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과 인식에 관한 질문

얼마 전, 한 커뮤니티를 보다

성매매는 여성의 성을 손쉽게 구매, 이용, 전유할 수 있다는 인식을 재생산하고 확인하는 행위이며 그를 통해 여성의 지위를 계속 성적인 것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라는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매매를 반대하는 것은 맞지만 저런 이유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

잠시 시간을 가지고 고민해 보니, 댓글을 변주하게 되면

게임은 전쟁과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낮추고 정당화하며, 이를 통해 반전 사상과 그에 관련된 정치적 입장을 인식적으로..

등과

'오타쿠 문화'는 자기파괴적이고, 여성을 성적으로 묘사해..

등으로

위의 논리와 같은 형태에서는 대개의 대중문화 향유 자체를 죄로 만들 수 있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아래와 위가 다르다 해도, 위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나름의 답을 찾아보던 저는 저 말이 분명히 옳은 측면도 있지만, 모든 주체를 행동의 부정적 측면을 사상적으로 일반화해 받아들이는 존재로 가정함에서 문제를 찾아 보았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떨치긴 어려웠고요.

데리다, 알튀세르가 묻어 있는 말인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런 주제로 그다지 생각을 해본 적 같지 않아 생소하기도 하고, 명쾌히 답이 나지 않으니 은근히 싱숭생숭하더군요.

궁금한 것은, 이에 관한 철학자들의 입장에서의 옹호/반대

그리고 여러분들의 의견입니다.

초심자인지라.. 항상 부족한 글 죄송합니다. 주제가 민감할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제 시선에서 위 문장을 철학적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번역하면

성매매는 여성의 성을 사물화시켜 사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만들며, 단지 도구적 가치만을 여성에게 부여된다. 계속된 물화 과정 속에서 여성은 고유한 가치를 잃고 언제나 교환가능한 것이 됨으로써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권리 또한 침해당한다.

사물화 대신 대상화를 넣어서 주체(성매매 구매자)가 대상(여성)을 포섭한다는 논리를 적용시켜도 상관없습니다.

성매매에서 성매매 구매자는 여성의 몸을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정당한 값을 지불했으면 나에게 귀속되는 것, 즉 포섭가능한 것으로 전락한다.

사물화, 대상화 등은 루카치를 비롯한 맑스주의 쪽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이나, 페미니즘 담론에서는 약간 기본치로 깔고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애초에 인간주의적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 아주 깊게 연관되어 있기도 하구요.

다음은 feminism oxford bibliographies의 교과서 부분입니다. 구체적 논의는 이를 참고하시는게 좋겠습니다.

‣Saul, Jennifer M. Feminism: Issues and Argument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Schott, Robin May. Discovering Feminist Philosophy: Knowledge, Ethics, Politics, Feminist Constructions. Lanham, MD: Rowman & Littleeld, 2003.

‣Stone, Alison. An Introduction to Feminist Philosophy. Cambridge, UK: Polity, 2007.

(『페미니즘 철학』, 양창아 옮김.)

‣Tong, Rosemarie. Feminist Thought: A More Comprehensive Introduction. 3d ed. Boulder, CO: Westview, 2008.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김동진 옮김. 찾아보니 로즈마리 퍼트넘 통의 다른 책도 몇권 번역되어 있다.)

5개의 좋아요

그 댓글에는 성을 손쉽게 구매, 이용, 전유하는 것이 왜 나쁜가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습니다. 그것이 '여성의 지위를 계속 성적인 것으로 제한한다'는 주장은 모호합니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을 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특정 시간 동안 특정한 제한이 부과된 사용권을 구매할 수 있는 성적 신체로만 대하게 하거나 여성 일반을 전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성적 매력의 관점에서만 대하게 한다는 얘기라면, 전자는 성매매라는 거래의 성격을 기술만 한 것에 불과하고 후자는 실증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성매매가 합법적인 나라들이 있는데, 그 나라들의 다수 국민들과 다수 위정자들은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 합법화를 시도하고 합법화에 찬성했을까요? 여러가지 고려를 복합적으로 해서 종합적으로는 나쁘기보다는 좋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특정한 성매매가 아니라 합법화된 성매매 자체가 나쁜 것이라는 결론이 확실한 것이 되려면 그 결론은 서로 사랑하는 이들 사이의 섹스만이 올바른 섹스다라는 이상을 괄호 속에 집어 넣고 그 이상이 도무지 실현될 수 없는 현실세계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 물론 성평등과 충분히 많은 좋은 일자리들이 그 이상을 극히 매력적으로 여기는 이들의 수를 늘릴 수는 있다는 단서를 달기는 해야 합니다 - 장기간과 여러 나라에 걸친 대규모 사회과학적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게임에는 여러 장르가 있고 한 장르에 속한 게임들도 비주얼과 스토리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성매매의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들과 게임의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들을 곧바로 같이 놓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과 살인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낮추는' 효과를 내는 것은 밀리터리 게임이나 특정한 밀리터리 게임에 국한될 것입니다. 관련 연구도 이미 있습니다.

5개의 좋아요

(1)

저는 맑스주의-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현상/주장을 분석해주신 @sophisten 님이나 개별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남겨주신 @cittaa 님과는 조금 다른 답을 드릴까 합니다.
(기본적으로 cittaa님의 관점처럼 주신 세 가지 질문은 각각을 분리해서, 엄격한 실증적 차원에서 답을 내야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2)

기본적으로 이 세 문제 아래 깔린 질문자님의 궁금증은 "내면화" 테제처럼 보입니다. 성매매/게임/오타쿠 문화에 참여/향유/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주체는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가?

이 문제는 크게 두 층위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 의식적 차원. 저희는 유튜버든 아니면 훌륭한 사상가든 누군가가 하는 말에 그럴듯하다 여겨서 그걸 의식적으로 납득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 (ii) 비의식적 차원도 있겠죠.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자주 저런 것들에 노출되다보니 어떤 "암묵적인" 영향이 있었다.

아마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될 것은 (ii) 비의식적 차원에서의 영향일듯합니다.

(3)

현대 프랑스 철학에서는 맑스-그람시-알튀세르-푸코를 거쳐서 (<권력과 저항>이라는 책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를 일종의 "내면화"라 여기는듯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각 철학자마다 각기 다른 결론을 내놓았고요. (궁금하시다면 쉽진 않지만 <권력과 저항>을 참고하시면 될듯합니다.)(아마 다들 한 축으로는 프로이트/라캉 같은 정신분석학을 기본 틀로 삼는듯합니다.)

한편 현대 영미권 분석철학에서는 이제야 연구되는 분야입니다. 대체로 인식론/심리철학에서는 믿음(belief), 믿음 개변(belief revision), 믿음의 윤리(무엇이 좋은/옳은 믿음인가, ethics of belief) 그리고 응용언어철학과 사회인식론에서는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 등이 이와 연관되어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관련 sep 아티클을 참조하시는게 도움이 되겠지만,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있는지는 의심스럽긴합니다.)

[예전에 관련된 주제로 짧게 짧게 적어본 것들인데 혹시 몰라 링크를 답니다.]

2개의 좋아요

다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