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거칠게 사유 vs 존재 라는 도식으로 볼 때, 이것이 인식론과 존재론의 문제라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추천드리는 것은 이러한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가령 관념론(idealism)을 봅시다. 어떤 철학적 입장이 관념론이라고 할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관념론"이라는 거친 타이틀 아래에 수많은, 심지어 상호 비판적/배타적인 입장들이 동시에 호명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idea) 사상 역시 관념론이고, 로크/버클리/흄의 영국경험론이 강조하는 "idea" 역시 일종의 관념입니다. 데카르트/스피노자/라이프니츠 역시 idea에 대해서 말하고, 칸트/피히테/쉘링/헤겔은 속칭 독일"관념론"이라고 묶입니다. 즉 "관념론"이라는 타이틀 단독으로는 사실상 아무것도 말해주는 바가 없습니다. 유물론/실재론/합리론/경험론/유명론의 타이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이러한 타이틀 및 분류들이 완전히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개별 사상 및 철학자들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동반되었을 때는 이러한 분류체계들이 해당 사상 및 철학자를 지시하거나 대표하는 것으로서 서술되곤 합니다. 가령 칸트의 사상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의미한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조차 "선험적 관념론"이라는 지시를 통해 칸트 철학의 어느 면모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많고, 만약 칸트철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타이틀 분류에 얽매이시지 않기를 권해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타이틀이 아닌, 그것이 지닌 변별적 내용입니다. 철학 공부에 입문하시는 단계라면 더욱이, 특정 사상 및 철학자를 특정한 타이틀로 분류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별로 생산적이지 못합니다. 개별 사상 및 철학자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주장들과 논변들을 소거한 채 그저 특정한 타이틀로 그를 낙인찍어 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하이데거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사유들을 "존재론"이라는 한갓 3음절짜리 단어가 얼마만큼 포착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키워드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들을 얻고 싶으시다면, 철학 개념사전 류 혹은 백과사전 류들을 적극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어 독해가 원활하시다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이라는 아주 유용한 사이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키워드를 검색하지면 심화된 내용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