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는 제목으로 터프츠대의 대니얼 대닛이 New York Time Magazine와 한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자서전 I've Been Thinking이 근간인 것과 맞춰 나온 인터뷰 같네요. 팔순이 넘었지만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 특유의 위트는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읽다보니 인터뷰 말미의 대목을 보고 피식했습니다.
저흰 객관적 참이라는 이상은 어떤 유의미한 방식으로도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리처드 로티 및 자크 데리다와 동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머스 네이글이 "The View From Nowhere"에서 설명하는 그런 의미에서의 객관점 참의 이상 말이죠. 즉 절대적 참은 일단 제껴둡시다. 하지만 실용적 참은요? 그건 실재하며, 그게 바로 저희가 희구하는 것입니다.
로티는 여러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영웅이었죠. '참'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이 모두가 담화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항상 그에 반발했습니다. 아냐, 여전히 꽤 괜찮은 '참' 개념은 성립한다고. "이 지도에 우리 주 도로들 잘 나옴?"이라고 말할 때 쓰이는 의미에서의 참 개념 말이죠. 그거에 대해선 저희가 꽤 객관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로티는 그걸 보고 채식주의적 참 개념이라고 불렀습니다. 뭐, 저희 채식주의자 하기로 하죠!
로티나 데넷이나 모두 채식주의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철학자라 굳이 서로 싸울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일종의 '말뿐인 싸움(verbal dispute)'을 한 것인지, 둘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객관적 참의 이상을 버리고 실용적 참만 추구하자는 것으로 보이는 데 말이에요.
사실 저도 처음 듣는 말이었는데요. 맥락상 '그냥 실용적 의미에서의 참', 즉 비유하자면 속이 꽉 들어찬 투쁠 한우처럼 그 형이상학적 함의를 따져물을 수 있는 의미에서의 '참'이 아니라, 그냥 '아, 그냥 적당히 맞아떨어지니까 '참'이라고 해~'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글링 해보니까 아래 논문에서 로티가 "채식주의적 '의미' 개념"에 관해서 언급을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