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주의의 이득?

때때로 제거주의(eliminative materalism)이 심신동일론에 비해 어떤 점에서 더 적절한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거주의는 당위적인 측면에서 뇌-신경과학적 탐구에 이득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통속심리학적 용어들을 제거하지 않는 이론들의 경우 과학적 탐구에 있어 때때로 특정한 방법을 요구한다. 통속심리학이 가진 단어는 그 자체로 규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슬픔이라고 말할때 그 단어가 사용될 수 있는 적절한 맥락이 있듯이 이미 그 단어들은 규칙 속에 포섭되어 있다. 그렇다면 결국 연구자들은 그러한 규칙울 따르며 연구를 진행하여야 한다. 뇌-신경의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에까지 이미 주어진 규칙이 있는 것이다.

이는 예를 들자면 우리가 코카콜라를 마셔보지 않았지만 그것이 달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그것을 마셨을 때 우리는 단맛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제거주의는 이 규칙을 처음부터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뇌-신경과학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뭐 스스로도 잘 납득할 수 없는 잡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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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의미에서 사실 전 제거주의를 일종의 "수사"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더 급진적인 (자연주의처럼), 더 새로운 의견인 것처럼 주장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 이와 별개로,

이 부분은 좀 더 디테일한 검토가 있어야 할 듯합니다.

(a) 언어에 (i) 맥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ii) 규칙이 있다는 것과 (iii) 규범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다 구분할 수 있는 주장처럼 보입니다.
예컨대 (i) 맥락은 언제나 (실제 상황에서는) 화용론적 컨텍스트를 가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맥락을 가진다 말할 수 있고 (ii) 이와 별개로, 구문론적/문법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규칙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iii) 화용론적 맥락/구문론적 규칙과는 구분되는 다른 "언어학적 규범성"에 대해서도 말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직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여러 추론 규칙들이 있겠죠.)

(b) 이 세 가지의 구분이 어떤지에 따라서, 이게 (제거주의든 심신동일론이든 가정하는) 자연주의적 형이상학과 얼만큼 합치될 수 있는지 의견이 갈릴 듯합니다.

아마 (ii)에 대해서는 촘스키의 생성문법이 학계의 오소로독스한 주장인 이상, 학자들이 자연주의적으로 환원하는데 별 불만이 없을 듯합니다. (i)이나 (iii)은 좀 걸리긴하는데, 밀리칸이나 드래스컬, 골드만 등은 자연주의적 환원을 시도해볼 듯합니다. (아마 단어의 의미는 직접 지시라 하고, 이 직접 지시의 대상을 과학에 의해 밝혀지는 자연종이라는 형태로 전환시킨 다음에, 이제 자연종 간의 관계로 환원될 수 있는 언어적/규범적 규칙을, 통상 [물리/화학에서 자연 법칙이 곧 자연종 간의 관계이듯] 곧 일종의 자연 법칙처럼 다루면 된다고 주장해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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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경우는 언어학적 규범성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잡념처럼 쓴 글이다 보니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부끄럽네요;;

어찌 되었든 제 잡념의 핵심은 제거주의가 과학자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언어의 정의에서부터 그들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특권을 주기 위한 시도가 아닐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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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 저도 ㅋㅋㅋㅋ 아이디어는 대충 써놓으니 부끄러워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저냥 저도 다른 분들한테 이런 코멘트를 들으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가곤 했으니 저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 적은 것 뿐입니다.

(2) 아마 '언어' 같은 큰 단위보다는 단어(word)나 개념(concept)에 대한 주장이라 하시는 것이, 전반적인 의도에는 합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 입증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요.) 말하신 사례도 '슬픔' 같은 단어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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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개념이라는 단어가 이 주장에 있어서는 훨씬 적절한 범위가 아닐까 합니다.

그와는 별개로 언급해주신 밀리칸은 꼭 한 번 공부해보고 싶은 학자인데, 아무래도 한국어 자료가 적더군요. 혹시 추천해 주실만한 텍스트가 있을까요?

(1) 저도 밀리칸은 여러 다른 주제들을 보면서 살짝씩만 아는 것이라 정확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알기론, 밀리칸의 철학 전체에 대해 개괄하는 책은 한권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Millikan and Her Critics - Google 도서

이 책 자체는 읽어본 적이 없지만, 이 시리즈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0년대 이후 철학자들의 사상 전체를 개괄하는 책이 워낙 적기도 하고요.

(2)

이와 별개로, 밀리칸 같이 의식-언어를 모두 자연과학적(특히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를 계승하는 학자로는 피터 고프리 스미스가 있습니다. (생물학의 철학, 심리철학, 과학철학 두루두루 하는 학자입니다.)

한국어로도 책이 세권 번역되었는데,

알라딘: 이론과 실재: 과학철학 입문 (aladin.co.kr)

이건 좋은 과학철학 개론서입니다.

알라딘: 아더 마인즈 (aladin.co.kr)

이건 그냥저냥 재미있는 교양서입니다.

알라딘: 후생동물 (aladin.co.kr)

이건 제가 안 읽어봤는데, 설명만 본다면 좀 더 본격적인 책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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