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에 따르면 후기 푸코는 자아를 '자기로의 생성변화(자기 되기)'를 통해 구조주의적 권력 이론의 아포리아 —권력에 대한 저항의 사유 불가능성— 을 극복한다. 이는 타자로의 생성변화(타자 되기)를 통해 그 극복을 꿈꿨던 들뢰즈-가타리와 대조된다. 이 '자기 되기' 전략은 '실존의 미학화'라고도 불린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해지는 미적 실존의 주체 개념은 이전의 주체 개념과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그런 주체화는 어떻게 가능하고, 그로부터 왜 권력에 대한 저항이 가능한지 알아보아야 한다.
푸코가 『DP』에서 강조한 점은 "규율 권력은 신체에 권력을 투여함으로써 실현된다"는 것이다. 즉, 규율권력은 개개인의 신체를 감시, 관리, 훈육하고, 자신의 신체를 자신이 통제하는 반성적이고 규제적인 자아 —경험적-초월론적 이중체— 를 만들어냄으로써 실현된다. 그리고 <초기 푸코>에서 살펴봤듯이 이러한 전략을 통해서는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기에, 그는 일종의 전회를 한다. 따라서 『DP』를 비롯한 초기작에서 '타자'로서 규율권력에 의해 수동적으로 규정된 복종화된 주체와 다른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런 주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구축하는가?
푸코는 그러한 주체를 '윤리적 주체'라고, 주체 구축을 '윤리적 주체화'라고 일컫는다. 푸코는 도덕과 윤리를 구분하여 사용한다. 전자는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순응이나 순응의 강제"를 함축하며 '도덕성', '법규'이 해당한다. 이러한 도덕은 '일반성-특수성'이라는 축에 속해있다. 반면 후자는 '일반성-특수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성에 관련된다. 도덕의 측면에서 개체는 특수성인데, 그것은 규율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규범을 내면화한 개체일 뿐이다. 반면 특이성으로서의 주체는 "일반성으로 환원 불가능한, 다른 나로는 대체 불가능한 '나'"를 의미한다. 즉, 특이성으로서의 주체에서 핵심은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이고, 그러한 관계 구축을 통해 만들어진 환원불가능한 나로부터 권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푸코는 윤리적 주체 구축을 위해서는 '반성적 시선'과 '타자의 개입'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때 반성적 시선이란 "주체를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규제적 시선, 자기 감시와 자기징벌의 체계를 확립하고 규율을 내면화하는 규제적 반성"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그것은 "주체의 존재 양태를 변용시키는 시선"으로, "자기의 행위를 '점검'하고, 존재를 이성적·단독적 주체로 변모시키는 것", "실패를 회상하고 성찰하는 확인과정을 통해 현명한 처신을 확보해주는 이성적 각오를 강화"해주는 시선이다. 즉, 이러한 반성적 시선으로 인해 주체는 복종화된 양태를 변용하게 되고, 이런 주체화에 의해 권력에 의한 탈복종화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를 통치하는 기술(자기 통치의 기술)은 이러한 기술을 이미 알고 있는 타자(스승)을 통해서 가능하다. 즉,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구축은 '타자'에 대한 자기의 관계"로 인해 가능하다. 곧, 윤리적 주체로 자신을 구성한 자와의 관계를 통해 주체의 존재를 변양시키는 효과와 기능을 지닌 앎이 발생하고, 그를 통해 자기의 특이성을 행사할 수 있다. 바꿔말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에의 배려를 통해 주체화, 나아가 권력 관계 역전의 가능성이 열린다.
저자는 이러한 푸코의 작업과 칸트의 작업을 또 한번 비교한다. 칸트의 경우,"가능적 경험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이성의 사용을 순수이성의 월권행위라며 금지"했다는 의미에서 한계의 위반을 금지하고 인식의 내적 조건을 규정한다. 반면 니체에 의존하는 푸코의 경우, "우리에게 보편적,필연적,의무적으로 주어진 것 속에서 우리를 역사적(외적)으로 규정하는 우발적인 것, 자의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따져봄으로써, 한계를 위반하려 한다. 달리 말해, 푸코적 주체는 역사적 우발성에 의해 규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초월론적인 것의 규율성에 구성됐지만, 또 초월론적 시선인 반성성에 의해 초월론적 심급의 규율성을 비판할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푸코적 주체는 "초월론적 체계를 내재성(특이성의 장)과 내면화된 권력이 공존하는 혼종"이라고 재정의 가능하며, "권력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변경된 주체의 역사적-반성적 비판을 통해 주체는 자기로의 생성변화를 끊임 없이 실현할 수 있고, 현재의 권력관계를 끊임없이 비판할 수 있다.
<초기 푸코>부분의 서술은 배운 것도 많고 깔끔했다고 생각하지만, <후기 푸코>부분은 별로다. 읽는 내내 느낀 불만족 때문에 사실 원문을 잘 요약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기에 해당 부분은 다음의 문제가 있다.
- 핵심 주장을 서술하는데 있어 초반 파트 대부분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초반 파트에서 핵심을 자리 잡고 있는 '신체'와 '쾌락'에 관한 설명이 요약문에 없다.
- 그 설명이 중심 내용을 서술하는데 도움되지 않더라도, 정리 후에 쓸모 없는 부분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저자가 푸코에게 있어 신체와 쾌락이 중심 문제가 되는 이유를 푸코의 저작으로 설명하지 않고, 들뢰즈의 책에서 나온 들뢰즈의 신체 이해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에 다 뺐다. 푸코가 들뢰즈의 그러한 신체 이해를 그대로 가져온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들뢰즈의 신체 이해를 푸코의 신체 이해로 둔갑시켜 설명하는가? 물론 저자도 이러한 비판을 예상한듯 <아마 푸코는 들뢰즈처럼 요래요래 생각했을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하기는 한다.
- 저자는 푸코의 윤리적 주체 형성 전략을 '실존의 미학화'라고 소개하면서도, 그것이 왜 실존의 미학화인지, 주체의 윤리적 실존 양태가 가 미적 실존으로도 이해되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즉, 푸코적 주체의 수식어인 '윤리적'과 '미적'이 왜 동치인지, 교환가능한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후기 푸코에서 대두되는 문제인 윤리적 실존 양태(실존의 미학)에 집중해서 보기에는 같은 옮긴이가 옮긴 다케다 히로나리의 『푸코의 미학』이 더 좋다고 본다. 최근 번역됐고 호평받는 프레드릭 그로의 『미셸 푸코』는 아직 사놓고 못읽어 봤지만, 히로나리의 책이 여태 본 푸코 개론서 중에 가장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