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급진적인 유물론: 지젝의 인터뷰 발췌

벤 우더드: 사변적 실재론은 해체와 현상학의 불충분성(inadequacies)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물론'이라는 용어 자체의 증가하는 느슨한 사용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다. 유물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정식화는 어떻게 은밀한 관념론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가? 당신은 실증주의적 한계를 넘어선 실재론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보는가?

슬라보예 지젝: 오늘날 누가 유물론자인가? 많은 경향들이 유물론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유물론(다윈주의, 뇌과학), '담론적' 유물론(유물론적 담론 실천의 결과로서의 이데올로기), 알랭 바디우가 '민주적 유물론'이라고 부른 것(자발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쾌락주의) […] 나는 담론적 유물론과 과학적 유물론이, 그들의 바로 그 적대 관계에서, 똑같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즉, 하나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우연적이고 담론적인 형성이라는) 극단적 문화화를 대표하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문화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자연적익고 생물학적인 진화의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극단적 자연화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 유물론은 물질의 불활성적(inert) 운명에 대한 주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유물론은, 반대로, 실재의 궁극적 공백(the ultimate Void of reality)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근원적 다수성에 대한 그것의 중심적 테제의 결과는 '실체적 실재(substantial reality)'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다수성의 유일한 '실체'란 공백이라는 사실이다.

[…] 유물론의 의미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화(sexuation)에 대한 라캉의 공식을 적용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물질이다(everything is matter)'라는 주장과 '물질이 아닌 아무것도 없다(there is nothing which is not matter)'라는 주장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진정으로 급진적인 유물론이란 정의상 비환원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물질이다'라고 주장하기는 커녕, 진정으로 급진적인 유물론은 '비물질적' 현상에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비존재를 부여한다.

[…] 이러한 추론의 노선—물리적 총체성에 대한 과잉, 잉여로서의 의식—은 오도적인데, 왜냐하면 무의미한 과장을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재의 총체(Whole of reality)를 상상할 때, 의식(과 주체성)을 위한 어떠한 자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주체성은 착각이거나, 실재가 (인식론적으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비-전체(not-All)이다.

그래서, 요약하자면: 유물론이 오늘날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투쟁은 유물론 내부에서, 바디우가 '민주적 유물론'이라고 부른 것과 … 사이에 존재한다. 나는 유일한 필연성으로서의 근본적 우연성에 대한 메이야수의 주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주장을 실재의 존재론적 불완전성으로 보충해야 한다. 여기서 충분히 '유물론자'가 아닌 것은 메이야수이다. 그는 가상의 신을 위한 자리가 다시 존재하는, 그리고 그 죽은 자의 소생이 존재하는 유물론을 제시하고 있다—이것이 우연성이 실재의 불완전성으로 보충되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Slavoj Žižek and Ben Woodard, "Interview", The Speculative Turn: Continental Materialism and Realism, Levi Bryant, Nick Srnicek and Graham Harman (eds.), Melbourne: re.press, 2011, 406-408 passim.)

지젝 센세…… 읽다가 지려버렸습니다. 모두가 '유물론'이라는 말을 가지고 헛소리를 하면서 서로 치켜세워주기 바쁠 때, 센세는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계시는군요. 세 줄 요약,

(1) '유물론'이라는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온갖 상이한 환원주의적 입장들이 서로 '유물론'이라고 주장한다.

(2) 만약 진정으로 급진적인 '유물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 유물론은 '실재의 궁극적 공백'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즉, 어떠한 종류의 환원주의도 거부한 채, 세계를 완벽하게 누비려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시도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는 입장이야말로 '진정으로 급진적인 유물론'이다.

(3) 메이야수는 (그리고 소위 '신유물론자'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은) '실재의 궁극적 공백'을 간과한 채 신의 자리에 '우연성'이나 '물질' 같은 다른 대체품을 두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세계를 '신'이라는 토대로부터 설명하려는 시도나 '물질'이라는 토대로부터 설명하려는 시도나 똑같은 형이상학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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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은 실재의 궁극적 공백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는 진짜 지젝느낌 나는 말이네요. 지젝한테 헤겔은 유물론자 그 이상이 아닌 이유도 헤겔이 부정과 void에 머무르는 것을 주체라고 말한데에 있던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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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존재론에 대해서 충분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아 이거 나랑 절대 안 맞겠다'는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번째 이유는 YOUN 선생님 말씀처럼, '신의 관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게 가장 대표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객체나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입장은 당혹스럽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객체를 그것이 맺는 관계에 따라서 인식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객체를 무매개적으로 이해하고,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이건 사변적 실재론이나 객체지향존재론이 응당히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객관적이고 고정된 실체에 대한 철학사적 비판을 축소하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물론 하먼이나 다른 신유물론자들의 입장은 그들의 다른 저술들을 읽어봐야 더 명료하게 보이겠지만, 하먼의 <비유물론>에서 드러난 객체지향존재론의 기본 입장들은 (적어도 저한테는) 굉장히 의문스러워요. 모든 것들이 과정과 지속 속에서 존재한다는 철학적 입장들이 '모든 것은 안정적인 상태에 있고, 변화는 드물게 일어난다'는 입장과 모순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더욱이, 이러한 입장이 객체나 고정적인 실체 개념으로 되돌아 갈 충분한 이유가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쓰고 나니 신유물론 같은 요즘의 조류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혐오 같긴 하네요. 물론 맞긴 하지만... 여하튼 지젝의 이러한 지적은 여전히 흥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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