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쿤님. 제가 요근래 이 주제를 곱씹고 있는데, 세 가지 층위가 뒤섞여있어서 저희 논의가 꼬인거 아니였을까요?
(a) 발화(speech act)의 목적
; 발화의 목적이 애당초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였다면, 그에 대해 사실을 평가하는 답을 하는 건 올바로 된 화행이 아니다. (예컨대 청소해라!라는 명령에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는 건 이상하다.)
(b) 의미론적 측면
; 명제의 형태로 구성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면, 그 명제의 참거짓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컨대, 사과 혹은 좋아! 라는 명제의 부분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애당초 참거짓을 따질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c) 화용론적 차원
; 발화된 언어의 의미론적 차원에 더해, 화행 상황이 함축하는 의미. (예를 들어, 내가 사과를 가리키며 사과!라고 했다면 이건 화용론적으로 "저건 사과다."라는 명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에이어가 가정한 이모티비즘은 (a) 발화의 목적은 감정 표현이며 (b) 이건 감탄사 같아서 의미론적으로 명제적 내용이 없고 (c) 화용론적 의미만 가진다. (근데 에이어가 화용론적 의미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b)에 대한 명시적인 주장을 안 했을거같기도하네요. 50년대 이론이니...)
(제가 보기에 (a)만을 주장한다면 굳이 임베딩 문제가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아마도 (b)까지 주장하니깐 그런 것 같은데, 여전히 제가 받아드리기에는 쉽지 않은입장이네요.)
주관주의는 (a) 발화의 목적은 사실의 표현이며 (b) 이는 화자의 감정적 심적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c)는 열려있고요.
아마 이게 라쿤님이 설명하시려던 지점 같은데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