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글주의] 주르르-고세구 논쟁을 통해 보는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

작년 중순부터 이세계아이돌 멤버들이 하나둘씩 오리지널 아바타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비챤, 릴파, 주르르가 일명 '뉴챤', '뉴릴파', '뉴르르'로 아바타를 교체한 상태에요. 위의 영상은 주르르의 새 아바타에 대해 고세구가 "이 사람 성형했습니다!"라고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주르르는 "속인 게 아니라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에요!"라고 답하고 있죠. 도식화하자면,

고세구: "이 사람 성형했습니다!"
→ 뉴르르 뒤에는 숨겨진 주르르의 성형 전 모습이 있다. (현상 뒤에는 사물 자체가 있다.)

주르르: "속인 게 아니라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에요!"
→ 뉴르르는 주르르의 또 다른 존재방식일 뿐이다. (현상과 사물 자체의 구분은 애초에 없다.)

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속인 게 아니라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에요!"라는 주르르의 반박은 정말 하이데거적이네요. 하이데거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의 의미를 따라,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사건을 '진리(Wahrheit)'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고 있고, 망각하고 있고, 간과하고 있던 것이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받는 사건이 바로 '진리가 드러나는 사건', '존재가 말 걸어오는 사건', '존재자가 주어지는 사건'인 거죠. (사실, 애초에 하이데거에게는 '사건(생기, Ereignis)' 자체가 진리의 드러남과 존재의 말 걸어옴을 내포하는 개념이라 '진리가 드러나는 사건'이라는 표현은 다소 동어반복적이긴 하지만요.)

여하튼, "속인 게 아니라 진실을 드러냈을 뿐이에요!"라는 말은 이 점에서 굉장히 의미심장하네요. 구르르가 '진짜'이고 뉴르르는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거잖아요. 구르르도 르르땅의 매력을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이고, 뉴르르도 르르땅의 매력을 드러내는 또 다른 현상인 거죠. 르르땅은 구르르와 뉴르르에서 모두 저마다의 매력으로 진리를 드러내고 있고, 우리는 그 모두를 '참된 르르땅'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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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거 다시 들어보니 굉장히 수위가 높은 내용이었네요;;; 처음에 2배속으로 들어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말을 놓쳤습니다. 저는 마지막 말에만 집중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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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취향존중합니다만 좀 어질어질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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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지 모르겠지만 궤도 철학 ver. 같은 느낌이에요ㅋㅋㅋ 철학민수에 아주 어울리십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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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도 이세돌 좋아해서 자주 듣는데. 저는 별로 안끌리더라구요

ㅋㅋㅋ안들어올 수가 없는 제목이군요..
궁금한 게 있었는데, 기회가 생겼으니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ㄱ) 아이네는 키가 158cm이다.
(ㄴ) 아이네는 릴파와 만난 적이 있다.

여기서 (ㄱ)과 (ㄴ)이 모두 참인 진술이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아이네'가 가리키는 대상은 서로 다를 것이라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ㄷ) 아이네가 뱅온을 하면 아이네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전자, 즉 자연인으로서의 사람을 가리킨다면, 뱅온 했을 때 아이네는 컴퓨터 앞에 있을 것이고, (ㄴ)은 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후자, 즉 메타버스 개체(metaverse entity)를 가리킨다면, 뱅온 했을 때 아이네는 디지털 공간에 있을 것이고, (ㄱ)은 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맥락전환이라는 요소가 분명히 개입될 것 같긴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제가 의문이 들었던 건, 메타버스 개체의 존재론적 위상을 현실 세계의 개체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동일성(Personal Identity)이라는 주제 범주 하에서 이걸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또 다르게 보실 것 같아서 의견을 좀 여쭤보고 싶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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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철학민수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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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문 속에 범상치 않은 지식들이 녹아들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라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는 맥락을 구분한다면 (ㄱ)과 (ㄴ)이 모두 참인 진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동일성'이라는 개념도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가령,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동일함을 이야기할 것인지에 따라,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를 '동일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고 '동일하지 않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트겐슈타인 본인도 그렇고,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였던 피터 기치도 그렇고, 동일성에 대해 이런 접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만, 예전에 '정통파' 분석철학을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동일성이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저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이해하긴 힘들지만, 사이더의 책에서도 동일성에 대한 기치의 주장을 언급만 한 뒤에, 특별히 고려도 안 하고 무시해버리더라고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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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컨대 데릭 파핏 같은 사람은 특정한 문제와 관련해서 사람의 동일성이 중요하게 보이지만 사실 그건 언어적인 문제고 진짜 중요한 건 심리적 연속성이라는 주장을 했으니 "정통" 분석철학에서 완전히 도외시 되는 주장은 아닐 겁니다. 물론 파핏의 입장 자체가 논란이 된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요.
아마도 근데 대상의 수적 동일성이 우리가 어떻게 규정하는지의 문제라고 하기엔 대상이 동일한 것과 대상을 동일하다고 여기는 것 사이의 구분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identity와 identification을 혼동한 것이라고 볼 것 같습니다. 특정한 문제와 관련해서 동일성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과 수적 동일성 자체가 규정 상대적이라고 보는 건 또 다른 얘기일 테니까요.

제가 제기했던 문제, 즉 '메타버스 개체의 존재론적 위상은 무엇인가?'가 꼭 동일성 문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의문을 풀자면 이렇게 풀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이네'라는 이름에 기술구를 귀속시킬때, 그 중에 어떤 기술구는 자연인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자연인만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구 'N'과 메타버스 개체 i, 자연인 p에 대해

1 ~Ni
2 Np
3 (x)(y)(x=y -> (F)(Fx<->Fy)) (라이프니츠 법칙)
4 (x)(y)((∃F)~(Fx<->Fy)->x≠y) (3동치)
5 ~Ni&Np
6 i≠p

라는 결론을 받아들여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 개체와 자연인은 다른 존재자인데, 메타버스 개체는 그럼 누구라고 해야 할까 하는 것이죠..
어쩌면 이 논증 구성 자체에 어떤 전제가 깔려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그것도 생각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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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아요. 저도 파핏 같은 사람이 동일성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나 기치와 유사한 입장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에요. (예전에 저한테 파핏을 추천해 주신 적이 있지 않았나요? 그 이후로 언젠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서 아직도 못 봤네요. 하지만 저희 학교 다른 분도, 제 입장을 듣더니 파핏을 말씀해주셔서, 정말 언제 한 번은 봐야겠다고 마음속에 쟁여두고 있습니다.)

(2) 3이 '동일자 구별불가능성의 원리(indiscernibility of identicals)'였나요? 지금 당장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지만, 저는 이 원칙이 좀 꺼림칙하긴 해요. 기준이나 맥락 이전에 그 자체로 동일성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 같아서요. 다만, 이 원칙을 받아들여서 메타버스 개체와 자연인을 다른 존재자라고 하는 게 아주 잘못된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구라고 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정확히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것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아이네와 (어느 시골에 사는) 안인혜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게 저의 형이상학적 직관에는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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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기엔 동의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상식적이죠.
"누구라고 해야할까?"라는 질문의 저의는, 만일 제가 "나는 아이네의 팬이야"라고 했을 때, 그때 나는 누구의 팬이라고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ㅋㅋ 어쩔땐 사람 갖기도 하고, 어쩔땐 그냥 현상의 다발들 갖기도 하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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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트위치 스트리머들, 특히 모델링을 사용하는 혹은 얼굴을 안드러내고 방송하는 분들에 대해서 이런 경우가 밈으로써 참 많은데 이렇게 조명하니 또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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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도 이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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