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제 3성찰 신 존재 증명과 표상적-형상적 실재성의 구분

재밌는 질문들을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은 저도 데카르트나 스콜라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부 시절 데카르트의 성찰과 방법서설을 번역하셨던 이현복 선생님께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를 배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해가 깊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어마어마한 스콜라 철학과 유대교 철학 심지어는 아랍철학까지 이어진 거대한 빙산의 일각을 건드리고 질려버렸던 기억은 납니다.

(1) 우선 첫 번째 질문에 관해서 데카르트라면 아마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낸 픽션적 존재자들의 관념은 복합적인 수준에서 새롭지만 그 관념을 구성하는 단순관념들은 이미 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또 우리 마음이 사유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요. 제 논의가 신 존재 증명이고 그것의 시발점이 사유실체이다 보니 사유실체만 이야기해서 그런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만 원래 데카르트에게 있어 무한실체인 신 밑에 유한실체는 사유실체와 연장실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안드로메다같은 것은 연장실체의 양태가 되겠지요. 우리가 인식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아직 인식하지 않은 것)을 아직 사유하지 않았으므로 우리에게 아무런 관념도 낳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표상적 실재성은 가지고 있지 않겠지요.

(2) 실재성의 정도의 차이는 말씀드렸듯 그 존재론적인 의존에 따라 나누어집니다. 사유의 양태들은 사유실체에 의존합니다. 내 믿음 a 내 감정 b 내 열망 c 이런 것들은 내가 믿지 않고 느끼지 않고 열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유하는 나가 있어야 개별적 사유들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사유실체보다 사유 양태들은 실재성이 낮습니다. 다른 말로는 보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유실체 또한 무한실체가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존재론적 의존관계가 각 심급마다 상이한 정도의 실재성을 갖게 합니다.

언급하신 맥락에서는 관념의 실재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관념은 사유실체의 양태입니다. 따라서 관념의 형상적인 실재성은 양태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어떤 관념은 완전성을 속성으로 가집니다. 신이죠. 신의 완전성은 사유실체의 유한성이 모두 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사유실체는 자기를 능가하는 관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이 관념의 표상적 실재성은 그 관념의 형상적인 원인인 사유실체를 능가합니다. 다만 이런 관념이 가능하려면 사유실체의 보증으로는 안 되고 무한실체가 있어야만 하지요. 그래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입니다.

(3) 제가 알기로 데카르트적 심신이원론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아. 인간은 사유실체와 연장실체 모두를 가집니다. 둘은 독립적이고 자립적입니다. 이 때문에 어떻게 마음이 몸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설명이 요원해지는 것입니다. 신이야 당연히 심신이원의 문제를 가지지 않습니다.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