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러합니다.
누군가의 정체성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있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말하자면, 세계관이나 인생관 같은거라 사람들이 표현하는 건데, 이 부분이 바뀌면 사람이 확 바뀐다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가 바닐라빈 라떼를 좋아하는데, 어느날부터 모카라떼를 마신다고 해서 "확 바뀐다'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누군가는 이 변화가 사소한 변화이지만 정체성의 변화라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말이죠.)
그래서 반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상상(사고실험)을 통해 이러한 '중요한 부분'을 대충 구분해 볼 수 있었습니다.
(i) 과연 이 생각/믿음이 바뀌면, 나는 전혀 다르게 행동할까?
이런 중요한 생각들이 몇 개 존재하긴 합니다. 반성해보면, 이런 생각들은 대체로 큰 경험-사건을 통해 믿어지게 된 것 같더라고요.
아주 예전에는 철학을 통해 '삶의 의미'나 굉장히 '큰 진리', (저만의 용어로는) 그노시스라고 부르는 것을 얻고자 했었습니다. 알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어떻게 살지도 알고. 뭐 무협지나 종교의 언어를 빌리자면, "깨달은 자"가 되게 해주는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다가 길고 지루한 대학원 수업 끝에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아, 철학을 통해 내가 얻고자 그토록 말했던 '그노시스'는 없구나. 그러니깐, 이 그노시스라는 건 하나의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잘게 쪼개진 질문들을 제가 맘대로 (혹은 예전 철학자들이 맘대로) 한 덩어리로 묶어 놓은 것이었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삶의 의미도 따로, 행복도 따로, 윤리도 따로. 다 다른 질문인 셈이죠. 이에 대한 답은 결국 찾아보니 같을 수도 있죠. 하지만어쨌든 질문은 구분되니, 다 따른 답이 있다 가정하고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철학 공부를 통해서 얻을 수는 없다 생각했습니다. 이유는 위에 나왔든, 제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믿음은 공부를 통해서 얻어진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철학을 그만두었습니다. 하하.
(2)
그래도 철학은 저한테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i) 아주 재미있는 취미 생활입니다. 공부하면 재미있어요. 근데 재미보다 고통이 더 크면 미련 없이 그만둘 겁니다. 그러니 취미.
(ii) 또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내려주지 않았지만,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줬죠. 그리고 질문과 답의 후보들도 어느정도 알 수 있었고요. 철학을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노시스 같은 걸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요? 그러다 톨스토이마냥, 그노시스...그노시스는 도대체 뭐지? 하면서 어디 서울역 지하철에서 객사했을겁니다. (물론 그노시스가 있을 수는 있지만, 찾아가는 과정이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전 비트겐슈타인의 사고 방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삶은 철학보다 크다. 철학이 삶에 대해 사고할 수 없다면, 그건 삶의 문제가 아닌 철학의 문제일뿐이다."
이런 말은 직접적으로 안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사람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