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문제들: 위르겐 하버마스

58. 하버마스의 소통철학을 설명하시오.

하버마스는 근대적 이성의 다양한 차원을 포괄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의사소통 행위(kommunikatives Handeln)’ 개념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의 행위를 비사회적 행위와 사회적 행위로 구분하여 전자에는 ‘도구적 행위’를 귀속시키고, 후자에는 ‘전략적 행위’와 ‘의사소통 행위’를 귀속시킨다. 즉, 우리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물이나 타자를 수단화하는 도구적 행위나 전략적 행위 이외에도 상호 이해를 성취하기 위해 주장과 비판을 제기하는 의사소통 행위에 역시 참여하고 있다. 근대적 이성에는 도구적 이성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의사소통 이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바로 하버마스가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사실이다.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베버로부터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에 이르는 철학자들이 근대적 이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하였다는 점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된다. 가령,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근대를 도구적 이성이 온 세계를 물화(物化, Verdinglichung)한 시대로 묘사하였다. 그들은 근대적 이성을 도구적 이성과 동일시한 나머지, 근대화를 단순히 인간의 자연 지배, 타자 지배, 자기 지배의 과정이라고 부정적으로만 평가하였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근대에 일어난 자유의 확대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도구적 이성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합리성이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 사회, 인격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다차원적 합리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도구적 이성을 넘어서는 더욱 포괄적인 이성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소통 이성은 도구적 이성과는 구별되는 근대적 이성의 또 다른 면모이다. 의사소통 행위는, 도구적 행위나 전략적 행위와는 달리, 개인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과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 이해에 근거하여 공동의 행위를 조정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소통 행위가 지향하는 과제이다. 이때, 우리가 의사소통 행위에서 제시하는 주장과 비판은 ‘진리(Wahrheit)’, ‘규범적 올바름(Richtigkeit)’, ‘진실성(Wahrhaftigkeit)’이라는 세 가지 타당성 요구에 따라 평가받는다. 어떠한 발화가 정당화되고 어떠한 발화가 논박되는지는, 자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보편적 기준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결정된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생활세계’는 의사소통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점차 합리적으로 변모한다. 종교적-형이상학적 세계관의 탈주술화나 다양한 제도적 영역들의 분화는 바로 의사소통적 이성이 근대에 이르러 수행한 합리화의 결과이다.

근대적 이성은 이렇듯 생활세계의 합리화를 일으키는 의사소통 이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리는 도구적 이성을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의사소통 이성까지 거부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근대의 문제는 의사소통 이성이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즉, 생활세계의 합리화는 사회의 물질적 차원을 재생하기 위해 고안된 (국가, 시장, 법 등) ‘체계’의 발전 역시 수반하였다. 그러나 고도로 복잡성을 지니게 된 체계는 근대에 이르러 생활세계로부터 분화되어 자신만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자립적인 영역이 되고 말았다. 이때, 생활세계의 의사소통 이성이 체계의 논리를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나머지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의 의사소통 이성을 지배하게 된 상태가 ‘생활세계 식민화(Kolonialisierung der Lebenswelt)’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근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의사소통 이성을 다시 복권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활세계의 의사소통 이성이 다시 체계의 논리를 통제할 수 있도록 토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작업이 우리 완수해야 할 근대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김원식, 「하버마스: 의사소통 행위 이론과 생활세계 식민화 테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테제들』,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 엮음, 사월의책, 2012, 2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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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빼미위키군요. 양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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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저는 초보이지만 철학을 갓 입문했을때 한 철학자가 가진 문제의식을 알지 못한 채로 원전을 독해하다가 그 철학자가 무슨 말을 하고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youn님이 정리하는 여러 철학자의 문제의식은 저 같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Ps 물론 그 철학자가 니체여서 더 그런걸지도 모르겠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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