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낙서

(1) 다들 학계에 계시는 분들이니 학기 시작으로 바쁜거 같다. 나만 여기서 열심히 낙서를 생산하니, 이것이 취미로 철학하는 사람의 낙(?)인가 보다.

(2) 의미에 대한 이론을 '심심해서' 번역하고 있다. 근데 번역할 수록, 이게 언어철학인지 언어학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자연과학이 철학에서 분화되어 나왔듯, 언어학도 언어철학에서 분화되어 나온 듯한 기분이다.

사실 언어학에 대한 내 관심은, 의미론-구문론-화용론 같은 (추상적) 자연 언어보다는, 개별 자연 언어의 역사 언어학에 더 있었다. (그냥 난 세상에 있는 온갖 다양한 인간의 문화적 생산물들을 좋아한다. 이유 없이.) 동시에 체계를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 지점에서 항상 취향의 충돌이 일어난다.

우아하고 잘 정리된 여러 체계라는 것이 공존할 수 있을까? 철학에서는 사실 좀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철학이 좀 맘에 안 든 것도 있어 보인다.)

(3) 철학이 취미가 되니, 오히려 공부를 더 하는 기분이다.

(4) 계속 번역을 완성하지 않은 채, 다른 번역을 시작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악덕이지만, 뭐...취미니깐....하면서 계속 그러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약속으로 투표 받았던 11개부터 끝내고자 하는 편이다. 물론 그 다음 11개에 대해서도, 계속 머릿 속에서 생각하고 있다.
Roojen의 비인지주의를 번역했으니, 7장인 인지주의도 번역하는 게 짝이 맞는 것 같다. 티모시 윌리엄슨-분석 형이상학과 철학의 현재와 관련해서, 방법론적인 문제를 다루는 실험 철학도 번역하는 것이 유익해 보인다. 환경 윤리나 생명 윤리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실천적 주제다.

개인적인 관심사는 계속 언어철학-의미론과 엮여 있다. 의미론 작업에 영감(?)을 준 수리 논리학 아티클인 '모형 이론'이나 '증명 이론'도 한 번 시도해볼 만하다. 화용론, 명제, 참, 자연종 같은 주제들도 재미있어 보인다. 또한 Very short로 나온 <물리학의 철학>에 있는 양자역학의 기묘함/해석도 번역해보면 재미있을 듯하다. (SEP 아티클은 도무지 번역할 깝냥이 안 된다.)

심리철학 관련 주제들도 재미있어 보이는 게 많다. 지각의 내용도 그렇고, 의식, 심적 인과, 자유의지 모두 복잡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통계학의 철학도 요즘 하이프 되는 지점들이 많기에, 번역하면 유용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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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렇습니다! 특히 여러 민족의 설화나 전설, 풍습과 같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금 보고 있는 책들은 이런 이야기들과 동떨어진 주제들이라서 가끔씩 허무감을 느끼네요.. 뭔가 이런 설화나 이야기들과 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한 책들 추천해주실수 있을까요?

(1) 두서없이 추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은 산산히 부서진다><신의 화살>
; 둘 다 소설입니다. 나이지리아 남동부에 사는 이보족이 선교사-영국 식민지 시기를 겪으면서, 전통과 근대가 어떻게 충돌하는지 묘사한 작품인데, 당시 이보족의 풍습이 디테일하게 나와서 재미있습니다.

브루스 링컨, <거룩한 테러>
; 종교학자의 저술입니다. 종교학 중에서도 종교를 일종의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는 접근법에 있는 책인데, 여러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폭력/테러들을 잘 분류하고 도표화 합니다. 동서고금의 사례가 나와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네요.

웬디 도니거, <다른 사람들의 신화><암시된 거미>
; 인도 신화와 그리스 신화를 비교하는 종교학 저술입니다. 해석이나 논지는 평이한 편이지만, 개별 인도 신화 사례들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머치아 엘리아데, <세계 종교 사상사><샤머니즘>
; 이 분야의 최고의 썰풀이(?)는 엘리아데가 아닐까 합니다. 정말 자기가 찾을 수 있는 모든 사례들은 죄다 갈아넣은 듯한 책입니다. 물론 엘리아데 이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은 오늘날 좀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재미있게 읽는데는 이만한 책이 없습니다.

니컬라스 에반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 언어학 책입니다. (추상화된) 자연 언어가 아닌 개별 자연 언어, 그 중에서도 오지에 있는 멸종 위기 언어들을 주로 연구하던 양반이 쓴 책인데 재미있습니다. (아마 세계 문화의 다양성에서 절 매혹시킨 책을 순서대로 고르면, 브루스 링컨 - 중앙아시아 - 이 책 아닐까 합니다.) 언어의 다양한 측면(음운론 - 구문론/의미론 등)을 오가면서, 언어와 인접한 분야 (역사 언어학/인류학/언어 문학/인지심리학)까지 포괄해서 인간 문화의 다양성을 설명하는데 아직도 가끔 빌려보는 책입니다.

르네 그루세 , <유라시아 유목제국사>/피터 골든, <중앙아시아사>/데이비드 모건, <몽골족의 역사>
; 이건 사학 책들입니다. 서양과 중동,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던 중앙아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제가 참 좋아하던 땅이었습니다. 특히 쿠빌라이가 당시 원 나라에 있던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을 모아서 토론을 붙였던 이야기는 제 상상의 나래를 자극했죠. 도사, 티베트 스님, 무슬림, 서양에서 온 가톨릭 신부, 이미 서양에서는 사라진 네스토리우스 교도까지. (물론 이 사건은 사실인듯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실제 내용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여튼 서양 근대 이전에 그렇게 복닥복닥하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만났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꽤 재미있는 듯 합니다.

브라이언 스완(ed), <빛을 보다>
; 북미 인디언 구전 문학 선집입니다. 꽤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장르의 것을 뽑아왔습니다. 사실 이 책은 각 인디언 문화권에 대한 디테일한 지식이 있는 채로 봐야 더 재미있는 듯합니다.

로버트 켈리, <수렵채집사회>
; 이 책은 정말 전문적인 학술서입니다.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고고학/인류학적 관점에서의 여러 이론들이 나와서, 구체적인 사례나 사상/종교 등에만 관심을 가지신다면 좀 재미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인간 사회를 여러 기준으로 나누는게 전 퍽 재미있는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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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엘리아데의 <이미지와 상징>이나 <신화와 현실>은 저 두 책에 비해서 많이 어렵겠죠?

(1) 어려운 책인건 맞는데, 많이 어려운지는 모르겠네요. <세계 종교 사상사>는 진짜 역사책이니깐 분량만 이겨낸다면 어려운 점은 없고, <샤머니즘>도 사례가 질식할 정도로 (...) 많아서 그렇지 주장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에 비해 말하신 두 책이 좀 더 이론적이니깐 어려운 건 맞는데, 많이 어렵다고 할 것까지는 없는거같아요. 엘리아데의 사상이 뭐 많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하이데거처럼 아무런 이해 없이 읽으면 못 읽는 책도 아니고. 물론 정확히 뭔 뜻인가 곱씹으면서 읽으면 좀 어려우실 수 있어요. 엘리아데가 자기 주장은 칼 같이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사례가 많이 나오긴 하고 처음 보는 사례도 많아서 거기에만 압도되지 않으신다면 읽는데 별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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