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이 수학철학에서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가?: 비트겐슈타인-튜링 논쟁과 비트겐슈타인-괴델 논쟁을 중심으로

지식 일반에 관한 회의주의 등 도대체 합리적 과정을 통해 도달한다고 여겨지기 어려운, 무차별적으로 보편화되는 회의주의도 있겠지만, 분명 꽤나 많은 철학적 문제들이 특정 영역에 대한 회의주의적 도전으로 촉발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때 회의주의란 것은 대체로 특정 영역의 지식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그 특정 영역으로부터 다른 영역의 지식을 추론해낼 수 없다 등의 구조를 갖습니다. 흄의 회의주의도 인상과 관념의 다발로부터 인과를 도출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꼭 그런 구조가 아니더라도, "합리적 과정"을 통해 도입되는 회의주의는 그 결론이 아무리 파멸적이어서 자기파괴적이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나름의 합리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다 결국 코기토에서 멈춥니다. 코기토에 정착하기 이전에, 이 방법적 회의를 따라가면 결론은 그냥 카오스입니다. 이게 결론으로서는 설득력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무차별적으로 일반화되는 그런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왜 모든 걸 의심한다면서 의심의 전제는 의심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데카르트는 자신의 방법적 회의와 광인의 헛소리를 구분합니다. 회의의 과정에서 인정된 진리는 단계별로 깨어집니다. 끝끝내 본인의 의심의 전제마저 박살난다고 해도, 그건 그 탐구의 결과인 것이고, 경로상의 문제가 곧바로 제기될 수는 없습니다.

조건이 있다는 생각, 즉 (a)를 회의주의자가 받아들이더라도, 이는 (b)나 (b')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과 모순되는 (a')를 회의주의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a)로부터 (a')가 도출되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조건이 있어도 그 조건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많은 철학자들의 스탠스입니다. 이는 (a)&(b')이고, 이는 모순이 아닙니다.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자기 이론의 효용성을 자랑하기 이전부터, 즉 (b')를 탐구를 통해 마침내 살포시 부정하기 이전부터 (a')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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