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L. 콕스(James L. Cox)의 『종교현상학으로의 안내(A Guide to the Phenomenology of Religion)』라는 책을 요즘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종교현상학 입문서로 쓰인 책이지만, 단순한 입문서를 넘어서 연구서로서의 가치도 뛰어난 책이네요. 저자 자신의 꽤나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많이 전개되어서요. 특별히, 제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 종교현상학은 철학적 현상학과 분리되지 않는다: 저는 종교현상학 연구자들이 ‘종교현상학’과 ‘철학적 현상학’을 엄격하게 분리시키려는 태도를 갖고 있다는 점을 항상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종교현상학 관련 논문들에서는 “종교현상학은 철학적 현상학과 관계가 없다.”거나 “종교현상학은 철학적 현상학과 아주 느슨하게만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같은 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제가 보기에, 이와 같은 구분들은 소위 ‘철학적 현상학’이라는 분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철학적 현상학을 에드문트 후설이라는 개인이 처음 발명한 고유한 분과라고 보는 오해가 굳이 종교현상학과 철학적 현상학을 나누고자 하는 경향의 기원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이런 생각이 마치 뉴턴을 ‘물리학’ 자체의 창시자로 치켜세우는 것과 같은 과장이라고 여겨져요.) 물론, 종교학 전공자분들이 철학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함부로 자신들의 연구를 철학과 쉽게 연결 짓지 않으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두 분야를 분리해서 보려는 입장에 영향을 주었겠죠. 그런데 콕스는 이 책 전반에서 종교현상학과 철학적 현상학 사이의 연결성을 잘 강조해주고 있네요. ‘판단중지’와 ‘본질직관’으로 대표되는 철학적 현상학의 방법이 종교적 체험의 유형을 파악하려는 종교현상학의 연구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요.
(2) 종교현상학은 사회과학과 반드시 상충하지는 않는다: 종교현상학은 특정한 이론을 상정한 채 종교적 체험을 설명하려는 환원적 태도를 경계한다는 점에서 흔히 사회과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는 합니다. 가령, 종교현상학자는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와서 어떤 기도를 하고, 어떤 찬송을 부르고, 어떤 성경 구절을 읽고, 어떤 설교를 듣는지 등 신앙인이 ‘드러내는 것’을 충실히 기술하고자 하지만, 사회과학자는 종종 “사람들은 이성을 만나거나, 권력자와 연줄을 만들거나, 고객을 유치하는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교회에 다닌다.”와 같은 가설을 세우고서 신앙인이 ‘드러내지 않는 것’에 따라 종교를 설명하려고 하죠. 실제로, 이런 차이로 인해 종교현상학과 사회과학은 자주 상대편 진영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콕스는 종교현상학이 이념적 ‘유형(type)’에 대한 사회과학의 연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 역사적 실례로 막스 베버, 에른스트 트뢸치, 칼 융의 연구가 종교현상학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이야기하네요. 그 중에서도 저는 융과 종교현상학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에 대해 콕스가 지적하는 부분에 눈길이 갑니다. 20세기 후반의 종교현상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엘리아데가 융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융을 종교현상학의 맥락에서 살피는 연구를 저로서는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언젠가는 종교현상학과 융을 연결 짓는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죠. 융은 종교적 상징에 대한 심리적 환원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식의 ‘심층심리학’의 맥락보다는 엘리아데식의 ‘종교현상학’의 맥락에서 읽히는 편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보았거든요. 그래서 종교현상학과 융 사이의 관계를 콕스가 간략하게나마 지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니,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3) 종교현상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을 수 있다: 엘리아데의 영향력이 한창이던 1950~1970년대가 지나간 이후로, 종교현상학은 더 이상 종교학에서 예전 같은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아데만큼의 거인이 등장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실증 연구들의 발전으로 인해 더 이상 ‘종교 일반’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기도 하였죠. 물론, 조너선 스미스,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니니안 스마트, 자크 바덴부르크 같은 꽤 명망 있는 종교현상학자들이 나오기도 하였지만, 종교현상학에서 근본적인 혁신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종교적 체험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로서의 ‘종교현상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혹이 쏟아졌죠. 콕스는 이와 같은 의혹 중에서도 (a) 현상학적 방법이 과연 주관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의혹과 (b) 종교현상학은 그리스도교의 가정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분야가 아닌지에 대한 신학적 의혹을 소개합니다. 또 자신의 관점에서 의혹에 대해 대답하기도 하죠. 저에게는 콕스의 대답들이 다소 불충분하게 느껴지기는 하였지만, 현대의 종교현상학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공부가 충분히 쌓인다면, 언젠가 이 주제로 논문이나 단행본을 써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