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신자유주의, 신권위주의의 관계 - 무페 2022 中

샹탈 무페는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1장에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이한 국면을 분석하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무페의 이러한 주장은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이 많은 나라의 공적 서비스를 파괴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팬데믹이 닥쳐와 그 국가들은 아무런 대책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 위기의 심화" 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종말"을 주장하는 진보 진영의 테제와 결을 달리한다.

그녀에 따르면 "팬데믹이 안보와 보호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과 관련된 정동"인 "취약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기술 해결지상주의'를 바탕으로 QR코드 등의 디지털 기술을 안보와 보호를 위한 최상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디지털화된 사회적 통제라는 흐름을 팬데믹이 강화했고, 이를 매개로한 "기술-권위주의 신자유주의적 판본"은 안보와 보호라는 명목으로 모든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난다. 이렇게 탈정치화된 것은 대중 주권을 침식하기에 민주주의 세력에게 심각한 위기를 제공한다.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우리는 신자유주의자들이 기후 비상사태를 기회로 하여 이득을 얻고 있다는 점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립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혹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등 이전 저작에서 드러낸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여 소개하지만, 이미 『경합들』 읽을 때 요약한거라서 이번에는 안한다.


번역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시기를 고려해서 빨리 번역해낸다고 급했던거 같다. 22페이지 번역이 대표적인 예이다.

  1. 이전작 『경합들』을 『대적자들』이라고 옮겼는데, 이는 영문판의 제목인 『Agonistics』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왜 출간 저작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 부르는가? (p. 22)
  2. 인물 정보도 잘못됐다. 안토니오 그람시를 Antonio Gramsc라고 옮겼는데, Gramsci가 맞다. 원전에는 제대로 써져 있다. (ibid.)
  3. 기계적인 번역투가 계속 반복된다. "이것은 노동 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진전을 자본가 세력이 받아드려야만 했었던 기간 이후 자본가 세력의 영토회복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것"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영문판을 참고해보면 앞문장의 "신자유주의 공세(offensive)"를 지시함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안지켜지고 있다. "받아드려야만"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이다. 사실 애초에 문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내 생각엔 "신자유주의의 공세라는 것은 노동계급에 의해 성취된 사회적이고 민주적 진전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된 시기 이후에 자본가 세력이 행한 영토회복을 의미한다."라고 옮기는게 더 낫다. (ibid.)
  4. "이렇게 성공했지만 뭔가 아쉬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에서 갑자기 "상황"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영문판을 참고해보면 "this lack of success"라고 적혀있고, 이는 전 문장에서 언급된 "신자유주의의 공세가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고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던 반면, 글로벌 자본 축적을 재활성화하는데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다"와 관계된다. 즉, 저자가 말하려는 바는 신자유주의 공세의 부족한 성공이다. 따라서 굳이 상황이라는 새 표현을 넣지 않고, 영문판의 것을 그대로 옮겨 "이러한 부족한 성공"이라고 하면된다. (ibid.)

​출처: 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pp.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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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페에 대해서는 거의 읽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아감벤이나 지젝 같은 급진정치철학자들을 보면 종종 너무 대책 없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팬데믹이 잘 보여준 것처럼, "디지털화된 사회적 통제"가 실제로 코로나 유행을 막는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으니까요. 단순히 '통제'라는 이유만으로 팬데믹 당시 정부 기관들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그 '통제'가 가져다 준 효용이 사회적으로 엄청났다고 생각해요. (가령, 유럽과 한국의 여러 가지 문화 차이가 있겠지만, 그 통제의 혜택을 꽤나 많이 누렸던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마스크 착용을 '기술적-의료적 폭정(techno-medical despotism)'이라고 주장했던 아감벤의 이야기에 공감할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통제'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저에게는 소위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버리는 오류'라고 생각돼요.

제가 요약한 1장에서처럼 무페는 "(팬데믹이) 신자유주의 공고화의 도래를 알릴 수도 있지만", "더욱 민주적인 사회를 구성해 나가도록 할 수도 있었다"고 말해요. (p.66) 정확히 말하자면 안보와 보호 담론이 신자유주의자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했지만, 좌파 세력도 그것을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해요. 그래서 제가 보기엔, 아감벤이나 지젝의 최근 저작은 보지 않아 정확히 모르겠지만, 무페는 아이까지 버린것 같지는 않아요.

여담으로 무페는 "팬데믹을 인구 통제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는 아감벤과 그의 동료들의 주장을 지지하길 결코 원하지 않는다"면서 아감벤이 (부분적으로라도) 헛소리를 한다고 돌려까내요.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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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더 나빠지기 전에 빨리 출간해내야 한다는 마음에 "급하게 출간했다"고 번역 비판 부분에서 적은 것처럼, 저도 지금 좌파 지식인들이 급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언제는 좌파 정치학자나 철학자들이 안급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지만, 이번 저작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워낙 무페가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하구요.

예를 들어 무페는 자신이 지속적으로 예견했던 우익 포퓰리즘의 발흥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들로 인해 탈정치가 가속화된다고 경고했다는 점을 언급해요. 동시에 몇몇 유럽국가들이 자신이 내세운 "좌파포퓰리즘" 전략을 따랐을 때 비교적 좋은 결과를 얻은 반면, 중간에 그것을 버린 탓에 실패했다고 말해요. (포데모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영국 노동당 등)

이런 경험탓에 아마 속이 더 타들어가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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