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무페 이론의 한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선 블로그에서 쓴 글을 가져와서 평어체입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원문에 있는 사담은 제외하고 긁어왔습니다.


최근 무페의 책 두권을 읽고, 그녀와 같은 바운더리에 있는 경합적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글들을 살펴보며 그녀 이론의 한계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문제는 정치 영역에서 정동을 통한 대중(등가 사슬 수립) 형성에서 우발성(우연적인 것)의 차원에만 집중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녀의 이론에는 ①다양한 정동이 사회에 잘 전달될 수 있는 창구를 만들 방법과 ②정동에만 수동적으로 감응되지 않고 합리적으로도 사고하는 자율적 판단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교육해낼 것인지)에 관한 것이 빠져있다.

첫째 문제에 대해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저번에 이론 파트만 읽고 덮은 M.Paxton의 책 중 제도 파트를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철학에서 다룰 범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둘째 문제가 내가 생각하는 무페 이론의 핵심 문제다. 합리주의적 접근법을 취하는 자들이 정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그녀의 통찰은 매우 우수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들이 집중하는 문제를 쏙 빼놓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완벽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란 없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정동적 차원에 입각해서만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물론 무페가 이성적 합리성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정동과 이성적 힘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주체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없다. 즉, 주체 형성(교육)에 관한 문제가 없다. 이러한 문제는 니체를 베이스로 두는 경합적 민주주의에 데칼코마니처럼 나타난다. 니체의 경우에는 아곤적 투쟁을 통해 각 주체의 판단 능력을 향상시키고, 최종적으로 민주주의의 이상을 달성하려 한다. 곧, 니체 베이스의 경합적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체 형성(교육)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페의 것이 잘 지적하는 사회·경제 문제와 정치의 연관성이 빠져있어서, 신자유주의 비판과 같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내가 보기에 니체 베이스의 경합적 민주주의와 슈미트를 베이스로 한 무페의 것을 잘 조화시키면 그녀 이론의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듯하다. 무페 스스로가 자신 이론이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듯이, 그녀의 이론이 니체의 것과 결합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그들이라는 정치적 경계의 형성이 중요하다는 통찰은 슈미트를 기반으로, 우리든 그들이든 서로가 서로를 상대방이라고 존중하고 인정해줄만한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통찰은 니체에게서 끌여오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무페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듯하다. 니체만을 베이스로한 이론도 마찬가지다.


한국에도 무페에 관한 이런저런 글들이 있다. 그러나 요약문과 목차 구성을 읽어보면 대부분 그녀의 글을 요약 및 정리하는데서 그친다. 예를 들어 이진현의 『합당한 다원주의와 경합적 다원주의』, 『샹탈 무페의 탈근대성과 급진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요약 및 정리를 넘어 그녀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문으로 유용민의 『아고니즘의 분열 그리고 역설』, 지주형의 『사회운동 전략으로서의 포퓰리즘?』, 한상원의 2020년에 발간된 두 글이 있다. 동일한 시기에 발간된 한상원의 두 글 중 하나는 『경합들』을 요약 및 정리하며 두 세줄 가량으로 한계를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가 본격적인 비판을 제기하는 논문(『포퓰리즘, 데모스, 급진민주주의』)으로 보인다. 아직 읽지 않았지만 지주형과 한상원의 글 모두 2020년 참여연대 쪽에서 나온 것인 것을 보면 일련의 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참여연대의 <시민과 세계>가 6월에 발간하니, 그에 맞춰서 하나 투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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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가 현대 사회철학 및 정치철학에서 니체를 어떻게 계승하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해서 그렇겠습니다만, 민주주의의 기제를 니체식 '아곤'으로 파악(혹은 전유)하려는 시도는 아주 흥미롭네요. 당연히 현 논의와는 무관합니다만, 니체 본인은 (특히나 후기로 올 수록) 이런 응용 시도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을지도 묘하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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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빼미에서 활발하게 하다보니 어느정도 과대대표되는 감도 있지만, 사실 니체를 직접적으로 현대 정치사회철학 논의에 끌어들이는 시도는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루는 학자도 손발 다쓰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없습니다. 대부분 푸코를 위시한 프랑스 철학자를 경유해서 사유될 뿐이죠.
니체 원전을 읽어보면 꽤나 자뻑이 심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후대에는 나를 가지고 논문을 써대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것이다라는 언급) 그래서 본인의 사유를 갖고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다루는 것을 보면 기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통념과는 달리 니체가 민주주의를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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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전해 들은 얘기입니다만, 기오 브란데스가 저명한 독자가 자기 철학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걸 알게 되고 니체가 아주 즐거워했다는 얘기가 생각나네요!

더불어 말씀해주신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이런 논문을 찾아서 대략 훑어봤습니다.

찾아보니 유럽 내에서도 20세기 말 무렵에 니체와 민주주의를 화해시키려는 시도에 대한 논쟁이 이뤄졌었나보네요. 위르겐 하버마스, 뤽 페리, 알랭 르노 같은 이름이 호명되는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My take has been that Nietzsche indeed is anti-egalitarian but that egalitarianism may not be the sine qua non of democratic politics, and that many elements of democratic practice and performance are more Nietzschean than he suspected (or we have suspected).

같은 부분이 있네요. 물론 이런 해석이 온당할지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반평등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명칭의 발상이 어떻게 개진될지는 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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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인용하신 하탑도 그 "손발 다쓰면 꼽을 수 있는 학자" 중 한명입니다. 인용하신 논문은 읽어 보지 않았는데, 제가 예전에 쪽글 형식으로 메모해둔 하탑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탑은 니체를 민주적 정치에 적용시키는 것이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아펠의 해석에 따르면 니체의 엘리티즘은 자기 창조만을 위한 a-political한 것이므로, 니체를 민주적 이상과 연결하는 것은 잘못된 독해이고 그는 분명히 anti-민주적이다. 하탑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스스로도 니체가 민주옹호자라고 주장하려 하지 않는지만, 다만 전통적 정치적 틀에서 아닌 것이지, 그의 사유의 정수는 민주주의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니체가 진짜로 anti-평등주의자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는 ① 평등주의가 민주 정치의 필수 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② 민주적 실천과 행위의 많은 요소가 생각보다 니체적이라는 점을 말하려 한다.
하탑은 '정치 생활에서 급진적 아곤이 보편적 참정권, 평등 존중, 인권과 같은 중요한 민주적 진리들을 망가뜨리지 않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아펠의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다. 그는 아펠이 아곤이 '민주주의에 관련된 개념들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니체의 계보학적 비판으로부터의 민주주의에 관한 개념들이 정녕 생존할 수 없는지에 관한 숙고 없이', 전통적으로 민주주의와 관련된 개념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한다.
하탑은 ① 니체가 계몽주의와 모더니티의 어두운 측면을 잘 비판했다는 점과 ② 그것들의 중심 개념인 평등주의가 역사적으로 타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에 주목한다. 즉, 니체의 계보학은 그러한 타자 배제적 구조의 힘이 실제 역사의 평등주의 운동의 연료임을 폭로한다.
이어서, 하탑은 니체적 사유인 평등의 아곤적 해체(agonistic deconstruction of equality)가 배제 없이 모든 경쟁자들을 경연에 초대함으로써, 배타성 없이 정치적으로 모두를 수용하고 아우른다는 점에서 민주적 이상에 걸맞다고 주장한다.
하탑은 탁월함(Excellence)이 실체적이고 본질적으로 우월한 것이 아니라, 맥락적이고 수행적인 의미에서 이해될 경우 민주주의와 양립가능하다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특정 상황과 관련하여 어떤 속성에서 불평등한 경우에 사람들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정당하다. 즉, 상황에 걸맞는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한, 정치적·사회적 삶 속 특정한 성과에 대한 칭찬, 지위, 특권을 보장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열려있고 탁월성에 관한 고정된 양상이 없을 경우, 민주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에 맞는 적절한 우열 판단의 분배 속에서 귀족적(anti-평등)일 수 있다.
이런식으로 정치를 구상할 경우, 니체가 평등주의의 비열한 특징으로 지목한 탁월함에 대한 원한 감정 비판에서도 피할 수 있고, 특정인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니체적이라 할 수 있는 계층적 사유를 전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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