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물들을 통해 돌아보는 철학자연합대회 학문후속세대 발표

*이 글은 경상국립대 철학과의 철학잡지 『NOWHERE』 Vol. 8의 7-10쪽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이지만, 이번 9월 1일에 『NOWHERE』가 발행되어서 이제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1. 이승종 교수님: 발표에 참여하게 된 계기

2월 초에 지도교수님이신 이승종 교수님께서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5월에 있을 한국철학자연합대회에서 발표를 맡으셨다고 하시면서,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섹션도 있으니 저도 지원해 보라고 권유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교수님께서 전해주신 한국철학자연합대회 소식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사실, 대학원생에게는 공부한 내용을 공적인 자리에서 발표할 기회나 그 내용에 대해 공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기회가 그다지 많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직 학위 과정을 다 끝내지 못한 ‘학생’의 신분으로는 교내 수업이나 교내 행사를 벗어나는 학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함께 의견을 교환할 동료 대학원생들이 학교 안에 많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공부한 내용을 어느 누구에게도 검토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세부 전공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혼자 자료를 읽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글을 써야 하는 일들이 빈번해집니다. 저 역시 이러한 아쉬움을 자주 느껴서 발표나 논평의 기회가 생기면 가능한 한 참여하고자 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번 발표는 국내의 대표적인 철학 학회들이 모두 모이는 행사에서 이루어지니, 발표자로 선정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발표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공부한 내용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2. 박이문 교수님: 바기데거와 하이데거를 비교한 이유

이번 발표에서 박이문 교수님의 하이데거 해석을 다루어야겠다고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본래는 ‘초월론적 현상학(transcendental phenomenology)’이라는 맥락에서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해설하고 비판하는 글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발표 신청서에 적힌 이번 대회의 주제가 ‘현대한국철학의 과거·현재·미래’인 것을 확인하고서 하이데거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현대한국철학자’인 박이문 교수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한국철학에 대해 그동안 제가 접한 대부분의 강의나 글들은 원효, 이황, 정약용 같은 너무 오래 전의 사상가들을 요약하는 데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인물들을 연구하는 작업도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우리 시대의 한국에서 제시된 흥미로운 담론들이 ‘한국철학’을 다루는 강의와 글에서조차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는 점은 저에게 항상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특별히, 박이문 교수님의 하이데거 해석이 현상학과 해석학을 전공하는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 거의 논의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박이문 교수님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명료하게 소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사유를 독창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박이문 교수님의 하이데거 해석에는 일반적인 연구자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개성 강한 주장들이 다소 포함되어 있지만, 이러한 내용들까지도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고유한 성과라고 인정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마치 미국의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의 하이데거 해석이 종종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드레이데거(Dreydegger)’라고 불리기까지 하더라도, 미국에서 하이데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드레이데거’ 속에 담긴 철학적 통찰을 존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발표를 통해 박이문 교수님의 하이데거 해석을 ‘바기데거(Parkyidegger)’라고 명명하고서 그 의의와 한계를 주변에 소개하는 작업을 수행해보고자 하였습니다.​

3. 이주희 선생님: 논평을 통해 배운 내용

논평을 맡아주신 경상국립대 이주희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발표문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정말 꼼꼼하게 읽어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발표문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을 포착해내어 유익한 조언과 예리한 비판을 제시하시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하이데거의 후기 존재사유가 탈인간중심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데도, 제가 박이문 교수님과 하이데거를 비교하는 작업에서 ‘탈인간중심주의’라는 주제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않았다는 지적은 정말로 날카로웠습니다. 저의 발표문 내용만으로는 하이데거가 마치 인간중심주의를 주장한 철학자인 것처럼 잘못 생각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았습니다. 저는 “대상이 존재한다.”라는 사태와 “대상이 인식 주체에게 주어진다.”라는 사태 사이의 공속 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대상의 존재를 인식 주체인 인간이 능동적으로 구성해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들을 발표문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탈인간중심주의는 2010년대 이후에 철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사조들인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만큼, 하이데거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들이 주의를 기울여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퀑탱 메이야수는 하이데거의 철학이 ‘상관주의(correlationism)’라는 일종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 매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그레이엄 하먼은 하이데거의 철학이 ‘객체들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objects)’이라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사유를 품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판하는 인물이나 옹호하는 인물이나 모두 ‘탈인간중심주의’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논의를 펼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탈인간중심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주희 선생님의 논평은 제 발표문의 논의를 오늘날 하이데거 연구의 핵심적 쟁점과 연결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저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4. 이하영, 김주용, 윤준식, 이지형 선생님: 흥미로운 발표들

학문후속세대 발표에 참여하여 다른 대학원생들의 훌륭한 연구를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유익하였습니다. 특별히, 저의 철학적 관심사와 관련해서는 크게 네 분의 발표가 기억에 남습니다. (a) 이하영 선생님은 후설의 현상학에서 ‘본능(Instinkt)’ 혹은 ‘충동(Trieb)’ 개념이 이성 개념과 대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후설의 사후 유고에 근거하여 설명하셨습니다. 후설의 현상학을 통해 ‘합리성/비합리성’의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발표문의 내용도 흥미로웠고, 프레젠테이션을 활용한 깔끔한 발표 진행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b) 김주용 선생님은 아도르노의 ‘형상금령(Bilderverbot)’ 계율에 대한 기존 연구자들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대안적 해석을 제시하셨습니다. 영미권 과학철학의 맥락에서 등장하는 뒤앙-콰인 논제를 통해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을 소개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c) 윤준식 선생님은 우리가 언제 보람을 느끼고 언제 보람 없음을 느끼는지를 바탕으로 ‘보람’이라는 개념을 분석하셨습니다. 영미권 도덕철학의 방법론을 사용한 연구였지만, 이러한 연구는 일종의 ‘보람에 대한 현상학’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d) 이지형 선생님은 니체의 ‘아곤(Agon)’ 개념을 통해 오늘날의 능력주의를 문제 삼으셨습니다. 얼핏 능력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니체의 철학이 정반대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개문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생. 해석학을 중심으로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 브랜덤, 맥도웰 등 잡다한 철학자들을 공부하고 있다. 「부정신학 없는 해체주의를 향하여: 해체를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과 「사용 이론과 회의주의를 넘어서: 비트겐슈타인의 정적주의」 등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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