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사람을 고르는 기준과 결혼할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 다른지 여부는 유서깊은 논쟁거리인듯하다. 일부 사람들은 연애용 연인과 결혼용 연인을 구분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강하게 비판한다. 일부 비판자는 결혼용 연인을 정할 때 주로 그들의 재산 혹은 직업, 물려받을 유산 등 경제적 요소를 매우 크게 고려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들은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어야 한다고 믿는 듯하다. 그리고 경제적 요소를 크게 고려하는 것은 그런 윤리에 크게 어긋난다고 믿는 듯하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 선 시장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부패한 곳으로 보일 것이다. 서로 관계를 맺는데 경제적 요소를 크게 고려하고, 심지어는 경제적 요소만 가지고 결혼을 결정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데 필요한 인격적 요소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그들이 놓치고 있는 점을 하나 밝히고자 한다. 바로 개인의 재산이 그들의 인격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사랑 여부를 상대방의 인격적 요소만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재산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국룰 3000'은 이 논의를 시작하는 좋은 출발점이다. 국룰 3000은 결혼할 때 여자가 모은 돈은 3천만원 정도가 국룰이라는 뜻으로 블라인드 같이 결혼 적령기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꾸준히 올라오는 밈이다. 이런 글이 올라오면 많은 사람들은 3천만원만을 모아놓은 여자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가한다. 예를 들어, 나이가 30이고 취업 후 5년 가까이 경제생활을 한 여자가 3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고려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여자가 모은돈이 3천만원이라면 남자친구는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의 인격에 대한 평가를 상당 부분 수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모은 재산의 양이 그녀의 경제관념, 소비습관, 미래에 대한 비전 등을 강하게 대표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산을 바탕으로 인격적 요소를 평가하는 건 크게 무리가 없어보인다.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직업은 대개 좋은 학벌, 그리고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직업이 경제적으로 유복한지 조사하였으며 꾸준히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이다. 때문에 이 지표는 그 사람이 대체로 사회에 유용한 재능과 그 재능을 발현시킬 성실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능과 성실성은 사람의 인격적 요소를 구성하는 상당히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지표가 인격을 반영하는 경향은 또한 그 사람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커진다. 왜냐하면, 긴 기간은 불운이 가져오는 효과를 상당 부분 제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능이 있고 꾸준히 노력하여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보자. 그 전날에 몸이 아프거나 시험운이 좋지 않아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번 시험에 응시한다면 매우 운이 좋지 않는 이상 시험에 붙을 것이다. 이처럼 사회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다면, 초기의 불운을 만나서 좋은 인격적 요소를 가지고도 경제적 지표가 일시적으로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5년, 10년간 사회생활을 한다면 계속 불운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좋은 인격적 요소는 좋은 경제적 지표를 만든다.
(2) 경제적 지표를 방해하는 불운 요소는 충분히 긴 시간을 통해 경감된다.
(3) 일정 이상 나이를 가진 사람의 경제적 지표는 인격적 요소를 반영한다
(3)은 다음과 같은 명제로 바꿀 수 있을 거 같다.
(3') 일정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의 인격적 요소를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경제적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
바탕으로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보면 아래와 같은 논증을 구성할 수 있다.
(4) 특정 사람과의 사랑은 그 사람의 인격적 요소를 평가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3') 일정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의 인격적 요소를 평가하려면 그 사람의 경제적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
(5) 4와 3'에 따라 일정 이상의 나이를 가진 사람과의 사랑은 그 사람의 경제적 지표를 반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재산과 인격의 관계를 논의하였으나, 아래와 같이 인격에 관한 좀 더 포괄적인 원리를 제시해볼 수도 있을 거 같다.
(a) 타인에게 좋게 평가받는 인격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타인에게 인정받는 결과물을 만든다
(a)는 좀 더 넓게 적용할 수 있는 원리인듯하다. (3')에 대해서 특정 도메인(음악이나 인문학 등)은 좋은 인격을 가지고도 좋은 경제적 지표를 만들 수 없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a)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도메인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이라면 좋은 논문을 쓰고 음악이라면 좋은 음악인으로 주변에 인정받을 수 있을듯하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준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