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형식으로 된 이데올로기: 브루스 링컨의 『신화 이론화하기』에 대한 단상

2018년에 썼던 단상(잡념과 공상 : 네이버 블로그)을 조금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1) 브루스 링컨의 『신화 이론화하기』를 다시 보고 있다. 이전에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사람도 글을 정말 부러울 정도로 잘 쓴다. 자료를 분석하는 방식이 굉장히 날카롭다. 이런 대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나는 정말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 이 정도 수준의 학술서를 쓸 수 있는 날이 올지 막막하기만 하다.

(2) 이전에는 신화가 문화적 진리를 담지하고 있는 서사라는 입장을 지지했다. 링컨처럼 신화를 "서사 형식으로 된 이데올로기"라고 보는 관점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좀 불만스럽게 느껴졌다. 텍스트의 뒤편에서 온갖 경제적-정치적-성적 이해관계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너무 자의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의심의 해석학'은 대개 텍스트를 자신이 상정하고 있는 이론적 도식에다가 끼워맞추어 버리기 때문이다.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못처럼 보인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브루스 링컨

(3) 그런데 신화를 바라보는 내 관점이 그동안 조금 달라진 듯하다. 나는 철학적으로는 하이데거와 가다머를 따라, 신학적으로는 바르트를 따라, "텍스트가 말한다."라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의심의 해석학'을 주장하는 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의 후예들이 텍스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환원주의로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경계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의심의 해석학'의 기획이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지지하는 철학적-신학적 입장을 위해 유익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라르처럼 '희생양 메커니즘'과 '십자가'를 대비시킬 경우, 혹은 벤야민처럼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을 대비시킬 경우, 성서의 내러티브가 일반적 신화 구조와 차별화되는 점이 뚜렷하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이 얼마나 권력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저항적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4) 다만, 이러한 대비는 어디까지나 특정한 주제를 다룰 때 유용한 것일 뿐 사실 엄밀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령, 시온 신학은 다윗 왕권을 옹호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가? 반면, 링컨이 지적한 것처럼, 9세기에 팔라비어로 쓰인 『대분다히쉰』라는 텍스트에 등장하는 '황소의 탄식'이라는 신화는 기성의 권력 체계에 대해 얼마나 비판적인가? 즉, 성서라고 해서 반드시 기성 권력에 대해 저항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신화라고 해서 반드시 기성 권력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손쉬운 일반화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5) 레비스트로스의 주장대로, 신화는 "서사 형식으로 된 분류 체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분류 체계는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특정한 질서를 다른 질서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링컨이 강조하는 것처럼, 신화는 "서사 형식으로 된 이데올로기"이다.

(6) 나는 이러한 논의에 대해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신화를 이데올로기의 일종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사실 신화 뿐만아니라 모든 종류의 텍스트가 자신의 문화적 선입견에 근거하여 쓰여 있지않은가? 모든 텍스트가 이데올로기적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신화 텍스트에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은 이제 식상하다. 오히려 진정으로 질문되어야 할 것은 "신화 텍스트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의미 있을 수 있는가?"이다.

(7) 브루스 링컨이 '학문'을 단순한 '신화'로부터 구분하고자 한다는 점은 나에게는 참 당혹스럽다. 그는 신화를 "서사 형식으로 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며 엘리아데를 비롯한 이전 신화학자들의 낭만적 신화 독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학문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지에 대해서는 의외로 순진한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특히, 학문이 '주석'을 다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지적 정직성과 책임감을 드러낸다는 주장은 (그가 다른 곳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천진난만하다. 사실 주석이야 말로 학문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저자가 누구의 텍스트를 인용하고 있는지는, 그 저자가 어떠한 학문 전통 속에서, 어떠한 인물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어떠한 지적 계보 위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있는지를 암시적으로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1950년대 이전의 분석철학에서는 헤겔, 하이데거,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인용하는 것이 금기시된 반면, 오늘날의 분석철학에서는 종종 맥도웰 같은 주요한 저자들조차 (하이데거의 책에서 사실 '단 한 구절'만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신의 논의를 유럽철학의 전통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3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