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워낙 유명한 데다,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아마 국내의 주요한 저자나 연구서는 이미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영어권의 책들을 중심으로 소개해 드리자면,
(1) Being-in-the-World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존재와 시간』 연구서는 드레이퍼스의 Being-in-the-World에요. 이 책은 영미철학의 관점에서 굉장히 독창적으로 하이데거를 해설한 것으로 유명하죠. 하이데거의 철학이 '명시성', '심적 표상', '이론적 총체론', '거리두기와 객관성', '방법론적 개인주의'라는 다섯 가지 전통 철학의 가정들을 극복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에요. 드레이퍼스의 하이데거 해석이 얼마나 주석적으로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이 책이 영어권의 하이데거 연구에서 지금까지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라는 점만큼은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2) Essays on Heidegger and Others
리처드 로티도 드레이퍼스와 함께 영어권에 하이데거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로 유명하죠. 제가 알기로, 로티는 본래 하이데거에 대한 단행본을 쓰고 싶어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췌장암으로 사망해서 Essays on Heidegger and Others라는 논문집이 남았다고 해요. (웃기는 이야기지만, 언젠가 로티는 하버마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리다가 "하이데거를 너무 많이 읽는 데서 오는from reading too much Heidegger" 병 때문에 죽었다고 한 적이 있어요. 데리다는 췌장암에 걸려서 사망하였거든요. 그런데 로티 자신도 데리다처럼 췌장암으로 사망하자, 이번에는 로티의 딸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 "하이데거를 너무 많이 읽는 데서 오는" 병 때문에 사망했다는 농담을 했다더라고요. https://brill.com/previewpdf/journals/copr/11/1/article-p115_11.xml / RICHARD RORTY (1931-2007): In Memoriam on JSTOR)
예전에 제 지도 교수님이신 이승종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일화에 따르면, 교수님이 뉴욕주립대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거기서 재직 중이던 한국계 철학자 조가경 교수님의 하이데거 강의를 수강하신 적이 있었대요. 조가경 교수님은 현상학과 실존주의의 권위자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분이셨는데, 조가경 교수님께 하이데거 연구서로 어떤 글을 읽어야 하냐고 여쭤보니까, 그분이 로티의 하이데거 논문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추천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하이데거에 대한 로티의 해설과 비판이 아주 꼼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특히 로티가 후기 하이데거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로티는 분명 '핵심'을 잘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철학자죠. '표상주의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주요 논지를 소개하는 로티의 해설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3) Heidegger Explained
그레이엄 하먼은 소위 '객체지향 존재론'이라는 입장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사람의 전공은 사실 하이데거의 철학이죠. 흥미롭게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은 하이데거의 '도구' 개념에 대한 독창적 해석에 근거하고 있어요. 하먼은 Tool-Being: Heidegger and the Metaphysics of Objects이라는 책에서 하이데거가 어떻게 도구적 존재자들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는지를 해설해요. 사실, 하먼의 하이데거 독해는 드레이퍼스나 로티의 독해보다 훨씬 비정통적이고, 저 역시 개인적으로 하먼의 하이데거 해석과 그의 객체지향 존재론에도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이 글을 정말 잘 쓴다는 점만큼은 인정해요. 몇몇 부분에서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Heidegger Explained에는 하이데거의 철학 전반에 대한 하먼의 이해가 잘 나타나 있어요.
(4) Heidegger: A Critical Reader
아주 훌륭한 논문집이에요. 드레이퍼스, 호그런드, 브랜덤, 로티, 테일러 등 영미권의 저명한 철학자들이 하이데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석사 시절 대학원에서 하이데거를 공부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책이에요. 특별히, 이 책에서 호그런드와 브랜덤의 논문을 추천드립니다. 영미권 언어철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맺고 있는 관계를 잘 보여주는 글들입니다.
(5) Dasein Disclosed
호그런드는 드레이퍼스의 제자 뻘되는 인물이에요. 피츠버그 대학에 재직한 적도 있어서, 소위 '피츠버그 학파'와도 연관이 많죠. 드레이퍼스와 함께 하이데거를 굉장히 독창적으로 해설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이 호그런드의 하이데거 이해를 집약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이 책 51쪽 이하에 나오는 "The Being Question"이라는 챕터는 하이데거를 처음 입문하는 분들에게 꼭 권해드리고 싶어요.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나 '존재론적 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우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어서요. 특히, 이 챕터 마지막에 체스 게임의 예시를 들어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은 압권이죠. 폰이 무엇이고, 룩이 무엇인지 등, 체스 게임 속 존재자들에 대한 모든 기술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체스 게임의 규칙'이 전제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바로 그 규칙의 층위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층위라는 거에요. (그래서 바로 이 점 때문에 '존재'를 강조하는 하이데거와 '게임'을 강조하는 비트겐슈타인이 굉장히 유사해지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