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문제들: 미셸 푸코

57. 푸코가 주장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밝히고(원전인용필수) 비판적으로 평가하시오.

푸코는 권력과 분리된 순수한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푸코에 따르면, 지식은 권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권력은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통해 유지된다.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 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 관계를 상정하거나 구성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감시와 처벌』, 58-59)라는 구절은 지식과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한 푸코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별히, 푸코는 정신의학형법학에 대한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자 한다.

(1) 푸코의 주저인 『광기의 역사』는 광기에 대한 정신의학의 연구와 광인에 대한 권력의 통치수단이 어떻게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즉, 푸코에 따르면, 광인에 대한 감금은 17세기부터 이루어졌다. 당대의 부르주아적 윤리관은 구걸과 빈둥거림을 죄악시하였고, 데카르트적 철학은 비이성을 이성의 영역에서 배제하고자 하였다. 광인은 이러한 윤리관과 이성관에 따라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이들로 분류되어 실업자, 빈민, 경범죄자와 함께 구빈원에 수용되었다. 이후에 18세기 말과 19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광인은 정신의학이 치료해야 할 환자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하층민들 중 생산노동자가 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전 신분에서 해방되면서 광인을 그들과는 별도의 대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광인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기관으로서 정신병원이 설립되었다. 광인에 대한 정신의학의 담론이란 특정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만들어져 특정한 시대적 질서에 봉사하고 있을 뿐, 결코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2) 푸코의 또 다른 주저인 『감시와 처벌』은 형법학과 권력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푸코는 이 책에서 권력이 교수대뿐만 아니라 신상명세서를 사용하여서도 개인을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가령,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이르러 유럽에서는 기존의 잔인한 신체형이 줄어든 대신 감금형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권력의 처벌방식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이 단순히 사회가 인도주의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명한 판옵티콘의 사례에서 잘 확인되는 것처럼) 감옥의 등장이란 개인이 보이는 권력의 지배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징후이다. 즉, 과거의 군주사회에서는 왕이 ‘법’을 통해 개인을 거시적 영역에서 지배한 반면, 현대의 규율사회에서는 감옥을 비롯하여 공장, 학교, 군대, 병원 등 사회적 통치기구가 ‘규범’을 통해 개인을 미시적 영역에서 지배하고 있다. 이때, 다양한 미시권력들은 유기체의 영혼 자체에 자신들의 규범이 내면화되도록 개인을 훈육하고자 한다. 따라서 미시권력들은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인문과학과 공고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심리학, 의학,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과학문은 각각의 미시권력이 개인을 더 세밀하게 분해하고 분류할 수 있도록 장치를 제공하고, 미시권력은 자신의 영역에서 잘 작동하는 지식에 대해 전문성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과 권력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는 푸코의 분석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 역시 문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설에 빠진다. 푸코가 제시한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 역시 또 하나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푸코 자신의 분석이 과연 푸코 자신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질문해 보아야 한다. 푸코가 여기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조차 권력과 은밀하게 결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선택지이다. 이러한 경우 푸코는 자신이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객관적 진실도 말하고 있지 않다고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만큼은 권력과 결탁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선택지이다. 이러한 경우 푸코는 자신의 분석이 예외적 지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해야 한다. 어느 쪽 선택지를 취하든지 푸코가 역설에서 쉽게 빠져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푸코는 자기 자신이 제시한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이 권력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참고

푸코, 미셸, 『감시와 처벌』, 오생근 옮김, 나남, 2017.
오생근, 「지식과 권력의 해부학」, 『미셸 푸코와 현대성』, 나남, 2013, 8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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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이 조금 걸리는데요. 이 부분의 선생님 생각/논조를 정리해보면 <푸코의 분석 또한 지식이기에 권력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비판받을 수 있다(혹은 역설/문제이다)> 라고 보여요. 그런데 <푸코의 분석 또한 지식이기에 권력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라는 사실이 곧 역설이나 문제로까지 만들지는 않는것같습니나. 왜냐하면 이것이 문제시되려면 <지식이 권력과 결부된 경우 문제이다>라는 전제가 있어야하는데, 푸코는 별로 문제시할것같지 않기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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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sophisten님이 이 분야의 전공이시니, 코멘트를 해주시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가지 층위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1) 푸코의 분석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지식과 권력이 서로 결탁하고 있다는 너의 주장의 근거가 뭐냐?”라고 푸코에게 물었을 때, 푸코가 적절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a) ”나의 분석도 특정한 권력에 근거하여 성립한 주관적 기술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미잖아요. 반대로, (b) ”나의 분석은 권력에서 예외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독단주의가 되어버리고요. 어느 쪽으로든 푸코의 분석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찾을 수가 없는 거죠.

(2) 푸코는 명시적로나 암시적으로나 권력에 대한 가치 판단에 개입하고 있다.

저는 푸코가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분석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해석해요. 가령, 제가 보기에, 『광기의 역사』는, 광인을 인도주의적으로 교화하려는 피넬과 튜크 같은 사람들의 치료법이 어떤 식으로 당대의 부르주아적 질서에 봉사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면서, 인도주의적 치료법의 위선을 고발하는 내용까지 담고자 하는 것 같아요. 또 『감시와 처벌』은 미시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개인에 대한 일종의 ‘억압’이라고 보는 것 같고요. 푸코는 근대 이후의 권력이 지배와 예속화의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기술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한 거죠. 그래서 더욱 푸코의 분석이 권력과 결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푸코 자신에게 있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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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 지점이 핵심인듯해요. 윤님 생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데,

  1. “특정한 권력에 근거한 기술”은 “주관적 기술”이다.
  2. ”주관적 기술“은 곧 ”정당화불가능한 기술“이다.
  3. 푸코 자신의 기술도 특정 권력에 근거한 기술이다.
    결론. 그의 기술은 정당화불가능한 기술이다.

아마도 푸코는 1번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아요. 푸코는 보편타당한 객관적 기술이란 존재를 거부하고, 모든 기술은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나아가, 그렇기에 주관적 진술이라는 것만으로 그것을 정당화불가능한 기술과 같은것으로 여기지도 않을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푸코 자신 또한 객관적 진술을 위해 탐구하거나 진실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수행하지 않고, 이러한 점을 스스로도 인정하는 듯해요. 아마 근본적으로 철학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푸코는 윤님의 비판이 적절한 비판이 아니라고 반박할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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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한 체계가 모순을 함축하기만 하면, 그 체계 전체가 붕괴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통용되는 생각입니다. 가령, 'P1', 'P2', 'P3' … 'Pn'이라는 명제로 이루어진 체계가 있다고 하고, 그 체계가 'C&-C'이라는 모순을 함축한다고 하면,

  1. (P1&P2&P3& … &Pn) → (C&-C) |전제
  2. -(P1&P2&P3& … &Pn) | 1. 귀류법

이라는 방식으로 명제들의 연언으로 이루어진 체계 전체가 부정되죠. 물론, 각각의 명제 중 구체적으로 무엇을 부정해야 하는지는

-P1∨-P2∨-P3∨ … ∨-Pn

과 같은 형태로 열린 문제로 남겠지만요.

다만, 이건 러셀의 역설처럼 자기 지시가 모순적인 결과를 낳는 상황에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예요. 저는 푸코가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정당화하지 않고 있다고 봐요. "지식이란 주관적이다." 혹은 "지식이란 상대적이다." 같은 주장도 그 주장이 예외적일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모순에 빠지지는 않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모든 지식은 주관적(혹은 상대적)이다. 그러나 방금 내가 말한 지식은 예외이다."라고 푸코가 주장할 수 있느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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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수는 자기 자신의 독립 변수가 될 수 없다" 는 러셀의 역설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권력"에 대한 논변이 뭔가 정당화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논변의 정당성 문제는 철학이나 인문학이 갖는 진리주장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의 경우 통계학을 동원해서 상관관계를 입증하면 잠정적으로 참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권력과 지식의 관계와 같은 경우는 어찌 보면 사회과학의 영역 일 수도 있는데 입증을 논변(다른 말로 하면 역사적 사건과 사례에 기반한 말발)을 활용하다 보니 위와 같은 챌린지가 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변도 세뇌된 집단의 경우는 진리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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