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자료에 대한 생각

(1) 음. 저는 굳이 따지면 레디컬한 편이네요 (...)

아주 예전에 썼던 글인데 제 입장은 여기에 기반합니다.

(2)

번역서로 공부하는 건 공부가 아냐!라는 주장까진 아니지만, 원서를 읽을 줄 모르지만 번역서만으로 논문을 쓰는 건 제대로 된 "철학사" 연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여기서 철학사라는 건 작성자님이 말하신 기존 철학 문헌에 대한 연구 일반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제가 링크 걸어둔 글에 있는 구분입니다. 즉 철학 문헌을 오늘날의 입장과 이론으로 가장 말이 되게 정합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작업인 재해석과 철학 문헌을 당대의 입장에서 당대가 가진 한계까지 고려해서 나오는 작업인 지성사-철학사 작업. 이 중 후자라는 의미이지요.)

사실 전자인 재해석 작업도 좀 그런거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3)

문제는 번역어에 있는데, 서양 철학이야 다른 언어로 넘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드문거같은데 타 문화권은 번역어 선정 자체가 논쟁 대상인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예를 들어, 굉장히 클래시컬한 분석철학 행동 모델이 belief-desire인데, 이 도식 자체는 동북아 철학에 곧바로 적용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belief와 1대1 대응하는 개념어가 없거든요. desire은 욕(망)을 쓰고 이게 꽤 정합적이지만, cognitive한 심적 상태로서의 belief에 해당하는 단어는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지(성), 즉 know을 쓰죠. (belief에 해당하는 단어로 신(앙)-신(뢰)가 있는데 이는 차라리 faith-trust에 해당하는 단어죠.)
(따라서 동북아 철학에서는 know-belief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사용되는 셈이죠.)

(4)

가장 기본적인 용어조차 이렇게 차이가 나버리는 상황에서, 원서를 못 읽어버리면 2차 문헌이 가정한 프레임-틀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5)

그래서 전 1차 문헌에서 과연 이게 무슨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인지 집중하는 편입니다. 이게 외부 세계를 지각하는 문제일지라도, perception인지 attention인지 아니면 다른 문제인지.
이걸 작성자가 명확히 알고 있어야, 1차 문헌의 용어가 어떤 의미로 쓰인건지 이게 2차 문헌의 번역어(그리고 그 역어가 전제한 이론틀)와 얼만큼 차이가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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