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사실의 문제에 대해서…

철학과 자연과학 모두 제 전공은 아니라서 제 궁금증이 얕을 수는 있으나 저를 오랫동안 괴롭힌 문제라서 끄적여봅니다.
정동호 교수님의 저서 <니체>에서 니체는 자연과학 공부에 열심이었고 공간은 유한, 시간은 무한하다는 생각과 물질보다는 힘의 관념에 집중하여, 영원회귀라는 사상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간은 유한하지 않고 시간도 상대성이론이 나오고 그 개념이 많이 달라졌죠
그렇다고 해서 영원회귀가 헛소리라고 하면, 천상과 지상의 물질이 다르다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비판해야하는가… 그런 비판이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어보면, 사람들은 도덕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호오를 결정하고 사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만든다,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란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칸트의 정언명령을 비롯한 윤리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궁금해집니다(실제로 책에서도 칸트보다는 흄에 가까운 본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미학에 대해서도, 뇌과학이 시냅스 수준에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전과정을 밝혀낸다면 그와 모순인 미학들은 전무 폐기해야하는걸까요?
더 나아가서 뇌과학이 뇌와 의식에 대해 모든 것을 밝혀내면(유물론적으로), 생물학이 인간학을 대체하게 될까요?
저는 학부생이 아니고 이 질문은 책을 읽으면서 든 궁금증이라 저 스스로도 풋내기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고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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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신 질문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명료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2) 우선 니체 문제부터 살펴보죠. 사실 여기서 이 질문이 가장 모호해 보입니다. "사실과 다른 이론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요점처럼 보이긴합니다.

이건 이론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답이 다 달라질듯합니다. 이론의 목적이 사실을 기술하는 거면, 사실과 다른 이론은 폐기되어야겠죠. 잘못된 역사적 사실에 관한 사학이 폐기되는 것처럼요.

여기서 사실 제가 궁금한건, 니체의 영원회귀가 자연과학처럼 사실을 기술하기 위한 목적이었냐는 겁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우선은) 폐기되어야겠죠. 그런 목적이 아니였다면, 애당초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 당시 자연과학에 영감을 받아서 그런 이론을 만든 셈인데, 그건 이론의 정합성과 사실 별 관련이 없으니깐요.

(3) 윤리학의 경우, 다음과 같은 고전적인 답변이 여전히 유효할듯합니다.

이 말이 옳다하더라도, 칸트라면 "정언명령"처럼 하는게 "옳은 방법"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우리가 윤리적인 존재다, 라는 주장과 우리는 윤리적이여야 한다, 라는 주장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지만 구분되는 주장이라 사료됩니다.

(3)

이 역시도 너무 광범위한 질문입니다. 아마 미학에서 각 학자들이 취하는 입장과 연구 분야에 따라서 다 갈릴듯합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물론과 인간학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포함하는 단어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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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및 윤리를 탐구하는데 과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은 어떤 (심리학적/생물학적 ...) 경위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가?

라는 질문은 도덕심리학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만 이 질문은

그래서 어떤 도덕적 판단이 옳은 판단인가?'

라는 규범 윤리 질문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잘 알려진 트롤리 딜레마 사례를 고려해볼 경우,

설문조사를 통해 어떤 사람들이 '레버를 당길 것이냐/말 것이냐'를 연구하고, 나아가 어떤 심리적/뇌과학적 변인이 해당 레버를 당기는 것과 밀접히 연결되었는지를 연구할 수 있지만, 그 연구가 곧 "그래서 레버를 당겨야 하는거야, 마는거야?"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바른 마음>에서 하이트 본인도 이런 문제에 답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도덕심리학과 규범 윤리학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거나 최소한 독립적인 관계이지, 반드시 충돌하는 관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덧)

사실

라는 말은 재밌게도 어떤 의미에서는 '객관적' 판단, 이를테면 과학적 판단에도 상당부분 적용되는 말입니다. 과학적 믿음 혹은 가설의 '발생'은 "무의식"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료를 통한 '입증' 과정은 "사후적"이며 "합리화"의 과정이죠. 케쿨레의 벤젠 분자 구조 발견이 교과서적인 예시입니다.

이를 두고 한스 라이헨바흐는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간의 차이를 통해 설명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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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니체라던가, 윤리학이라던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전체적으로 답변을 드려보겠습니다. 일단 우리가 왜 이런 고전들을 읽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일단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역대 최고의 천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재들이랑 대화를 나누면 무엇이 좋을까요? 제 생각엔 그 천재들이 한 말을 곱씹어보면서 그 사람들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같습니다. 그 천재들은 책을 써도 엄청나게 많은 이론들과 생각을 한 후 하는 것이고, 그런 이론과 논리들이 다 책 안에 녹아나니깐요. 한 책을 다시 읽고, 여러 번 생각해본 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게 고전이고, 여러가지 다른 경험들을 하고 다시 그 책을 읽어도 새로운 게 고전 같습니다. 즉, 고전이라는 것은 천재들과 대화를 함으로써 우리가 그 사람들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봅시다. 천재들도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다 맞을 수가 없습니다 (혹은 그 천재들의 어깨 위에서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찾았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결론에 필요한 전제들이 과학적으로 틀린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천재들이 했던 주장들을 모두 폐기해야하는 것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고전의 의의는 그 사람들의 깊이를 엿보는 것이지, 그 사람들의 결론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깐요. 그 사람들의 결론이 틀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깊이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깐요. 즉, 우리는 그 사람들로부터 깊이를 배우기 위해 그 사람들을 공부하는 것이고, 깊이는 결론에 상대적이진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틀렸든 맞든, 읽고 그 사람들의 깊이를 따라가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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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전공이 과학쪽이라 이런 주제에 대해서 명확하게 표현을 잘 못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2)니체는 영원회귀를 자연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플라톤이 이데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천상과 지상의 물질이 다르다고 생각한 것처럼요.
덧붙이려다 말았는데, 프로이트도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생각했지만, 현재 정신분석학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뇌 과학자가 있다면 농담을 하고 있거나 수준 이하의 학자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정신분석학이 폐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과학은 아니지만 문학비평에서 써먹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맥락에서 비록 니체가 세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영원회귀를 고안해 내었다해도 과학계에서 플로지스톤과 에테르라는 개념을 폐기한 것처럼 폐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윤리학과 미학에 대해서는 제가 너무 모호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윤리적 존재라는 점이 윤리적 존재이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윤리학과 미학의 다른 주제들을 제쳐두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선/아름다움을 느끼는가'에 관한 문제에 더 이상 윤리학과 미학이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걸까요? 인간이 선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과정을 시냅스차원의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 세포 내 signal pathway로 환원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제가 유물론적이라는 말을 썼던건 이런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윤리적 존재라는 점과 어떻게 윤리적으로 살아야하는가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덧)

벤젠과 우로보로스는 유명한 일화죠 ㅎㅎ 그런데 너무 복잡해지고 분파가 된 현대과학에서는 한 분야를 여러명, 많게는 수십명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우에도 "무의식"에서 믿음 혹은 가설이 나오게 될까요? 개인적으로는 과학자들의 '사회', 공론장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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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에 따라선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연구비 펀딩 주체인 경우도 많죠 :rel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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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철학사를 공부해야하는 이유를 잘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1) 아닙니다.ㅎㅎ 죄송하실거 없어요. 저런 말투(?)가 다른 분야에 계신 분들은 보통 세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냥 철학과에서는 일상적인 말투에요. 저도 질문자님이 뭐 잘못했다, 부족하다 그렇게 지적하기보단 "이렇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라는 느낌의 말이죠.

(2)

여기서 이미 답을 찾으셨네요.

제가 "우선은"이라는 조건을 단 이유는, 작성자님이 말하셨듯 이론이 (후대 사람들이나 때로는 학자 본인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3)

사실 이제부터 굉장히 복잡한 논의로 들어가는 지점입니다. 학자마다 여러 입장이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렇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선"이나 "아름다움"이 인간이 느끼는 무언가라고 말하겠죠. 이 입장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와일드버니님이 말하신 도덕 심리학이나, 신경 미학 등의 영역으로 윤리학/미학의 일부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할 겁니다.

문제는 이와 별개의 입장이 두 가지 정도 성립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하나는 아름다움/선이 인간이 "느끼는 것"이 되, 그건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되기 어렵다 보는 것이죠.

보통 이 문제는 "의식의 강한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라 불립니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움/선이 애당초 인간이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선이란 인간이 만든 인공적 산물이라던가, 규범이라던가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학자라면 애당초 연구가 타당하지 않다 볼 것 입니다. 아름다움 역시 마찬가지요. 느끼는 것이 아닌, 어떠한 "판단"의 문제라 본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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