분들을 모시는 자리를 준비해 본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20세기와 21세기 ‘한국’이라는 지역성과 ‘철학’이라는 주제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재미난 시도 아닙니까? 돌아가신 유령분들만 찾아 헤매지 말고, 직접 살아계신 훌륭한 학자들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배우고 하는 거요.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저는 학문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학문의 이념은 니체가 자기 책의 제목으로도 사용했던 ‘즐거운 학문’입니다. 저는 우울한 학문, 어두운 학문은 이상하게 제 성정하고 잘 맞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유령을 추종하는 일을 잠시 접고, 살아계신 분들과 생생한 대화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으려 했죠.

3. 학문이 유행인가?

이승종: 제가 한때, 학창 시절에, 존 듀이에게 관심을 가졌는데, 선배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존 듀이 한물갔어. 왜 그런 걸 봐? 좀 더 업데이트된 걸 봐야지. 언제 적 사람인데 그런 걸 보고 있어?”

이런 게,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적인 수용과 계승에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아니 그럼 한국의 철학과 대학원생은 늘 최첨단(cutting edge)의 잘 나가는 사람만 연구해야 됩니까? 그런 건 아니잖아요? 잘 나가는 사람을 따른다는 것은 결국 유행을 쫓는다는 건데, 학문이 유행입니까? 물론, 유행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죠. 동향 정도는 파악을 해야겠지만, 거기에 완전히 목을 매달아 가지고 끌려다니는 것은… 노예도덕이 바로 이런 것 같습니다.


박이문

4. 작가가 될 뻔한 충격

이승종: 서영은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그분의 소설집을 탐독하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특히 그분이 쓰신 「사막을 건너는 법」이라는 소설은 저로 하여금 작가가 되게 할 뻔한 그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선생님을 모방해서 쓴 고등학교 때의 습작 소설들이 지금 제 집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 들춰보지는 않았습니다, 창피해서….

5. 이 바닥에서는 레전드급인 분들

이승종: 박이문 선생님이 저에게 들려주신 말씀 중에 이런 게 생각나네요. 프랑스에 유학하실 적에 선생님의 지도교수가, 다른 분이 아닌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였다는 것. 그다음에, 선생님이 공부하시던 학교에서 강의를 하신 분이, 다름이 아닌 질 들뢰즈(Gilles Deleuze)였다는 것. 또 선생님의 저서를 프랑스어로 출간하는 데 도움을 주신 분이, 다름이 아닌 (우리나라에는 『섬』이라는 에세이집으로 유명한)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였다는 것. 다 이 바닥에서는 레전드급인 분들이 선생님을 키워내고 조련한 은사들입니다. 너무나 부럽더라고요. 서구 지성사에 족적을 남긴 훌륭한 유령들이죠. 데리다, 들뢰즈, 이런 분들이 선생님을 가호하고 이끌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철학의 길 7강(1) : 한국철학

00:00-04:56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홉스와 뉴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지난 강의의 설명이 올바른가요?
04:57-06:04 들어가는 말
06:05-43:22 한국철학 배우기와 짓기
43:23-46:26 국내 철학계를 관통하는 공통의 화제가 과연 존재할까요?
46:27-49:11 교수님께서 참여하신 국내의 철학적 논쟁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49:12-51:13 교수님께서는 최근에 국내의 어떤 철학적 논쟁들에 참여하셨나요?
51:14-53:59 교수님께서 인상적으로 지켜보신 국내의 철학적 논쟁들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나요?
54:00-59:17 고유섭과 서영은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59:18-1:02:10 Neil Diamond - Be (Theme Song from “Jonathan Livingston Seagull”)

철학의 길 7강(2) : 한국철학

00:00-03:11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목적이 되어야 할 학문이 오늘날에는 수단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요?
03:12-09:33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판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나요?
09:34-17:19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우리나라에 과연 고유한 철학이 있나요?
17:20-20:22 수강생과의 질문과 대답: 류영모와 함석헌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사상가들이 아닐까요?
20:23-22:50 고유섭과 서영은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22:51-27:40 미술작품이나 문학작품에서 철학적 의미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나요?
27:41-29:42 한국 드라마,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에서 철학적 영감을 받은 적은 없나요?
29:43-37:51 김형효 교수님과의 논쟁은 다소 아쉽게 끝난 것이 아닌가요?
37:52-39:28 김형효 교수님은 동일성이 차이성에 비해 파생적이라는 생각을 “같은 것은 다른 것의 다른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요?
39:29-41:29 김영건 선생님이 ‘같음/다름’과 ‘안/밖’의 이원적 구도를 설명하신 방식은 교수님이 책 1장에서 중심/주변의 이원적 구도를 해체하신 방식과 굉장히 유사하지 않나요?
41:30-42:17 박원재 선생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노장,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사이의 비대칭성 역시 강조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42:18-47:37 박이문 교수님의 철학이 지닌 어떤 점들에 주목하셨나요?
47:38-49:32 교수님이 인상 깊게 읽은 박이문 교수님의 책들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49:33-51:15 박이문 교수님의 철학은 (’존재-의미 매트릭스’라는) 일종의 칸트주의적 사유 구도 위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사물 자체의 문제’ 같은) 칸트주의적 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51:16-53:06 박이문 교수님과의 일화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나요?
53:07-56:41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반드시 필요할까요?
56:42-58:16 우리 철학계가 ‘한국’이라는 정체성 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58:17-59:20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59:21-1:01:37 세계화 시대에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요?

철학의 길 7강(1) : 한국철학

철학의 길 7강(2) : 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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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철학의 길에서 이승종 교수님은 김형효 교수와의 논쟁에 대해, 매우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을 하셨던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를 youn님이 날카롭게 파고들어 질문을 던지셔도 반성할건 하고 인정하시는 이승종 교수의 인간미가 느껴져서 더 좋았는데 여기서는 어떤 말씀을 나누셨는지 기대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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