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와 의무론

요즘 야코비, 피히테, 쉘링 등을 읽으며 의무론 (deontology의 번역이 이게 맞나요?) 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론 우리가 따라야하는 윤리적 법칙들이 있고, 그것이 법칙이기 위해 따랴야한다 -- 이것이 의무론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칸트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죠. 그게 법칙이니깐요 (왜 법칙이어야하는지는 이해를 아직 못했습니다. 전부 다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이런 논리였던 거 같은데 그게 왜 법칙으로 이어지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거짓말을 하면 상황이 더 좋아질 수 밖에 없음에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이 이론이 되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리주의가 그냥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의무론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여자와 아이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우고 남자들은 배에 남았습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요즘엔 사람에 따라 아이들만을 구출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일단 약자를 먼저 구출하고 나머지가 배에 남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리주의를 따르게 된다면, 살아나가서 인류에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먼저 구출해내는 것이겠죠. 소방사, 경찰관 같은 사람들이 먼저 구출되고 나머지가 배에 남는 게 공리주의적으로 맞겠지요. 결국 공리주의를 따르면 출산이 가능한 여성, 소방관, 경찰관 등을 구명보트에 태우고, 아이들, 노인 등을 포함한 나머지를 배에 놔두는 게 맞겠지요. 그게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공리주의에 맞는 결정이니깐요.

전 이 예시만 보게 되면 공리주의에 회의감이 듭니다. 사실, 공리주의에 처음으로 반감이 생겼습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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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규범윤리적 이론은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치명적인 반례들을 어느정도 다들 갖고 있죠.
저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모든 윤리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규범이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걸 기대하는 게 한편으로는 좀 게으름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과주의 혹은 공리주의도 도깨비 방망이는 아닐 겁니다. 다만, 이런저런 가정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혹은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결과주의적 이론이 그나마 제일 말이 된다는 정도는 주장할 수 있겠죠.

버나드 윌리엄스는 우리의 윤리적 삶이라는 것은 체계화된 이론으로 포착되기에는 너무 어수선하다(untidy)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곱씹어볼만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출처는 기억이 안나네요. 저는 Morality에 직접 쓴 내용을 읽은 것 같은데 다시 보니 거기에 없는 걸 보면 다른 데에서 읽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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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는 고전적이냐 현대적이냐로도 나눌 수 있고, 또 그 내의 이론적 입장 차이를 근거로 나눠지기도 하여

정확히 어떤 공리주의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만, 좌파 철학하는 사람들은 고전적 공리주의만큼은 옳다고 믿지 않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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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물론 본 통계가 어떤 입장이 보다 근본적으로 더 옳은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의무론, 결과주의, 덕윤리로 대표되는 입장들이 각자 일정 정도의 설득력과 약점을 갖고 있음은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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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는 공리주의가 RM Hare의 공리주의 밖에 없어서, 아마 그 공리주의를 말하는 걸거에요.

의무론이 독일철학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헤겔이 흔히 말하는 "좌파철학"의 상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독일철학을 공부하면서 공리주의에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한 걸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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