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히 전기 종교철학

무조건적 의미의 매개로서 틸리히의 전기 종교이론

I . 들어가는 말

근대 학문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성서 그 자체 또는 성서의 문자적 의미는 기독교 종교의 본질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개신교 정통주의의 성서영감론이 붕괴된 이후에 근대시대에 신학적 방법론의 핵심으로 종교개념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칸트 이후 근대 신학과 철학은 근본적으로 신을 더 이상 인간 이해 지평 안에서 두지 않고 모든 사물과 현상의 전제로서 파악함으로써 신학의 대상은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근대 문화 속에 형성된 기독교 종교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에 근대 문화적 조건 아래서 구성된 신학에 대한 반발로 변증법적 신학자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종교개념이 신학적 방법에 적절한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했다. 바르트에 따르면 종교의 의미는 세상 안에서 죄에 의한 인간의 지배이다. 그래서 그는 신학의 가능성을 신으로부터 파악함으로써, 종교적 인간의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하지만 바르트의 이러한 시도는 근대신학 또는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형성된 진정한 기독교 종교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 위에서 숙고되었다. 바르트와 변증법적 신학자들에게 신학의 대상은 물론 하나님이며, 이 하나님은 급진적으로 인간의 부정과 지양을 의미하지만, 본질과 현상 사이의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은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얻은 질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근본적 관심은 역사이며, 그들은 이 역사를 통해 견고한 교리주의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했다. 이와 반대로 변증법적 신학자들은 화석화된 역사적 사유를 넘어서고자 했다. 이를 위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종교개념을 폐기하였다.

바르트와 변증법적 신학자들이 종교개념에 대해서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신학 안에서 종교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나님의 직접적 자기계시처럼 바르트는 계시에 의한 직접적 인식을 구성하지만, 이는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넘어선 이해이다. 인간은 언제나 초월적인 것을 매개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폴 틸리히는 근대 인간학적 종교 이해와 변증법적 신학자들의 종교의 폐기에 대한 대립을 넘어서 종교의 새로운 이해를 제시한다. 틸리히 역시 자유주의 신학에서 형성된 핵심과 외피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하르낙이 종교의 본질을 변하지 않는 본질로서 이해하고 트뢸치가 종교의 본질을 역사 안에서 매 순간 새롭게 구성되어 "본질규정이 본질형태"라고 말하는 반면에, 틸리히는 종교를 무조건적인 것의 출현으로서 이해한다. 틸리히는 무엇이 외피이고 그 안에서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핵심과 외피를 구분하는 것을 다루지 않고, 어떻게 종교 현상의 매개적 구성물을 통한 무조건성의 출현을 다룬다. 틸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본질을 역사적으로 또는 사회사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현상과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신과의 관계이다.

종교는 모든 영역에 있어서 신과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계몽주의, 관념주의 그리고 직관의 시대 안에서 전제로서 신은 인간의 자기 확실성 또는 세계로 대체되어 더 이상 관계적 의미를 생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의미를 추구하고, 만약 의미를 얻지 못할 때, 인간은 이웃과 세계로부터 소외된다. 그래서 인간은 이 의미를 얻기 위해서 다른 것에서 의미를 얻으려고 하지만 이는 조건적인 것을 무조건적으로 또는 유한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려는 우상숭배이다. 틸리히는 이와 다르게 조건적인 것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을 탐구한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일상 안에서 있는 다양한 상징과 매개를 절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징과 매개 안에서 나타나는 거룩성을 탐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논문은 우선 전쟁체험을 통해 형성된 틸리히의 근대 실재론적 종교 이해에서 의미론적 종교 이해로의 이행을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히르쉬와 틸리히의 편지 내용을 다루고, 이를 통해 틸리히의 신론이 근본적으로 관계적 의미론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 다음 나는 이 의미론적 종교이해가 어떻게 문화 안에서 무조건성의 체험과 관계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틸리히의 전기 문화신학의 의도는 명백하게 인간은 문화 안에서 무조건적인 신과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러한 이해가 그의 신율적 종교 이해로서 등장하였음을 보이고자 한다. 틸리히는 신율적 사유를 통해 종교를 인간학화한 근대 개신교 신학의 실증주의적 역사 이해를 넘어가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질과 현상 사이의 원리를 파악하고 자며, 이 원리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외적 형태를 넘어 신과 관계하여 의미를 얻는 자유의 기독교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이 사유는 유럽신학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신학을 위한 공헌할 수 있다. 단지 유럽신학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신학과의 대화 속에서 각자의 자리와 각자의 형태 속에서 그리스도로서 예수를 통한 신의 무조건성의 관계를 가진 새롭고 자유로운 종교를 희망할 수 있다.

II. 전기 틸리히의 의미이론적 종교이해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발생한 세계대전은 유럽 지성사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이 전쟁은 유럽 신학과 철학의 낙관주의를 붕괴시켰고 새로운 길을 찾게 만들었다. 틸리히에게 있어서도 이 전쟁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틸리히는 1차 세계대전 동안 군종목사로서 전쟁터 한 가운데서 설교를 했고, 전쟁 한 가운데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이 경험을 기반으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틸리히는 더 이상 실재론적 종교이해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근대시대에 칸트의 실천적 이해, 헤겔의 이론적 이해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의 감정적 이해의 지반 위에서 종교를 다른 것과 나란히 문화의 한 형태로서 이해하는 종교이해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제 종교는 단순히 종교가 자신을 보여주는 형태를 넘어 삶의 의미를 생성해야만 했다. 우리는 틸리히의 종교이해의 생성과 발전을 그의 친구 엠마누엘 히르쉬와의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7년 11월 12일에 엠마누엘 히르쉬에 보낸 편지에서 틸리히는 그가 본 모든 것이 비극이라고 말한다. 그는 전쟁 안에서 오로지 파괴적인 것 만을 보았다. 이미 이 당시에 틸리히는 존재보다 의미와 깊이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12월에 보낸 편지에서 틸리히는 캘러의 문장, «절대적인 것은 우상이다»라는 문장을 언급함으로써 종교적 기능을 이론적 신개념의 완성에 근거하는데 반대한다. „종교학과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종교의 주관적 원래적 순간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는 고정된 실체나 존재로서 절대성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안에서 생성되는 의미의 절대성이다. 모든 체험이 종교적 특성을 소유하는게 아니라 특정한 체험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다. 그리고 틸리히는 이 의미부여를 객관화로 이해한다. 따라서 완전히 순순한 내재적 객관화는 불가능하다. 특히 틸리히는 1918년 2월 20일에 보내는 편지에서 ‘두 번째 체험’ 또는 ‘타자의 체험’을 언급하면서 1차적 체험은 주관적이지만 2차적 체험은 더욱 객관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틸리히는 인식과 해석의 목적이 1차적 체험과 2차적 체험의 동일화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양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2차적 체험은 간접적이며 의미와 가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체험과 개념의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고 간접적 관계를 가진다. 틸리히가 여기서 말한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문장의 의미는 의미론적 관계 안에서 하나님을 의심할 수 없지만, 소위 대상의 재현적 또는 개관적 형식의 의미 안에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신적인 것은 의미이지 존재가 아니며, 그것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틸리히의 의미로서 종교의 발견은 그의 관계적 신 개념을 통해 더욱 명확해 진다. 틸리히의 후기 사상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무조건적으로 관심을 부여하는 것’ 으로서의 신 이해는 결국 신이 실체적 대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삶 안에서 의미 또는 무조건성을 부여해주는 우리의 삶과 관계하는 신이다. 하지만 이 틸리히의 관계적 의미론적 신 이해는 칼 바르트와 같이 교회적 전통 안에서 제시되는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로서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슐라이어마허 전통에서 신의 세계 안에서의 편재성과 신의 세계관계성에 근거한 의미를 생성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틸리히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이라는 상황에서 신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칸트적 의미로 세계의 근거로서 신의 의미를 탐구하고 이 신이 모든 조건자들의 의미와 의미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무조건적인 의미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이 신에 이르는 길 또는 신으로부터 의미를 획득하는 길은 인간학적 길에서 불가능하다. 틸리히는 1927년에 작성한 그의 논문 „Die Idee der Offenbarung“ 에서 르네상스 이후에 신학과 철학은 초자연적인 것의 의미를 상실하고 계시는 종교사로 환원되었다고 말한다. 종교사로 소급되는 계시는 무조건적 의미가 아니라 조건적 의미를 가지며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계시가 아니다. 틸리히는 단순히 감추어져 있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계시가 아니고 계시는 무조건적인 숨어 있음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조건적 대상을 계시와 신에 이르는 길로 여기는 것은 조건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것이고, 이는 우상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순수 객관적 대상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무한자와 아무런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오직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것이 나를 위한 계시이고, 이것은 계시를 종교사로부터 분리한다.“ 물론 틸리히는 이 계시가 초역사적이고 초자연적인 시간의 저편에서 놓여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계시가 조건적인 것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에 의해서 인간에게 신인식의 길을 제공함으로써, 그는 바르트와 다른 길을 걷는다. 틸리히 역시 바르트처럼 „신은 오직 신으로부터 인식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조건적인 것 밖에서 초자연적 말씀 계시의 침투가 아니라 조건적인 것 안에 있는 무조건성을 통한 신인식이다. 따라서 틸리히에 따르면 계시는 우리가 종교적 영역이라고 말하는 특별한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문화 영역 안에서 현존한다.

이 조건자 안에서 무조건자로부 신인식이라는 틸리히의 명제는 고대와 르네상스와 틸리히를 구분하는 기준점이다. 고대 철학과 신학은 사멸성에 대한 질문 속에서 변화와 잊혀짐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존재하는 영원성을 탐구하고, 르네상스는 무조건성을 조건성 안에서 흡수하여 조건성 또는 유한성으로부터 그 답을 구했다. 이 주제 안에서 고대는 인간의 불가능성을 보았고, 르네상스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면, 틸리히는 인간의 유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인간은 유한한 조건성 안에서 무조건성을 계시 또는 신앙의 힘으로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틸리히에게 있어서 역사는 그 자체가 구원사도 아니고, 종교사도 아니고, 틸리히는 역사를 구원사로서(Geschichte als Heilsgeschichte) 이해한다.

조건적인 것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을 파악할 때, 틸리히는 2 가지 기준을 제기한다. 하나는 우리의 고유한 영적 존재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사회적 존재의 깊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우리의 실제적 현실성 안에서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것은 개인의 주체와 함께 사회적 상호주체의 연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체와 상호주체의 상호교환을 통해서 무조건적인 것과 관계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인간은 단지 사회적 관계를 통해 무조건적인 순간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을 필요로 한다. 틸리히에게 신앙은 단지 «내가 믿는다»라는 인간의 주관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파악하지 못하고 파악되는 사건이다. 이 신앙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이고 최종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 인하여 이 무조건적 현실과 최종적 현실은 현실성의 힘을 능가한다. 이것은 그 자체로 초월이다.

이 현실성 안에서 초월이라는 무조건성의 체험은 초월을 시공간 밖에서 찾지 않고, 그리고 현실성과 초월을 획일화시키지 않고 현실성 안에서 초월을 찾는다. 따라서 실재론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고 존재의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오늘날 영미권의 분석철학과 반실재론의 강력한 영향 아래서 실재론은 개관적 대상론 또는 개관적 재현론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틸리히의 실재론은 조건적인 것 안에서 존재의 능력으로서 실재를 이해함으로써 이 비판을 극복할 수 있다. 이미 틸리히의 실재론 안에서는 반실재론이 주장하는 진리의 상호주체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 삶의 모순과 한계를 인식한다. 빈실재론이 비트겐슈타인의 명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라»를 모토로 삼았지만, 틸리히는 인간이 침묵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은 믿기 때문에 침묵하고, 이 침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한계 때문에 인간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신을 요청한다.

틸리히는 자신의 전쟁 경험에서 종교가 의미의 문제임을 인식했고 따라서 그에게 종교는 무조건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였다. 그러나 이 의미는 다른 의미와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이다. 이 의미론적 지평에서 그는 무조건적으로 관계하는 신 개념, 조건적인 것과 무조건 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탐구함으로써 무조건적인 것인 조건적인 것 안에서 출현함을 인식했다. 따라서 존재의 대상성 또는 사물의 절대화가 아니라 존재의 심연 안에 있는 능력이 종교의 본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문화 안에서 출현하는 무조건성을 탐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조건적인 것 안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무조건성만이 우리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에게 그러므로 신은 무조건성의 지평 위에서 모든 조건적인 것 안에서 의미와 의미를 연결하는 망이며, 종교는 이 무조건적인 경험을 생성하는 원리이다. 그리고 이 의미와 의미들의 연결과 의미의 부여는 문화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III. 문화의 신학

종교와 문화 또는 신학과 문화에 대한 관계는 20세기 초반 변증법적 신학과 사회학의 세속화 이론의 등장으로 양자를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세속화와 변증법적 신학은 매우 다른 형태를 보여주지만, 실제로 매우 유사한 특징을 나타낸다. 한편으로 변증법적 신학은 신학적 근거에 의해서 자신들을 사회로부터 구분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미국 신학적 윤리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에게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교회는 세속사회에 대한 대안적 공동체로서 사회와 구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 초기 사회학자들도 종교를 사회의 예외적 현상으로 파악함으로써, 근대 세계의 생성으로 종교가 사라지거나 자연종교로 퇴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양자의 사유는 교회와 사회 또는 종교와 문화의 대립을 전제하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 안에서 종교와 문화의 상호적 관계를 재숙고하는데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다.

틸리히는 이미 개신교 신학 안에서 종교와 문화의 중재를 위한 기획으로서 신학적 윤리학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 기획은 예를 들어 리츨에게서 윤리가 엄격하게 교의학적 진술로부터 구성되었기 때문에 종교와 문화의 상호 관계 규정으로 볼 수 없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를 중재하는 신학적 윤리학의 근본의도를 문화의 신학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19세기에 칸트는 종교를 도덕으로, 헤겔은 이론으로 그리고 슐라이어마허는 감정으로 정의했지만, 틸리히는 그들과 다르게 종교를 객관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틸리히는 1919년 출판한 논문 Über die Idee einer Theologie der Kultur 에서 „종교는 독특한 심리적 기능으로 분류되지 않는 고유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실천, 이론 그리고 감정이 더 복잡한 통일성 안에서 결합된 정신의 태도이다.“ 물론 틸리히 이전에 신칸트학파 철학자 빌헬름 빈델반트가 종교를 도덕, 이론 그리고 감정을 넘어 초월적 영역으로 파악했지만, 그는 이 인간 인식영역 너머에 있는 거룩을 비규정성으로 해명했을 뿐이다. 그와 반대로 틸리히는 종교를 실천, 이론 그리고 감정적 태도에 대한 관계 안에서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서 종교를 무조건적인 것들의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이 조건적인 것들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의 경험이 의미와 의미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성함으로써 문화 안에서 종교의 고유성을 보증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이처럼 문화 안에서 무조건성을 중재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무조건적 경험으로서의 종교이해는 전통적인 종교적 영역에 대한 이해와 다른 이해를 제시한다. 종교라는 단어는 라틴어 religio 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신들의 제의적 숭배(relegere)와 신에 대한 의무(religare)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종교는 신화, 제의, 의무와 같은 매우 독특한 영역을 가지고, 일반 일상의 영역과 구분되었다. 그리고 근대 이전에는 이 종교적 영향이 일반 문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틸리히는 이제 프로테스탄트 지평에서 이러한 종교적 영역의 지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틸리히의 문화신학은 신학적 근거로 문화를 평가하지 않고 문화적 근거로 신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문화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문화는 종교의 형태이며 종교는 문화의 내용(Gehalt)이다. 틸리히는 Inhalt 대신 Gehalt라는 그의 독특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종교가 대상성에 머무는 것을 비판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는 무조건적인 경험이지 조건적인 것의 절대화가 아니며, 종교는 특정한 영역 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모든 문화적 현상 안에는 모든 문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통일적 원리가 내재되어 있고, 종교는 이 문화적 현상을 통해 현실화된다. 따라서 내용과 형태 양자는 통일성 안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틸리히는 문화신학의 독특한 과제를 내용에 근거해서 설명한다. „문화신학의 과제는 이제 모든 분야 안에서 과정과 문화의 창조들을 추적하고 표현한다.“ 결정적으로 문화신학은 문화적 형태나 문화 안에서 종교적 형태를 분석하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안에서 활동하는 내용을 서술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틸리히는 문화신학이라는 표어 아래서 종교와 문화 상호관계를 새롭게 구성했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문화를 구성하는 무조건적인 근거인 내용이며 문화는 이 내용을 현실화하는 형식이며 매개이다. 문화는 문화 그 자체로서 문화신학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고 문화는 종교의 매개로서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문화는 초월에 대한 가치의 매개물로서 틸리히 신학 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이 매개로서 종교이해 안에서 거룩함과 세속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이 질문은 종교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을 구분했던 이전 시대와 다르게 이제 성과 속의 새로운 관계와 이해를 필요함으로 제기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틸리히는 더 이상 세속적 영역과 구별되는 특별한 종교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그래서 그는 성속 이원론을 거절하고 무조건적 경험의 지평에서 거룩함과 세속을 새롭고 다르게 이해한다.

빈델반트가 종교를 이미 거룩으로 파악했지만, 그는 이 거룩을 비규정성 안에서 이해한 반면에, 루돌프 오토는 종교의 본질로서 거룩을 mysterium tremendum et mysterium fascinans 로서 정의함으로써 종교학과 종교철학 안에서 거룩의 주제를 종교연구의 중심으로 제시할 수 있었다. 오토에 따르면 종교는 일반적인 행위, 이성, 그리고 감정과 다른 누미노제의 체험으로서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포함한다. 틸리히 역시 종교는 단순히 도덕, 이론 그리고 미학으로 환원되는지 않는 역설적 특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오토는 분명하게 일반적 도덕, 이론, 그리고 감정과 다른 독특한 종교적 감성으로서 누미노제의 감정을 말했으나 이는 결국 미학적 범주에 종교를 서술했다. 이와 다르게 틸리히는 무조건적인 경험으로서 표현함으로써 거룩과 세속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상호연관으로서 이해한다. 특히 막스 베버 이후로 근대를 탈마술화와 이성화로서 이해하는 경향에 반대해서 틸리히는 세속적 영역이 인간의 삶에게 의미를 주기 위해서 무조건적 특성을 가진 거룩성이 세속적 영역을 지지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거룩은 세속과의 대립 안에 서 있는 거룩성에 대한 의지(Wille)나 제도가 되는 것을 중지하고, 이 세속적 형태는 거룩의 내용과 함께 성취되고 거룩의 내용을 세속적 형태 안에서 표현된다. 결론적으로 틸리히는 세속 안에서 거룩함 또는 문화 안에서 초월이라는 관계설정으로 양자를 새롭게 이해한다. 여기서 틸리히는 근대 이후 탈마술화 또는 탈신화화된 세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마술화(Verzauberung)함으로써 종교와 사회 그리고 세속과 거룩의 상호공존 하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틸리히의 문화신학이 단순히 기독교 종교 또는 기독교 신학을 세상 문화를 따르거나 순응하려는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틸리히는 종교의 문화화가 아니라 종교와 문화의 중재를 목표로 했고, 따라서 문화를 언급함으로써 신, 계시, 거룩같은 주제를 배제하지 않고, 문화가 종교적 주제를 매개로서 전달할 수 있음을 제시할 뿐이다. 따라서 그는 문화적 형태를 통한 탈주술화를 의도하지 않고 오히려 문화 안에 초월을 통해 문화의 마술화를 의도했다. 조건적인 문화 안에서 무조건성이 출현함으로써 이제 문화는 무조건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자기초월적 의미를 생성하고 전달한다. 마술화라는 개념이 조건적 상황 안에서 자기초월적 현실성을 실현한다는 의미를 가질 때, 마술화는 이제 비합리적 전근대적 표어가 아니라 근대의 도구적이고 기술적 합리성을 넘어 상호적 관계를 성취하는 현실성 안에서의 진정한 영의 현실화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근본적 문화신학의 의도와 목적은 공허한 형식만 있는 완전한 자율이나 모든 살아있는 것을 화석화하는 타율을 향하지 않고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충만한 의미를 향한다. 틸리히는 이것을 신율이라고 명명하는데, 이 신율의 개념은 틸리히 사상에서 가장 독특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다.

IV. 신율적 종교이해

틸리히 신학에서 자율, 타율 그리고 신율에 대한 이해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주제는 그의 시간이해이다. 틸리히는 형식적 시간과 적절한 시간을 구분한다. 전자를 그는 크로노스라고 칭하고 후자를 카이로스라고 부른다. 형식적 시간으로서 크로노스는 시간의 통제를 의미한다. 틸리히는 하나의 현실성을 절대적으로 규정하는 역사철학의 절대적 양식과 상대주의적 양식을 서술함으로써 특정한 시간을 절대화하는 것을 비판한다. 절대적 양식은 과거의 한 시대(또는 교회)를 절대적 시기로 보고, 상대주의적 양식은 모든 시대를 균일하게 파악함으로써 절대성을 시간 안에 어떠한 형태로부터 획득하고자 한다. 하지만 „절대적 교회와 절대적 유토피아는 동일한 방식으로 우상숭배다. “ 시간을 크로노스로 보거나 카이로스로서의 시간을 대상적 절대화하는 시도는 결국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모순과 긴장이 없는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객관적 대상적 시간에 대한 파악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객관적 대상적 이해는 모순과 긴장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순과 긴장 없는 시간은 결국 조건적인 것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그 안에는 무조건적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카이로스의 의식은 단순히 기술적 계산적 시간의 측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출현을 의미한다. 아직 오지 않았고 성취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시간의 성취는 시간을 넘어서서 그리고 시간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시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크로노스의 의식 안에서 살아간다면, 신의 계시 또는 신의 자기현현은 시간을 넘어서 또는 시간의 폐기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시간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시간 안에 등장한 로고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제 카이로스의 의미는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자율적 문화의 지평에서 새로운 신율의 침투이다.“ 고대신학과 철학은 변화와 사멸을 피하기 위해서 시간 저편에 있는 영원을 탐구했고,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기술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극복자가 되고자 했다. 틸리히는 이제 카이로스를 시간 안으로 영원의 침투의 의미 속에서 이해했고, 영원은 시간 안으로 침투한 것이지 시간 안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여 무시간적 무공간적 이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의식을 가진 역사해석을 통해 조건적인 것 안에서 무조건성을 경험한다. 바로 이 카이로스의 의식 안에서 무조건성의 역동성, 떨림, 경악 그리고 역설이 우리의 의식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순간을 신율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신율적 시간이해로서 카이로스는 객관적 내용(Inhalt)으로부터 도출되는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의미적 내용(Gehalt)로부터 매순간 우리에게 의미를 생성하게 만드는 시간의 사건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율은 자율과 타율의 극복인데, 왜냐하면 신율은 율법의 순종도 이성적 인간의 성취도 아니기 때문이다. 신율은 무조건적 현실성이 모든 삶의 양식 안에서 표현되는 정신적 상황이다. 따라서 신율은 완전한 형태도 객관적 절대화된 형태에 대한 자유로운 저항도 아니라 삶의 충만함 안에서 드러나는 무조건적 현실성의 드러남이다. 틸리히는 유럽역사에서 중세에 이 신율적 시대가 존재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결국 이 신율적 시대는 신율이 포함하고 있는 정신적 충만함이 사라지면서 타율의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타율은 내용(Gehalt)없는 형식만 남아있고, 이를 법칙으로서 강요하는 태도이다. 가톨릭 지평에서 종교개혁 이전에 면죄부 판매가 이에 해당하며, 개신교 지평에서는 20세기 등장한 근본주의가 이에 해당한다. 이 양자는 형태의 복종만 강요했지만 결국 인간의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생성하지 못했다. 타율은 신을 상실한 종교이며, 이 종교는 자유를 실현하지 않고 자유를 억압한다. 이 타율과 대립해서 틸리히는 자율이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자율의 등장과 타율에 대한 자율의 승리는 „사물의 객관적 형태 안에서 이해를 의미하고 정확한 학문 그리고 기술적 이성적 세계지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자율의 형식이 이성과 기술을 통해 타율에 대립해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율은 신율과 대립해서 서 있다. 신율은 언제나 살아있는 의미의 출현이지만, 자율은 이 이성적 기술적 방법을 통한 인간의 통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율은 모든 양식을 통해서 무조건적인 것의 출현이며, 이 무조건성의 출현으로서 신율은 법칙이 아니라 은총과 직접적 압도적인 현실성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율은 어떤 형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는데, 만약 우리가 신율을 어떤 형식과 일치시킨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율이 아니라 타율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율은 자율적 기술적 통제와 일치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무조건성의 성취는 인간의 자율적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아 무조건적 침투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율은 원리이며, 원리로서 종교가 현실화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틸리히의 종교이해는 신율적 특성을 가진 종교 이해이고, 이 종교 이해는 종교를 실재로도, 기능적으로도 이해하지 않고, 종교를 무조건성의 경험의 해석으로 본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적 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종교는 언제나 신과 함께 인간에게 문화 안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이다. 이 매개로서 종교의 이해는 초월과 세계의 현실성 사이에서 신의 현실성을 드러내는 의미의 전달자로서 현재 안에서 신의 초월을 현실화하는 신율적 의미를 가진다.

이 신율적 종교이해의 의미 안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틸리히의 신율적 종교 이해는 기독교 종교의 고유성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트뢸치 이후에 등장한 기독교 절대성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트뢸치는 초자연적 교리주의와 역사적 발전의 완성으로서 기독교를 보는 이해를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역사 안에서 나타나는 최고가치로서 해석한다. 한편으로는 교리주의가 초자연적 계시의 집합물로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객관적 절대성으로 이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종교사 안에서 발전사적으로 완성된 종교로서 보는 이해를 트뢸치는 양자가 고정된 실체를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판단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를 역사 안에서 등장한 최고가치로서 이해하고, 기독교는 각각의 역사 안에서 새롭게 구성된 종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트뢸치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유럽종교이다.

트뢸치가 기독교의 가치를 현재 유럽 안에서 형성된 유럽 종교로 이해하는 반면에, 틸리히는 기독교의 가치를 조건적인 것과 무조건적인 것의 관계 안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틸리히에게서 절대성이라는 주제는 어떤 형태로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 안에 담긴 무조건성에 달려있다. 종교는 결코 특정한 지역적 문화적 형태 안에 제한되지 않는다. 종교는 자신의 원래 고향을 벗어나도 자신의 절대성을 새로운 자리에서 새롭게 자기를 실현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종교는 자신의 형태를 무조건성을 중재하는 형태로 변화함으로써 종교는 그 창조적 능력을 보여준다. 따라서 틸리히에게 있어서 문화통합은 개별적 인간학적 문화가치들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무조건적 지평 위에서 구성되는 신율적 문화통합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는 문화 안에 다양한 체계, 구성, 내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문화 안에서 무조건적인 의미를 중재하는 원리이다.

신율적 종교 이해는 시간 안에서 종교가 자신의 절대성을 형태로서가 아니라 원리로서 이해함으로써 변화하는 문화 안에서 무조건성에 근거한 창조적 문화통합을 의미한다. 변화하는 시간 안에서 그리고 진행되는 역사 안에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한다. 모든 것이 변화는 현실에서 우리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것 또는 이 변화를 넘어서는 이성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개신교 신학은 슐라이어마허 이후로 기독교 종교의 본질과 그 변화에 대해서 탐구해왔다. 하르낙과 트뢸치는 본질의 내용을 가지고 논쟁했다. 하르낙은 변화하지 않는 기독교 종교의 본질과 역사 안에서 이 본질이 드러나는 역사적 사건을 탐구했고, 트뢸치는 문화통합에 의한 현재 기독교의 변화된 모습이 기독교의 본질로서 이해했다. 여기서 틸리히는 본질과 변화를 내용으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이 변화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신율을 통해서 탐구함으로써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결론적으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종교는 신율이라고 불리는 무조건적 것의 침투를 통해 의미를 생성하고 전달하고 그리고 연결하는 의미의 연결망이다. 종교를 통해 우리는 신의 무조건성의 의미를 부여받고, 종교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실현한다. 종교는 그러므로 도덕, 학문 그리고 예술 옆에 있는 문화적 양식이 아니라 모든 문화적 양식을 의미 있게 만드는 무조건적인 침투의 매개이다. 이 매개를 통해 모든 문화 영역은 모든 의미를 만들고 연결시키는 신과 관계함으로써 조건적인 문화 안에서 무조건적인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신율적 종교이해는 종교만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지평을 넘어서 종교와 문화가 무조건적인 지평 위에서 상호관계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V. 나가는

1920년 이후 근대 신학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주체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신학의 인간학화이다. 바르트와 고가르텐으로 대변되는 변증법적 신학은 지속적으로 문화 개신교가 신학을 인간학으로 변화시켰다고 비판했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개신-개신교는 신중심적 신학과 대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틸리히에게 있어서 신개신교라고 명명되는 문화프로테스탄트는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을 무한히 긍정적으로 간주하는 신학이 아니다. 틸리히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이 성취한 문화가 무조건 자인 신에 근거해서 구성될 때, 문화프로테스탄트는 신학으로서 가치를 보존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문화 안에서 종교를 종교답게 만드는 의미의 생성자로서 신을 이야기함으로써 문화신학 또는 문화프로테스탄트 신학 안에서 신-담론을 중심으로 전개했다. 특히 그는 이를 통해 근대 신학의 완성되지 않았던 성령론 중심의 신 이해를 암시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그의 조직신학에서 나타나는 성령론적 삼위일체적 신론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성령론적 신이해는 결국 세계와 인간과 관계하는 하나님이 세상 안에서 그리고 인간과 함께 의미를 생성한다는 의미이다. 이 하나님, 세계 그리고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장소가 틸리히에게서는 문화였다. 따라서 문화는 단순히 세속적 형식을 의미하지 않고 초월이 중재되는 매개이다. 그럼으로 인하여 문화는 모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되는 매개이다. 종교도 이 문화 안에서 있으며 이 문화에 무조건적 특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매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종교로서 매개는 무조건 적인 것을 전달하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거나 확고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역동적으로 실현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종교를 형태나 유형으로서 제시하지 않고 매순간 형태가 만들어지는 원리로서 제시한다. 슐라이어마허가 절대의존 감정을 서술하지 못하는 교리를 교회의 구속체험이 살이 있는 교리로 수정하려는 것과 같이 그는 종교를 신의 무조건성에 의해 실현되는 능력으로 보았다. 특히 이 사유는 트뢸치가 기독교를 유럽의 종교로 제한하거나 또는 유럽사 안에서 형성된 종교이해와 다르게 유럽 밖에 있는 역사적 실존하는 기독교 종교에 대한 새로운 형태와 가치의 형성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유럽 밖에 실존하는 이 기독교 공동체를 평가하는 기준은 유럽에 살아가는 기독교 공동체의 형식과 내용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오리려 틸리히처럼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판단 기준은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가 자신의 장소에서 신의 무조건성에 기반하고 그 무조건성이 주는 무조건적 의미를 잘 구현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전기 종교이론에서 종교란 신의 보편성을 구현하기 위한 매개이며, 우리는 모든 삶의 장소에서 이 종교라는 매개를 통해 영의 실현을 경험한다. 결국 현대사회에서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의미를 전달해주는 종교는 문화 안에서 필연적인 존재로서 다원화된 사회에서도 그 가치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고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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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이 좋네요. 틸리히가 분명 바르트와는 달리 '종교성'이나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을 구성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저는 틸리히의 신학이 그리스도교를 인간적 영역으로 환원시키려고 한 입장은 분명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애초에 "철학이 질문하고 신학이 대답한다."라는 상관관계법의 핵심 표어는, 철학(문화)이 신학(종교)보다 근원적이거나 우선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종교)을 통해 철학(문화)이 비로소 자신이 찾고자 했던 무조건적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라고 이해해서요. 저는 이 표어가 차라리 철학에 대한 신학의 우선성을 강조했으면 강조했지, 불트만 같은 비신화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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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더군다나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 조차도 신앙 또는 종교의 문화화나 인간화라는 도식으로 단순히 환원할 수 없지요. 나중에 기회되면 불트만의 비신화화 프로그램도 한 번 글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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