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사실과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아주 짧은 상념

(1)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도덕적 사실이라는게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도덕적 사실/참을 주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모든 사실에 동등하게 동의하면서도, 무엇이 더 "옳은지" 혹은 "좋은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빨강색을 보면서도, A는 좋다고 B는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A-B가 "좋다"/"좋지 않다." 말한 것이 도덕적 사실에 기반해 나왔다고 도덕적 사실주의자들은 주장하는 셈이다.
(무어의 열린 질문 논증의 결도 비슷하다.)

(3) 무어의 열린 질문 논증이 사실 도덕적 자연주의자에게 문제가 되지, 도덕 사실주의-비자연주의나 도덕 픽션주의, 도덕 비인지주의자들한테는 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덕 사실주의는 저 좋음이 곧 도덕적 사실에서 나온 것이고, 비인지주의자들에게는 도덕적 사실과는 다른 감정/계획 등에서 나온 것이니깐 말이다.

(4) 근데 간단하게 도덕적 사실이 있다고 인정해도, 이게 실제 도덕적 판단에 얼마나 유의미할지 난 잘 모르겠다. (뭐 메타윤리학자들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두 제각기 다른 것들이 "옳다" 주장할 수 있다.

좀 더 단순한 문제로 돌아가보자. 줄기세포 문제로 가보자.

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은 옳은가?
(i) 줄기세포로 여러 불치병 환자를 살릴 수 있으므로 옳다.
(ii) 줄기세포로 여러 예상하지 못한 유전학적 재앙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옳지 않다.

도덕적 사실주의를 가정하더라도, 만약 도덕적 사실의 범위가 "상황 전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사실상 도덕적 딜레마를 해소하는데 실패한다. (i)(ii)의 주장은 상호대립적이지 않기에 둘 다 참이여도 상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능력은 (a) 도덕적 사실(혹은 그 사실의 기반인 가치)들을 비교해서 무게 달 수 있는 능력-원칙-사실에 기반하는 셈이다. 이런 사실이 있을 수 있는가?

(4-1) 나아가 도덕적 상황에서, 도덕적 참이 걸리는 부분들은 어디까지인가?
줄기세포의 예시는 사실 행위의 결과에만 도덕적 속성이 부여되었다. (다만 두 결과가 모두 일어날 수 있는 독립적인 행위이기에, 각 결과를 만드는 행위 대한 판단 역시 독립적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행위자의 동기 역시 누군가에게는 도덕적 참이 걸리는 영역이라 여길 것이다. 또한 도덕적 대상의 심적 상대 역시 도덕적 참이 걸릴 수 있는 영역처럼 보인다. 예컨대, 내가 거지를 도와주었는데 그 거지가 굴욕감을 느낀다면 이건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 보인다. (이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와 구분되어야한다. 혹자는 그래도 도와줘야한다 주장할 수 있다. 이는 거지의 감정과 거지의 실질적 이익을 저울질한 판단이다. 그 사람조차 거지의 감정/실질적 이익 모두를 달성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그게 옳다 여길 것 같다.)

(4-2) 여기까지 오면 뭐 답이 없다. 각 상황의 구성요소와 결과값을 모두 알고, 그에 대한 도덕적 참값을 계산한 다음에, 행동하는 것. 이게 사실상 가장 이상적인 도덕적 "참"이다.

이게 가능이나 한가...?

2개의 좋아요

고민과 분투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제 짧은 견해를 공유해봅니다.

도덕적 사실이 있다는 믿음의 의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도덕적 사실이고 그것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알아낼 수 있는지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도덕덕 사실이 있다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을 찾아나서잖아요? 다른 의미로 우리가 현실에서 내리는 수많은 행위 결정과 그 결정에 대한 도덕적 확신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반성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객관적 도덕 사실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게 객관적인 한 유한한 존재인 우리로서는 결코 실천적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 되면서 중세 교황이나 볼셰비키 레짐에서의 당의 판단과 같이 무오류를 표방하는 일 또한 경계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도덕적 실재론은 이런 의미에서는 첫째로 하나의 이상으로서 우리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야할 대상이라는 규범성을 제시하고, 둘째로는 우리 실천에 있어서 도덕 판단의 가치를 제한하고 규율하는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이론적으로 객관적 사실의 당위를 성립시키는 것이 실천적으로는 무한한 비판과 반성의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물론 객관적인 도덕적 사실이 본래적으로 실천적 합리성으로는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것을 우리가 추구하고 그것에 가까워지려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지점에서 플라톤이 <정치가>에서 말했던 “두 번째 항해deuteros plous“가 분명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실천 영역에서의 행위자의 불완전성을 이론 영역에서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사의 무수한 요소들은 무한하지만 그것의 규칙성은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즉 가산무한이기 때문입니다.

1개의 좋아요

(1)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도덕 실재론(moral realism)과 도덕 비-회의주의 혹은 비-상대주의는 구분되어야할듯 싶습니다. 말씀해주신 견해는 도덕 비-회의주의/비-상대주의에 가까워 보입니다.
(나아가 엄밀히 말하자면, 칸트처럼 일종의 초월론적 논증(?)을 통한 요청의 형태로 제시된 도덕 비-회의주의/도덕 비-상대주의로 읽힙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한 바로는 도덕 비-실재론이 곧바로 도덕 회의주의/상대주의를 함축하진 않습니다. 도덕 비-실재론도 도덕적 사실(moral fact)은 없지만 나름의 객관성을 가진 어떠한 도덕적 옳음/참(moral truth)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니깐요.
예컨대 특정한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을 가지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 말할 수도 있겠죠. (물론 이건 메타적 층위에서 좀 해결할 문제가 있어 보이긴합니다.)

따라서 도덕 실재론은 언어철학의 층위에서, 도덕적 언명은 다른 사실 주장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주장이며, (따라서) 형이상학적으로 이런 것이 이 세상에 있고 인식론적으로 도덕 주장이 도덕적 사실과 합치한다면 그게 곧 참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셈입니다.

또한 저는 이론적 영역에서 완전성을 가정하더라도, (제가 가정한 도덕 실재론이라면) 여전히 무엇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정한 도덕 실재론은 (i)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도덕적 참은 알 수 없지만 (ii) 행위의 한 양상/부분에 대한 도덕적 참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달리 말해, "살인하다"가 그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동기라던가 무수히 가능한 결과에 대해서 다 그것이 옳고/그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이제 문제는 (iii) 이 부분들 전체를 합산(aggregate)해서 행위 자체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 적어도 이 합산에 대한 객관적 방법이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몇 가지 규칙들 (수단적 가치 - 내재적 가치 같은)은 있는 것 같지만 수학처럼 이걸 완전히 계산할 방법은 모르겠네요.
이제 그렇다면 이론적으로 완벽한 상황을 가정할지라도, 행위자는 모든 행위의 양상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는 성공하지만 그걸 합산한 행위 자체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실패하는 셈입니다.

적어도 제가 주장하려는 요지는 이것이었습니다.

1개의 좋아요

조금 더 상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제 입장을 도덕실재론이 아니라 비회의주의 혹은 비상대주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조금 과감히 말씀드리자면 정확한 지적입니다만 적확한 지적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덕 반실재론(moral anti-realism)이 비회의주의나 비상대주의를 항상 수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앎을 정당화된 참된 믿음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떤 반실재론은 도덕적 언명이 믿음이 아니라고 주장하고(비인지주의), 어떤 반실재론은 그것이 믿음이긴 해도 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오류이론), 어떤 반실재론은 도덕적 앎 자체를 부정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예컨대 객관적 도덕 사실이라는 도덕실재론의 요소를 거부하는 반객관주의(non-objectivism)가 가능해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상대주의는 절대주의(absolutism)의 반항으로 이해하는 한에서 실재론에 반대되는 주장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다만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만델라 선생님의 입장이 반실재론이라는 것이 아니었고 도덕 실재론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하나의 동기를 설파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 입장이 비상대주의를 함축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는 제가 자세히 상술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플라톤의 차선적 윤리와 초기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에 의해 제시되는 logizomenon의 방법론 등은 한 종류의 상대주의를 상당히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윤리적 앎과 참의 지위가 잠정적일 뿐이지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만델라 선생님이 서술해주신 마지막 단락의 입장은 도덕 개별론(moral particularism)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도덕 개별론자들은 도덕 실재론자들입니다. 다만 이들은 어떤 궁극적인 도덕 원리의 존재나 정당화나 유용성을 부정합니다. 아마 말씀하신 “행위 자체”의 선함이나 도덕적 판단이 어떤 궁극적 도덕 원리에 대한 판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유아 강간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도덕 개별론자인 Jonathan Dancy는 참이라고 그것도 역사상 항상 모든 인류와 문화권에서 참이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어떤 보편적인 도덕 원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개별론자들은 어떤 행위 x를 평가할 때 그 행위를 둘러싼 x에 대한 판단에 필요한 상황 요소들이 있으며, 우리는 이 상황 요소들을 통해 x의 선함을 판단한다고 봅니다. 아마 “행위의 한 양상/부분”에 대한 참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씀과 대응할 것 같습니다. 다만 끝으로 말씀주신 완전한 합산의 문제에 대해서는 도덕 개별론자들은 불필요한 문제라고 볼 것 같네요. 왜냐하면 합산이라는 건 그 모든 가능한 함축을 모두 살펴서 하나의 유일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계산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별론자들은 우리 인간이 어떤 지각 능력을 통해 매 상황마다 이 상황에서 이 행위의 선함을 판단할 때는 저러저러한 요소들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안다고 주장할 겁니다. 그렇기에 어떤 행위의 모든 함축을 다 알아야한다고 요청할 필요도 없고 그런 앎의 가능성을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해야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1개의 좋아요

(1)

저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분을 보니 말하시려던 바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지네요.

(2)

이 부분에 있어서는 handak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비-상대주의를 확언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는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이건 예전에도 @alektryon 님에게 들었던 부분입니다. 근데 사실 도덕 개별론과 도덕 보편론을 안 읽어봐서 (...) 정확히 뭐라 답을 드릴 수가 없겠네요. 앞으로 제가 공부할 부분이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 입장을 이리 정식화 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저는 도덕 개별론자이지만, 도덕적 옳음에 대해 항상 최선의 옳음(굳이 따지자면, 도덕 원칙이겠죠?)이 있을 수 있다 가정하긴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도덕 개별론자들에게는 없는 문제가 저한테는 발생하는 셈이죠.) 다만 오류 이론마냥, 인간은 이 도덕적 옳음에 도달할 수 없다 여기는 셈이지요. (스스로 문제를 세우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는 것이기도 하니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게 실제 도덕 개별론/보편론 - 메타 윤리학 - 규범 윤리학의 범위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2개의 좋아요

선갱님께서 자신의 입장이 메타윤리학적으로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지 따져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의 입장을 가다듬는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도덕 개별론의 핵심은 보편적인 도덕 원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류이론의 핵심은 도덕 언명이 가리키는 사실이나 개념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런 사실을 지시하는 명제나 윤리적 개념을 담는 도덕 언명은 항상 오류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황제는 대머리라는 명제가 오류라는 것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하고 계신 게 바로 logizomenon이라고 생각합니다. :)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