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연구의 신세대가 출현했다?: 마리우스 바르트만의 책에 대한 단상

평소에 도서관에서 눈여겨 보던 책 중에 마리우스 바르트만(Marius Bartmann)이라는 독일 연구자가 쓴 Wittgenstein's Metametaphysics and the Realism-Idealism Debate가 있었습니다. 꽤 최근에 출간된 비트겐슈타인 연구서이기도 하고, 비트겐슈타인으로 메타형이상학(metametaphysics)을 하겠다는 기획도 흥미로워서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한스 슬루가(Hans Sluga)라는 유명한 비트겐슈타인 연구자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 연구 신세대의 출현을 보고 있다."라고 적어두기도 해서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관심이 가기도 했습니다. 어제 (시험 공부가 너무 재미 없어서) 이 책의 서문을 뒤져보았네요.

바르트만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을 거부한다고 강조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로 대표되는 전기철학에서나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철학에서나 일관되게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거죠. 바로 이런 핵심 주장으로부터 (a)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과 후기철학을 관통하는 바르트만 자신만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이끌어내고, (b) 이를 통해 메타형이상학적 논쟁을 새롭게 조명해 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전체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n keeping with the spirit of Stern’s Solomonic words, I’ll focus on one such similarity between Wittgenstein’s early and later works while leaving open the possibility of other important similarities (and dissimilarities). The similarity I take to be a central idea in early and later Wittgenstein consists in systematically undermining the dichotomy between realism and idealism. (M. Bartmann, Wittgenstein's Metametaphysics and the Realism-Idealism Debate, Cham: Springer Palgrave Macmillan, 2021, p. 5.)

일반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철학은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에 영향을 받은 일종의 '실재론'으로 해석되고, 후기철학은 언어게임의 상대성을 강조한 일종의 '관념론'으로 해석됩니다. 그렇지만 바르트만은 이런 식의 해석이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 자체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일관된 비판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죠. 비록, 전기철학과 후기철학 사이에 어느 정도 불일치는 있더라도, 그 두 입장은 모두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 바르트만의 비트겐슈타인 해석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르트만은 비트겐슈타인 연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가지 커다란 논쟁에 자기 나름대로 개입하고자 하네요. 하나는 1980년대에 솔 크립키(Saul Kripke)의 회의주의적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난 '규칙 따르기'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2000년대에 코라 다이아몬드(Cora Diamond)와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의 단호한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둘러싸고 일어난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논쟁입니다. 바르트만은 이 두 논쟁에 참여한 주요 해석자들이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였다고 보네요.

특별히, 이 책의 말미에 규칙 따르기 논쟁과 관련해서 존 맥도웰(John McDowell)과 크리스핀 라이트(Crispin Wright)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평가하는 부분은 흥미로워보입니다. 사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제가 언젠가 논문을 쓰고 싶었거든요. 저는 두 사람의 논쟁이 적절하게 조화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라서요(라이트와 맥도웰의 비트겐슈타인 해석: 판단의존 이론인가 침묵주의인가?). 그런데 바르트만이 제가 생각한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이 논쟁을 평가하고 있는 것 같네요. 강조점이 저와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저는 규칙 따르기에 대한 오해가 해소되고 나면 라이트의 '판단의존 이론'과 맥도웰의 '침묵주의'가 사실상 대립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보아서요. 실재론과 관념론의 대립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바르트만의 입장과 큰 틀에서는 일치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거죠.

As I’ll argue in detail, the dispute between Wright and McDowell can also be considered a species of the realism-idealism debate because Wright’s reflections on the rule-following considerations go hand in hand with a rejection of the Platonist autonomy of rules, whereas McDowell endorses a variant of the autonomy thesis he calls “naturalized platonism.” In my view, the root of the skeptical problem, which I also take to be generating the realism-idealism debate between McDowell and Wright, is a problematic understanding of rules. The new conception of rules developed in Sect. 5 will therefore be essential for my proposed solution of the rule-following problem that eventually allows us to overcome the dichotomy between realism and idealism. (M. Bartmann, Wittgenstein's Metametaphysics and the Realism-Idealism Debate, p. 13.)

그런데, 이 책이 주목할 만한 면모를 꽤나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맞긴 하지만, 과연 슬루가의 추천사처럼 "비트겐슈타인 연구의 신세대"라고 불릴 만한지는 다소 의문스러워요. 적어도 서론 부분의 내용만 읽어보았을 때는 바르트만의 논지들이 아주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려워서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는 '실재론/관념론'이라는 메타형이상학 논쟁의 관점에서고, 다른 하나는 '규칙 따르기'와 '새로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비트겐슈타인 해석의 관점에서입니다.

(1) 메타형이상학 논쟁의 관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통해 실재론/관념론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겠다는 기획은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죠. 오히려 이런 기획은 너무 고전적이어서 다소 식상할 정도에요. 도널드 데이빗슨(Donald Davidson)이나 존 맥도웰(John McDowell)처럼 비트겐슈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은 이미 대부분 '도식/내용' 이분법이나 '마음/세계' 이분법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수십 년 전부터 강조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분법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테제 자체보다도, 이분법이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명이겠죠.

게다가, 적어도 '메타형이상학(metametaphysics)'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면, 이 분야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분석형이상학적 논의들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과 비트겐슈타인 연구사에만 초점을 맞추고, 더 넓은 의미의 메타형이상학은 거의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사실, 이 점이 저에게는 가장 아쉬웠어요.

가령, 분석철학에서 메타형이상학은 2010년대 이후로 정말 활발하게 논의되는 주제 중 하나거든요.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rlmers), 데이비드 맨리(David Manley), 라이언 와서만(Ryan Wasserman)이 2009년에 Metametaphysics: New Essays on the Foundations of Ontology라는 논문집을 편집한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이런 논문집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철학계에서 메타형이상학과 관련한 논의가 충분히 누적되었다는 것이거든요. 특별히, 콰인주의와 신카르납주의 사이의 양화사 변이 논쟁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인데도, 바르트만이 '메타형이상학'을 전면에 다루면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메타형이상학의 주요 논쟁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다소 태만한 것이 아닌가 해요.

(2) 비트겐슈타인 해석의 관점에서

'규칙 따르기' 논쟁과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논쟁도 이제는 다소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어요. 물론, 철학에서 '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비트겐슈타인을 연구하면서 (또 그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지나치게 최신 논의만을 지향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기는 하죠. 게다가, 저 두 논쟁들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렇지만 저로서는 비트겐슈타인 연구들이 최근 들어 제자리 걸음만 계속 걷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요. 적어도 제가 평가하기에, 저 두 논쟁들은 어느 정도 결론이 났거든요. 이제는 끝내도 좋을 것 같아 보이는 논쟁이 다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는 거죠.

가령, 규칙 따르기 논쟁은 주석적으로는 확실하게 결론이 났고, 철학적으로는 몇 가지 갈래들이 나뉘어졌다고 생각해요. 비트겐슈타인의 규칙 따르기를 '회의적 역설(skeptical paradox)'이라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크립키의 입장이 주석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는 이제 아무도 없죠. 심지어 오늘날 크립키의 입장을 가장 열심히 지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르틴 쿠쉬(Martin Kusch)조차 크립키가 주석적으로는 틀렸다고 인정하니까요. 다만, 규칙 따르기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바르트만도 자신의 책에서 설명하는대로) '성향적 환원주의(dispositional reductionism)'와 '원초적 비환원주의(primitive nonreductionism)'이라는 두 가지 의견이 갈리죠. 이 중에서도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은 원초적 비환원주의이고요.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해석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다이아몬드나 코넌트의 『논고』 해석을 주석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상당히 의문스러워요. 적어도,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자들이라면 다이아몬드와 코넌트의 해석이 매우 '비정통적'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인정하죠. 다만, 두 사람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지닌 '치유적(therapeutic)' 측면이 재발굴되었다는 점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이제 많은 연구자들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언어 게임에 대한 '이론(theory)'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죠. 초창기 철학사가들이 비트겐슈타인을 '일상 언어 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라는 일종의 화용론적 사조 속에 무분별하게 묶어버린 것과 비교하면, 비트겐슈타인 연구에서 치유적 측면이 새롭게 강조되었다는 점만큼은 다이아몬드와 코넌트를 통해 일어난 연구사적 발전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다 보니, 이렇게 연구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에서, 규칙 따르기 논쟁과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논쟁을 바르트만이 다시 언급한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의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물론, 기존 논의들에 대해 정리와 소개를 잘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학문적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만, 바르트만의 책이 그 이상의 철학적 통찰을 줄 수 있을지 저로서는 다소 회의적이에요. 이미 완결된 논쟁을 다루는 것보다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중요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었던 주제를 논쟁적으로 지적하는 편이 더욱 유의미할 것 같아 보이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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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다른 주제이지만 저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신진 연구자의 독특한 작업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Argues that Nietzsche's political philosophy requires the material egalitarianism of socialism. Shows how Nietzsche's aristocratism contradicts other, more fundamental commitments in his work. Clarifies how Nietzsche's principle of amor fati contributes to a theory of justice, rights, and democracy.
Politics After Morality Toward a Nietzschean Left (Donovan Miyasaki)

이런저런 논증을 통해 니체주의적 사회주의 정치학을 만들어내는게 저자의 목표로 보이는데, 니체와 사회주의 모두에 관심이 있다보니 시간이 나면 꼭 읽으려고 대기중입니다.

추천사에는 대가 라인인 Hatab과 Conway가 극찬을 해뒀네요.

This is a thoughtful, provocative, important study that breaks new ground in efforts to bridge Nietzsche’s philosophy with democratic life and politics. (Hatab)
Donovan Miyasaki has delivered a bold new treatment of Nietzsche’s contribution to political philosophy. (Co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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