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엘 데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에 대한 단상

(1) 야콥 타우베스가 『바울의 정치신학』이라는 책에서 아주 뼈 때리는 한 마디를 날린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마누엘 데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에 대한 제 평가를 잘 요약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저는 이 분야를 잘 모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유에 어떤 형이상학적 전제들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1

(2) 데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은 들뢰즈의 존재론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물론, 들뢰즈 저작에 대한 단순한 주석은 아니고, 들뢰즈의 존재론이 오늘날의 수학이나 과학의 사유와 어떠한 방식으로 관련될 수 있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연구를 담고 있죠. 데란다 본인의 말로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 나는 들뢰즈의 논증 스타일 또는 그의 언어와 독립적으로 들뢰즈의 생각의 원천을 재구성하려 하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들뢰즈의 말들words이 아니라 오로지 들뢰즈의 세계worlds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2

(3) 솔직히, 이 책은 신유물론(new materialism)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비판적 관점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네요. 그동안 ‘설마 이 입장이 이렇게나 나이브할까?’라고 보류했던 내용들에, 이 책이 쐐기를 박아주고 있어서요. 몇 가지만 간략히 언급하자면,

현상학-해석학 전통은 어떠한 형이상학에도 개입하지 않는다: 데란다는 책의 서문에서부터 현상학-해석학 전통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까지의 존재론을 ‘인간중심주의’, ‘본질주의’, ‘과정존재론’이라는 세 가지 매우 오도적인 유형으로 나누거든요. 그러면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학-해석학 전통의 철학을 ‘인간중심주의’로 아주 손쉽게 분류해버리고요. 해석학을 전공하는 저로서는 데란다의 논의에 태클을 걸어야 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판을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라는 용어부터가 (더 정확하게는,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용어부터가) 하이데거가 극렬하게 비판한 용어이고, 그래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조에서는 ‘주체의 죽음’, ‘인간의 죽음’, ‘저자의 죽음’이라는 경향이 대단히 뚜렷하게 나타나는데도 말이에요. 더욱이, 후설의 현상학은 관념론/실재론 같은 전통적 형이상학의 이분법 자체를 비판하는 사유인데도, 데란다가 현상학의 이러한 기본 요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학-해석학 전통을 관념론이나 인간중심주의의 한 분파 정도로 매도하는 것도 정말 답답하고요. (물론, 데란다의 책에는 ‘현상학’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중심주의’라는 그의 서술이 어떠한 입장을 겨냥하고 있는지는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실재론이 그 자체로 긍정적 함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데란다의 책에서는 ‘실재론’이 마치 그 자체로 옹호되어야 하는 철학적 구호인 것처럼 묘사된다는 점이네요. 제 입장에서는 데란다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네요. “아니, 칸트가 멍청이라서 초월적 관념론을 주장했을까요? 헤겔이 사악한 악마라서 객관적 관념론을 주장했을 것 같아요?” 실재론이든 관념론이든, 그 두 가지는 단순히 상이한 철학적 입장일 뿐입니다. 특정한 철학적 입장 자체가 긍정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죠. 우리가 종교가 아닌 철학을 하고 있는 이상, 모든 철학적 입장은 자신의 근거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잖아요. 실재론이라서 반드시 옹호되어야 하거나 관념론이라서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는 게 아닌 거죠. 그런데도 데란다는 실재론은 옹호되어야 하고 관념론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전제한 채, 들뢰즈가 ‘실재론’을 주장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네요.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이 반드시 들뢰즈의 형이상학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데란다는 본질주의에 근거한 전통적 형이상학이 비판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들뢰즈의 형이상학이 정당화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아쉽게도, 상황이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죠. 전통적 형이상학 A를 비판하는 것과 대안적 형이상학 B를 정당화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니까요. B 이외에도 C, D, E, F 등 수많은 대안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가령, (a) 현상학-해석학 전통도 들뢰즈처럼 본질주의를 거부하지만, 이 전통은 본질주의에 대한 거부가 또 다른 형이상학에 대한 개입으로 이어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지적합니다. 이 세계는 아무런 형이상학적 토대 없이도 잘 수행되고 있는 ‘놀이’라는 것이 바로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의 입장인 것이죠. 또한, 역설적인 것 같지만, (b) 본질주의에 대한 거부로부터 물리주의적 세계관과 신자유주의적 윤리관을 우리 시대를 위한 새로운 ‘형이상학’으로 받아들이는 길도 존재합니다. 20세기 후반의 소위 ‘프랑스 좌파 철학’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의 문화에 가장 잘 영합하는 사조라는 비판은 자주 제기되었기도 하고, 아사다 아키라는 실제로 『구조와 힘』이라는 저서에서 구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철학적 근친성을 날카롭게 지적하였기도 하죠. 더 나아가, 독특하게도, (c) 본질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전통적인 종교의 형이상학을 옹호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대표적인 인물들이 존 밀뱅크, 그레이엄 워드, 캐서린 픽스톡 같은 소위 ‘급진정통주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죠.

수학과 과학의 논의에서 형이상학적 함의를 끌어낼 수는 없다: 데란다가 이 책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 중 하나는, 들뢰즈의 존재론이 오늘날의 수학과 과학의 사유 방식에 잘 들어맞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그는 상이한 기하학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학의 다양체 이론, 배아의 발생 과정에 대한 오늘날 생물학의 관점, 비누 거품이 구형을 유지하고 소금 결정이 입방체 형태를 획득하는 원리에 대한 물리학적 해설 따위를 제시하죠. 이러한 논의들이 아무런 형이상학적 본질 없이 차이 자체로부터의 강도적 발생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는 들뢰즈의 존재론과 일치하는 점이 많다면서요. 문제는, “들뢰즈의 사유 방식과 오늘날 수학과 과학의 사유 방식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라는 사실에서 “들뢰즈의 사유 방식은 세계의 형이상학적 실재를 그려내고 있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엄청난 논리적 비약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식의 논증을 위해서는 들뢰즈와 데란다 본인들이 그렇게나 거부하는 이론과 실재 사이의 ‘표상(representation)’ 혹은 ‘대응(correspondence)’ 관계를 다시 암묵적으로 전제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이러한 논증의 과정에서 데란다가 수학과 과학의 논의들을 인용하는 방식도 상당히 나이브해 보입니다. 물론, 데란다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건축이나 프로그래밍 같은 이공계열의 분야에서 활동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말하는 지식들 자체를 저 같은 순수 문돌이가 부정할 입장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론’을 만드는 것은 수학자나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이론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것은 철학자이죠. 그리고 이 점에서, 데란다가 자신의 이공계적 지식으로부터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은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렇죠.

은유적으로 말해서, "위상-미분-사영-아핀-유클리드"라는 위계는 현실공간의 탄생을 위한 추상적인 시나리오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있고 물리학자들이 연구, 측정하는 계량공간은 마치 비계량-위상기하학적인 연속체가 분화되고 대칭 파괴적인 전이들의 계열을 따라 구조를 획득함으로써 태어나는 듯하다.3

한 마디로, 기하학 분과들 사이의 관계가 세계의 형이상학적 발생을 나타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데란다 자신은 이런 식의 주장이 일종의 ‘은유’라고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그가 이 주장을 단순히 ‘은유’라고 생각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수학이나 과학 이론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세계의 존재자들 사이의 인과적 관계와 뒤섞는 내용이 책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거든요. 저에게는 이러한 데란다의 주장들이 굉장히 무모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헤겔은 자신의 『논리의 학』이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에 영원한 본질 속에서 존재하는 신에 대한 해설”​4이라고 주장했다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욕을 처먹게(?) 되었는데, 데란다의 주장들은 거의 이러한 헤겔의 주장과 동급인 것 같습니다. 물론, 헤겔의 주장들은 대개 과장되고 격양된 표현법을 없애면 그래도 납득할 만한 것들로 만들 수야 있습니다. 그러나 데란다의 주장들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적어도, 수학과 과학에서 형이상학적 함의를 곧바로 끌어내는 기획은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1. 야콥 타우베스, 『바울의 정치신학』, 조효원 옮김, 그린비, 2012, 198쪽.

  2. 마누엘 데란다,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 이정우, 김영범 옮김, 그린비, 2009, 16-17쪽.​

  3. 마누엘 데란다,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 60-61쪽.

  4. G. W. F. Hegel, The Science of Logic, G. Di Giovanni (tran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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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혹시 Dan Zahavi의 "The end of what? Phenomenology vs. speculative realism"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려주실 수 있으시다면 흥미롭게 경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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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바람으로 이쪽에 통달한 누군가가 <“객체지향“이든 ”신유물론”이든 이쪽 친구들에 대한 개요>와 더불어 <이에 대한 기존 철학의 비판>과 <그에 맞받아치는 그들의 논리들>을 잘 정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현대 프랑스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분들이랑 대안 연구체 쪽 분들이 위 분야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솔직히 좁은 제 견문으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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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들 살펴보다가 찾았는데, 다음과 같은 책도 나왔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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