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번역

요즘 들어 저의 독서 성향이 너무 서양 철학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어 동양 철학책을 읽을까합니다. 장자를 읽고 싶은데 번역본이 너무 많더라고요. 올빼미에 동양철학을 하시는 분들이 몇분 계시는 줄 아는데 장자 번역본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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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도움이 되실듯합니다. 제 답뿐 아니라, @wooya0902 님의 답변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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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장자'만큼 마서라고 불릴 만한 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해석 간의 굉장히 큰 간격이 존재하는 책입니다. <맹자>나 <순자>처럼 원문의 한자가 명확하고, 저자의 논지도 명확하지만 논지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주석들이 달려있는 (전형적인) 철학책들과도 다르고, <묵자>처럼 원문 자체의 훼손이 있어서 해석의 문제가 존재하는 책들과도 다릅니다.

<장자>는 우선 (i) 문헌상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곽상이 편집한 33장 본으로, 원본은 54장본이었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거라 정확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어차피 우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대인들도 곽상본 이전의 <장자> 내용을 모르기도 하고, 남아있는 54장본 내용들을 요약한 책들을 보면 신선전이나 신화, 꿈을 통한 신탁의 해석 등의 '주술적' 내용이 대부분이라 중요하지 않다 여깁니다.

(ii) 그래도 여전히 편집상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현행본 <장자>를 과연 곽상이 제대로 이해하고 편집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그레이엄이 그러한데, 그레이엄은 위진시대 학자로서 곽상이, 그 당시에는 이미 사라진 묵가/명가의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편집했다 여깁니다. (그래서 그레이엄의 번역본은 굉장히 적극적인 원문에 대한 개작이 존재합니다.)
이에 대해 지나친 원문에 대한 훼손이라 반대하는 학자들도 당연히 많습니다.

그리고 <장자>에는 장자(으로 상장된) 본인뿐 아니라, 후대 장자의 후학이나 유사했던 학파들의 견해를 다수 수록하고 있다 여겨집니다. (이건 대체로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학파들을 분류하는 방식은 제각기 미세하게 다릅니다.

(iii) 문헌상의 문제를 무시하더라도, <장자>에 남겨진 마지막 문제는 장자 본인입니다. <장자>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현 방식'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려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적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도 있죠. 아니면 (당시 고전 중국 철학에서는 드문) <순자>풍의 긴 논문 역시 몇 군데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후대 <여씨춘추>나 <한비자>에서 본격적으로 보이는, 우화/일화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가 않아요.

통상 알레고리가 불리는 신화적 이야기들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근데 이 신화적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또한 문답법 역시 플라톤과 다르게, 딱히 '진리'를 탐구해가려 하지 않습니다. 장자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고, 귀류법에 가까운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중의적 표현으로 상대를 기만합니다. 그러다보니 장자가 '진지하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농담으로 그러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옵니다.

게다가 역사와 중국 신화에 대한 인유/인용이 풍부합니다. 당장 장자에는 노자와 열자, 공자에 대한 일화들이 풍부하게 나옵니다. 이 중 무엇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니면 창작인지, 창작이라면 왜 장자는 이 인물들을 끌어드렸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게다가 실제 공자 사상과 장자 자신의 차이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조차 논쟁의 여지가 있죠.)

중국 신화에 대한 인유의 또 다른 난관은 <장자>에서 처음 보이는 등장 인물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정말 오래 살았다고 전해지는 '팽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동안은 뭐, 이 인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으니 사람들도 그냥 신화적 인물인가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제 무덤 속에 있던 여러 출토문헌들이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장자가 가져다 쓴 대상들이 장자의 창작이 아니라, 당대에 꽤 이야기가 돌던 인물들인게 밝혀진 셈이죠. (팽조가 주인공인 출토문헌도 하나 등장한 걸로 기억합니다.)

(iv)

그래서 <장자>는 사람을 홀리는 마서입니다. 만약 저한테 중국 철학의 모든 문헌을 불태우고, 하나만 살릴 수 있다면 전 기꺼이 <장자>를 고를겁니다. 중국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도 아니고, 가장 철학적으로 심오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읽을수록 도무지 모를 책이라서 그렇습니다.

쓰다보니, <장자>어천가가 되어버렸네요 (...)
여튼 이 신묘함을 접하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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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답변 감사합니다! 정말 썰이 많은 책인 듯 하네요. 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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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세계에도 널리 알려진 중국 고전의 국역본을 읽을 때는 영역본을 같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장자>의 경우라면 다음 영역본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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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장자 번역서에 대해서 잘 정리해 놓은 포스팅이 있어서 소개해드립니다.
참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blog.naver.com/stradao/221153404029

여러 번역마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자가 장자를 읽는 목적에 따라서 선택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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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하기로 <장자내편양주>가 제일 낫습니다. 번역도 자연스럽고, 주요 주석들도 모두 번역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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