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냐?인정이냐-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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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정체성 정치 시대의 사회 정의 | 분배, 인정, 참여 -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1장 불완전한 정의(justice)에 대한 비판

분배와 인정은 철학적, 정치적 의미를 가진 용어이다. 철학적으로 두 용어는 규범적 패러다임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들은 사회운동들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철학적으로 두 용어는 서로 다른 전통에서 유래하는데 분배 개념은 대표적으로 롤스나 드워킨 같은 20C 후반 자유주의 전통에서, 인정 개념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유래한다. 분배 전통은 개인적 자유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평등을 결합하여 경제적 분배 개념을 정당화했다. 반면에 인정 전통은 인정을 주체들의 이상적 상호관계로 보았다.인정을 통해 주체들은 서로 동등한 존재인 동시에 분리된 존재로서 서로를 바로본다. 그러므로 주체들은 상호 인정을 통해 비로소 개별적 주체로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분배 전통과 커다란 차이를 만드는데 분배 전통은 사회적 관계보다 개인이 앞선다고 보지만 인정 전통은 반대로 사회적 관계(인정)가 개인(개별적 주체)에 앞선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분배 전통은 절차적 정의와 같은 형식적 "옳음"이 실질적 좋음보다 앞선다고 본 반면 인정 전통은 좋은 삶이나 자기 실현과 같은 실질적 "좋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처럼 두 용어의 철학적 의미가 지닌 차이점에 따라 두 개념의 각기 다른 옹호자들은 상대방의 개념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분배와 인정 개념은 다른 전통의 옹호자들에게 비판받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분배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의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분배 개념은 생산관계들을 간과하고 착취, 지배, 상품화의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후기 구조주의 전통은 인정 개념이 표준적인 주체 중심적 가정으로 인해 급진적인 비판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두 개념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불화를 포함하여 제기되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배와 인정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두 개념에 제기되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잠시 유보하고 두 개념의 정치적 의미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사회운동들이 제시하는 요구들을 이념형1적으로 제시하여 살펴봄으로써 두 개념을 해명할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두 개념을 바라보게 되면 두 개념은 규범적 패러다임이라기 보다 "오늘날 시민사회에서 벌어지는 제반투쟁을 지시하는 정의에 관한 대중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두 패러다임은 불의에 관한 원인과 그에 대한 해결책과 관련된 견해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나는 분배와 인정을 두 패러다임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두 관점이 대립하는 이유와 방식을 해명할 것이다.

1-1 잘못된 대립에 대한 해부학

분배와 인정 패러다임은 종종 특정 사회운동들과 연결된다. 보통 분배는 계급 정치, 인정은 정체성 정치와 연결되며 특히 정체성 정치는 젠더, 성, 민족, 인종을 둘러싼 투쟁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결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분배와 인정 패러다임을 지나치게 좁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분배 패러다임에서 계급 투쟁과 관련된 인정의 차원을 은폐하기도 한다.이와 비슷하게 잘못된 결합은 인정 패러다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정투쟁 속 여러 경제적 불의들을 시정하는 흐름들을 은폐한다. 마지막으로 인정 정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정 요구들을 정체성 정치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의 특수성 요구로 축소시킨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연결을 거부하고 오히려 두 패러다임을 모든 사회운동에 적용될 수 있는 사회 정의에 관한 상이한 관점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분배/인정 패러다임을 특정 사회운동으로 축소하지 않고 오늘날 벌어지는 모든 사회운동을 고려할 수 있을 정도로 폭 넗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배 패러다임은 계급중심적 정치(ex 사회민주주의),사회경제적 변혁(ex 마르크스주의), 젠더, 인종, 민족과 결부된 경제적 불의 시정(ex 반인종주의)과 같은 경향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인정 패러다임은 부당하게 평가절하된 정체성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정체성 정치(ex 게이 정체성)부터 "본질주의"를 거부하는 해체적 경향들(ex 퀴어(queer)정치, 비판적 인종 정치 등등)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 패러다임은 네 가지 측면에서 구별된다. 첫째 두 패러다임은 서로 다른 불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분배 패러다임은 사회가 가진 경제 구조로부터 발생하는 경제적 불의에 집중한다. 이러한 불의로는 타인의 노동 결과를 부당하게 소유하는 "착취", 천하고 임금이 낮은 직업에 구속되거나 그러한 노동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인 "주변화", 적합한 물질적 생활 수준을 보장받지 못한 상태인 "박탈"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인정 패러다임은 사회적 묘사, 해석, 의사소통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적 불의들에 집중한다. 이러한 불의들은 자신의 문화와 적대적인 문화에 결합되어 벌어지는 "문화적 지배", 자신의 문화가 공적인 관행에서 배제되는 "불인정", 공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틀에 박힌 묘사나 의사소통 상황에서 나타나는 비방과 같은 "경멸"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두 패러다임은 불의에 대응할 상이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 분배 패러다임에게 불의는 경제적 불의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으로 경제적 개혁을 제안한다. 이는 소득/부 분배, 노동 분업 재조정, 토지 소유 재분할, 투자결정 절차 민주화 등등 다른 경제적 구조 변혁들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인정 패러다임은 문화적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 문화적/상징적 변화를 제안한다. 이는 경멸받는 정체성과 집단들의 문화를 재평가, 문화적 다양성 인정과 긍정적 평가, 기존의 편협한 묘사와 해석, 의사소통의 사회적 유형들의 변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셋째 두 패러다임은 불의를 겪는 집단들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분배 패러다임에서 고통받는 집단적 주체는 계급 혹은 계급과 유사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시장이나 생산수단에 대한 다양한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 이 집단에는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프롤레타리아 뿐만 아니라 이민자 같은 종족적 소수자와 인종 차별을 겪는 집단도 포함된다.이는 착취 당하는 노동자들, 착취될 수조차 없는 사람들, 무임금 노동을 강제받는 젠더인 여성들과 같이 경제적 불의를 받는 다양한 집단을 포괄한다. 이에 반해 인정 패러다임에서 고통받는 집단은 베버주의자가 말하는 신분집단과 유사하다. 그들은 인정관계, 즉 사회 내 다른 집단보다 열악한 존중,존경,특권을 누린다는 점에서 불의를 당한다. 지배적인 가치 유형들은 이들이 사회적 지위와 존경을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끔 상이하고 열등한 존재로 낙인 찍는다. 이러한 인정관계를 통한 불의를 당하는 집단으로는 게이, 레즈비언 같은 성 소수자, 소수 인종, 젠더와 같이 일반적인 사례부터 우리의 문화적 코드로 해석되어 여타 복합적으로 정의된 집단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상이한 측면들로 인해 두 패러다임은 집단의 차이에 대한 상이한 관점을 가지게 되며 이것이 마지막 측면이다. 분배 패러다임은 당연하게도 집단의 차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해소하려한다. 그들에게 집단의 차이는 내제적 차이가 아니라 부당한 경제구조에 따른 외적 차이일 뿐이다. 반면에 인정 패러다임에서 집단의 차이를 보는 두 관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 관점은 이러한 집단 간의 차이를 문화의 긍정적 측면으로 본다. 오히려 비판받아야할 것은 문화를 구별한 이후에 덧붙혀진 집단 간 위계를 정하는 부당한 가치평가 방식이다.

반면에 두 번째 관점은 집단 간의 차이와 위계를 정하는 도식은 동시에 형성된다고 본다. 따라서 집단 간의 차이을 만드는 구별을 없애야 한다. 정리하자면 첫번째 관점은 집단 간의 차이를 긍정하고 그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보지만 두 번째 관점은 차이를 긍정하기보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계를 허물거나 해체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보면 두 패러다임은 상호 배타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분배 지지자들은 정체성 정치가 진정한 경제적 문제들을 이탈하고, 집단을 분열시키고, 보편주의적 도덕 규범을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보기에 진정한 정치적 목표는 경제 개혁이다. 이에 반해 인정 지지자들은 분배 정치가 지배 집단의 규범을 보편적인 것으로 강요하고 종속 집단들을 지배 규범에 동화되도록 만들며 종속 집단들의 차이를 잘못 인식하게 함으로써 불의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들이 보기 진정한 정치적 목표는 문화적 개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잘못 설정된 대립일 뿐이다.

1-2 착취당하는 계급, 멸시 받는 성, 그리고 이차원적 범주

잘못된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사고 실험을 해보자. 상이한 유형의 사회적 차별들이 개념적 스펙트럼을 띤다고 가정하자. 한 쪽 끝에는 분배 패러다임, 다른 쪽 끝은 인정 패러다임, 가운데는 두 패러다임 모두 해당하는 이차원적 범주가 있다. 분배 범주를 이념형적으로 재구성하여 이 범주에 해당하는 한 사회를 상상해보라.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의는 계급 구별에 따른 경제적 착취이다. 이러한 불의는 경제적 구조로 인해 발생한다. 물론 계급에게 가해지는 문화적 불의, 예컨데 가난한 노동자들은 게으르고 가치 없는 사람들이라는 가난 이데올로기와 같은 여러 낙인들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구조 혹은 착취를 정당화 하기 위해 발생하는 파생적인 억압이다. 따라서 경제구조 개혁과 계급을 철폐한다면 자연스레 문화적 불의는 사라진다. 결론적으로 이 사회에서 불의의 해결책은 자연스레 집단 간의 차이를 없애는 분배가 된다.

이번에는 반대로 인정 범주를 이념형적으로 재구성하여 베버적 신분 구별로 인한 문화적 불의를 겪는 사회를 상상해보자. 이 사회에서

불의는 "제도화된 문화적 가치 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 성(sex)과 관련된 불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불의는 경제 구조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사회에서 차별은 자본주의 사회 속 모든 계급에 분산되어 있고 노동 분업에 명확한 위치도 없으며 착취당하는 계급으로 구성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배적 가치 유형에 해당하는 문화는 규범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문화는 혐오와 무시를 받게 된다. 당연하게도 제도화된 가치 유형은 법으로서 성문화되어 법적 해석을 가치유형를 바탕으로 규정하고 정부 정책, 일상적 직업 관행, 대중 문화, 의사소통까지 일상의 전 영역에도 뿌리 박게 된다.

물론 그들은 경제적 불의도 겪는다. 예컨대 동성애자들은 민간직종이나 군대에서 즉각 해고되며 가족 제도와 같은 폭 넓은 사회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한 불의는 경제 구조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신분 차별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의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배적 문화를 해체하고 기존의 가치 유형들 대신 지배 받는 문화에 대한 동등한 존중을 표현하는 가치 유형들로 대체하는 인정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양 끝 스페트럼에 해당하는 문제들의 해결책은 명확하다. 진짜 문제는 둘 다에 해당하는 사회적 불의, 다시 말해 경제적 불의와 문화적 불의 모두 근본적이고

독자적인,불의 스펙트럼 중간에 해당하는 이차적 범주이다. 이 범주에 해당하는 사회적 차별로는 젠더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분배 관점에서 보면 젠더는 계급 차별을 당한다. 젠더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젠더는 임금을 받는 생산 노동과 무임금 출산, 가사 노동을 나누는 구별 구조를 결정한다. 보통 후자 노동에는 여성이 할당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젠더는 생산 노동 중에서도 고임금을 받는 제조업, 전문 직종과 저임금 여성 직종(pink collar)과 가사 직종 등을 나누는 구별 구조를 결정한다. 이를 보면 젠더는 경제적 착취, 주변화, 박탈을 당하는 계급과 같은 차별을 당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경제구조를 변혁하는 분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정의 관점에서 볼때 젠더는 신분 차별도 당한다. 젠더는 계급 뿐 아니라 성(sex)과도 연관이 있으며 이는 곧바로 젠더를 인정의 차원으로 끌어들인다. 젠더는 지배적인 문화적 해석과 가치 유형으로 인해 여성을 비롯하여 낮은 신분들은 여성화되어 평가절하된다.

젠더가 겪는 불의의 핵심은 남성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치 유형은 남성성과 관련된 특징에는 특권을 부여하는 반면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특징은 평가절하한다. 남성중심주의적 가치 유형은 많은 법적 영역(가족법, 형사법)에서 성문화되어 사생활, 지율성, 자기방어, 평등에 대한 법적 해석을 결정한다. 이는 정부 정책들(출산, 이주, 망명 정책 등등)과 일상적 직업관행에도 뿌리 내린다. 이러한 가치 유형은 대중문화, 일상적 상호작용에서도 나타나며 여성들은 젠더와 관련된 이러한 신분종속으로 고통받는다. 이러한 예로는 성폭력, 가정폭력, 대중매체의 모욕적 묘사, 일상생활 속 괴롭힘과 비방, 완전한 시민권 부여 및 동등한 보호 거부 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적인 가치 유형과 제도들을 해체하고 여성에 대한 동등한 존중을 표현하는 가치 유형으로 기존의 가치 유형을 대체하는 인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젠더는 이차원적 범주이고 분배와 인정 모두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범주는 계급과 신분을 결합한다. 아직 분배와 인정 두 차원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는 지 명확히 결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젠더와 같이 이차원적 범주는 두 패러다임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입장들을 논파한다는 점이다.

1-3 이차원성, 예외인가 아니면 표준인가?

그렇다면 젠더와 같은 이차원적 범주는 일차원적 범주의 예외에 불과한가 아니면 오히려 표준인가? 아마도 우리는 앞서 이념형적으로 제시했던 양 극단의 사회가 가진 맹점을 지적하여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좋겠다. 경제주의적 이념형은 중요한 점을 은폐한다. 계급과 관련된 불의는 물론 경제구조로 인해 발생하지만 이로부터 파생된 무시나 모욕과 같은 신분차별은 독자적인 경로를 가진다는 점을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급적 무시는 인정과 관련된 대책을 요구할정도로 충분히 독자적이다. 따라서 보다 효과적인 분배 개혁을 위한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문화적 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그들은 그저 받을만한 대우를 받는다는 빈곤 문화 이데올로기를 공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일차원적 범주로 여겨지는 계급 문제에서도 인정 문제는 포함되어 있다. 물론 분배 문제가 인정 문제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계급과 관련된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정 정치와 분배 정치를 결합할 필요가 있다.

문화주의적 이념형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신분과 관련된 불의는 분명 신분 구조로 인해 발생하지만 그로 인해 파생한 경제적 문제 또한 충분히 독자적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무시한다면 인정 정치는 약화될 수 있다. 예컨대 게이나 레즈비언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하는 순간 경제적 위협에 노출된다. 이는 신분 종속에 대항하는 힘을 약화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이성애주의자들도 성소수자로 낙인 찍혀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이는 그들의 지지를 약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분적 차별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보다 게이나 레즈비언들의 분배적 불의를 해결하는 것이 보다 손쉬운 일이기도 하다. 물론 성과 같은 문화주의적 이념형에 보다 가까운 불의들에는 신분과 관련돤 요소들이 경제적 요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과 같은 일차원 범주 도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정투쟁 뿐만 아니라 분배투쟁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차원적 범주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분배와 인정 문제는 모든 사회적 불의에 포함되어 있다. 실천적인 목적을 고려할때 모든 불의는 이차원적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범주가 동일한 방식, 같은 정도로 이차원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범주에서는 분배가 더 비중있을 수 있고 어떤 범주에서는 인정이 더 비중이 있을 수 있다. 이는 경험적으로 결정될 뿐이다. 그러므로 계급, 인종, 성, 젠더는 엄격하게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범주들은 서로 교차하기 때문이다. 어떤 범주에서는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어떤 범주에서는 종속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다. 동성애자이지만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업을 가지는 사람의 경우처럼 말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분배와 인정 모두 필요하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면 분배와 인정을 통합하는 관점이 너무나 절실해진다.

1.이념형은 무한히 이질적인 요소들의 연관으로 이루어진 현실을 유한한 인간정신이전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단지 그 일부만을 선택해서 다루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념형은 경험적 현실을 논리적으로 타당한 방식으로 사유를 통해 정돈하고 질서화함으로써 현실을 인식하기 위한 인위적 개념구성물이다(김석완,"이념형(Idealtypus)과 실재형(Realtypus):교육사상 연구방법론적 검토", 2014, vol.28, no.1, pp. 71-95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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