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의 문제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45. 화이트헤드는 생성(becoming)과 변화(change)를 어떻게, 그리고 왜 구별하는가? (원전인용 필수)

화이트헤드가 ‘생성’과 ‘변화’라는 개념을 구별하는 이유는 변화의 불변적 담지자를 상정한 채로 변화를 설명하려는 전통적 실체철학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그가 두 개념을 구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생성의 획기성 이론(epochal theory of becoming)’에서 발견된다. 즉, 현실적 존재는 마치 원자적 방울이나 맥박과도 같은 하나의 ‘획기(epoch)’이다. 우리는 현실적 존재가 ‘생성’하거나 ‘소멸’한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변화’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변화는 현실적 존재들의 결합체인 ‘사회(society)’에서 일어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실체철학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변화하지 않는 실체를 상정하였다. 가령, 여름에 초록색이었던 나뭇잎이 가을에 붉은색으로 변화하는 사건을 생각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뭇잎의 동일성과 나뭇잎 색깔의 변화를 양립시키기 위해 실체와 속성의 범주를 도입하였다. 즉, 변화하는 것은 ‘빨강임’이나 ‘초록임’과 같은 속성이다. 그 속성들 아래에는 변하지 않는 ‘나뭇잎’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이때, 실체와 속성의 범주 사이의 관계는 “자기동일적 실체 S는 물리적 시점 t1에서 성질 Q1을 갖는다.”와 “자기동일적 실체 S는 물리적 시점 t2에서 성질 Q2를 갖는다.”처럼 주어와 술어의 논리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실체는, 그 자체로는 변화하지도 않고, 아무런 속성도 지니지 않으면서, 문장에서 주어의 논리적 기능을 담지하는 무규정적 동일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전통적 실체철학이 진정한 존재(res vera)를 실체-속성의 범주와 주어-술어 논리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고 평가한다. 그는 실체철학이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설명하려는 대신에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를 범한다고 본다. 즉, 전통적 실체철학에서 상정된 ‘실체’ 개념은 “사실상 고도의 추상적인 지평에서 정교하게 조립된 논리적 구성물”(SMW, 53)이다. 철학은 이러한 추상적 개념이 의미하고 있는 구체적 존재에 대해 충족적 기술을 제공하고자 해야 한다. ‘실체’ 개념을 무비판적으로 상정한 채 존재를 설명하려는 입장은 자신의 과제를 망각한 채 추상성에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아무런 실체를 상정하지 않고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의 변화’를 통해 가리켜 보인 사태를 해명하고자 한다. 그는 현실적 존재에게 일어나는 ‘생성’과 현실적 존재들의 결합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구별한다. 우선, “현실적 존재의 있음은 그 생성에 의해 구성된다.”(PR, 23) 현실적 존재는 마치 원자적 방울이나 박동처럼 일순간에 생성(becoming)되고 다른 현실적 존재로 이행(transition)하는 일종의 ‘획기’이다. 이때, 생성과 소멸은 물리적 시간축을 따라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애초에 시공 연속체(space-time continuum)조차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현실화되고 있는 ‘우리의 우주시대(우주획기, cosmic epoch)’이다. 따라서 물리적 시간축을 전제하는 개념인 ‘변화’를 현실적 존재에 적용할 수는 없다. “현실적 존재는 소멸할 뿐, 변화하지 않는다.”(PR, 35) 오히려 ‘변화’란 현실적 존재들이 결합하여 한시적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여겨져야 한다. 즉, 진정한 존재는 생성하고 소멸할 뿐 변화하지는 않는다. 현실적 존재들이 ‘획기’라는 형태로 생성되고 난 뒤에야 비로소 현실적 존재들이 결합한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Corrected Edition, D. R. Griffin and D. W. Sherburne (eds.), New York: The Free Press, 1978. [PR]
A. 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New York: The New American Library, 1948. [SMW]
문창옥,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와 화이트헤드의 획기성 이론」,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통나무, 2002, 12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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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의 철학적 특성은 기존의 비시간적인 존재론에 대해서 니체, 후설, 하이데거 등이 강하게 비판을 하면서 유명세를 탔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20세기 물리학과 생물학의 발전을 반영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마땅한 계승자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소수의 학자들이 연구하는 컬트 철학이 되어 버린 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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