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의 정치와 사회운동(1) - 차이의 정치와 정의 中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의 「차이의 정치와 사회운동」 초반 파트 정리본이다. 이번 6장은 <해방을 파악하는 경쟁적 패러다임>, <차이의 정치를 통한 해방>, <차이의 의미 되찾기>, <정책 형성에서 차이 존중하기>, <이질적 공중과 집단 대표제>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에는 앞의 셋만 요약했고, 남은 부분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 한다. 총합 70페이지가 넘어가서 한 번에 정리하기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후 파트부터 구체적 정책 사안과 예시가 너무 많이 등장하기에 분리하여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 해방을 파악하는 두 패러다임 - 동화주의냐 차이철학이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해방을 "집단 차별을 넘어섬"으로 규정하는 동화의 이상(ideals of assimilation)을 비판하고, 집단 간 차이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규정하는 차이의 정치(politics of difference)를 옹호한다. 동화주의는 평등을 "모든 사람을 동일한 원칙에 따라 취급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에 반해 집단 특수성과 문화적 자긍심에 대한 운동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차이의 정치는 평등을 "모든 집단이 참여하는 것이자 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때때로 피억압 집단 혹은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별도의 조치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 동화를 통한 해방

구체적으로 동화를 통한 해방이란 "집단 간 차이를 없애서 집단에 기초한 차별을 철폐함"을 의미한다. 저자는 해방 패러다임 중에서 동화주의를 택할 좋은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와서스트롬의 주장을 소개한다. 그 이유는 다음의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동화주의는 자연적·필연적인 것이라 여겨진 집단에 기초한 사회적 구별의 자의성을 폭로한다.
  2. 동화주의는 모든 사람을 같은 원칙, 규칙, 기준에 따라 대우하길 요구하는 명백함을 갖추고 있기에, 집단에 관련된 어떤 구별짓기나 차별도 용납되지 않는다.
  3. 동화주의는 개인을 집단의 규범이나 기대에 제약되지 않게 하므로 개인들의 선택의 폭을 극대화한다.

  • 동화주의 이상의 두 형태

이어 저자는 동화주의의 이상이 순응적 이상과 변형적 이상으로 구분 가능하다고 말한다. 순응적 이상은 기성 제도들과 규범들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며, 이 규범들과 달라서 불이익을 받은 집단들은 이 규범에 순응하도록 기대된다. 이에 반해 변형적 이상은 기존 제도들과 규범들이 지배 집단의 이익과 관점을 표현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도 불이익을 주지도 않고 낙인을 찍지도 않는 중립적 규칙에 따라 제도와 관습을 변화시키는 것이 좋은 동화를 성취하는 방법이다.

  • 차이를 통한 동화주의 비판

저자는 집단 간 차이의 철폐라는 동화주의의 이상이 해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집단 간 차이가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거나 또는 그런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서 배태된 해방 담론을 "차이의 정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형식적 평등을 성취했음에도 차등적 특권의 흔적 및 잔재들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는 점, 동화주의를 끈질기게 확고히 한다면 그것들마저 사멸할 것이라는 동화주의의 이상에 의심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동화주의의 논리를 집단 간 차이를 없애거나 무시하는 동일화 작업으로 파악한다. 즉, 동화주의의 이상이 어떤 형태를 취하건 상관 없이, 그것은 집단 간 차이를 철폐의 대상·문제거리·불이익으로 파악하므로, 그것은 집단 간 차이가 긍정적이고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한다. 차이의 정치를 통한 해방론자들의 이러한 비판은 '동화주의의 이상이 세 가지 측면에서 억압을 가져온다'라는 주장에서 구체화된다.

  1. 동화주의는 배제된 집단들을 주류로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기존 혹은 특권 집단과는 상이한 경험·문화·사회화 역량을 가진 집단들에게서 그들 고유함을 박탈하는 불이익, 즉 몰차이성을 초래한다.
  2. 이렇게 개별 집단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주류로 편입시키려하는 몰차이성은 특권 집단들의 관점과 경험을 표현하는 규범들을 중립적·보편적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문화제국주의를 영속화한다.
  3. 특권 집단의 기준에서 일탈한 집단들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저평가하게 되고 이를 내면화하게 된다. 이를 말미암아 일탈 집단의 구성원은 자기 혐오와 이중의식을 겪게 되며, 주류 기준에 쉽게 부합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 차이의 정치와 사회운동

저자는 집단 간 차이의 긍정성을 주장하는 차이의 정치가 갖는 강점을 소개한다. 소개된 세 가지의 강점들은 '해방'과 '권한의 강화'라는 두 핵심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하 소개될 강점들은 <차이를 통한 동화주의 비판>과 저자의 <신사회운동 분석>의 결실이다. 분석에 따르면 신사회운동은 피억압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지배적 제도에 참여하는 전략으로 바뀌었으며, 스스로 조직하는 것과 집단의 긍정적인 문화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을 선택해왔다. 1)

  1. 차이의 정치는 지배문화가 경멸하라고 가르쳐 왔던 정체성을 되찾는 행위를 통해 피억압자들은 이중의식을 제거한다. 피억압 집단들도 긍정적 의미가 있는 사회적 삶에 관한 고유한 문화·경험·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 중 어떤 것들은 주류 사회의 것들보다 더 우월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의 문화와 관점이 거부되고 저평가 되는 것이 그 사람이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
  2. 차이의 정치는 지배문화를 상대화한다. 즉, 각 집단들의 고유성을 강조함으로써 지배문화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특수한 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하게끔 강제된다.
  3. 리버럴 휴머니즘의 개인주의와는 달리 집단 연대의 관념을 증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집단 간 차이를 무시하고 각각의 사람을 개인으로 다룬다. 이는 집단 특권과 집단 억압의 구조적 양식을 가려 놓고, 각 개인을 그의 개인적 노력과 성취에 따라서만 평가받게 한다. 이는 개인의 성취 외의 것들은 감추는 지배문화에 영합한다. 하지만 집단 간 차이를 긍정하는 차이의 정치는 자기 집단 구성원들과의 연대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개인적 노력뿐만 아니라 정치조직화를 가능하게 하고, 집단적 행위를 통한 근본적인 제도 변화를 꿈꿀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를 말미암아 차이의 정치는 "피억압 집단의 구성원들에게는 별도로 분리된 조직이 필요하다"는 집단 단결력 발휘의 정치의 자리를 마련한다. 2)

  • 차이의 딜레마 문제 검토

저자는 차이의 정치에 제기되는 문제를 검토하며, 그것이 동화주의에 입각하여 차이를 이해한 것이라고 재반박한다. 또한 차이의 정치에서 차이를 이해하는 대안적 방식을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차이의 딜레마(dilemma of difference)라고도 소개되는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집단 간 차이를 무시하는 경우 일탈적 존재로 규정되는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영속화한다. 한편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 긍정한다면, 과거에 차이가 낳은 부정적 효과를 재창출할 위험이 있다. 대표적으로 피억압 집단의 예속, 낙인화, 배제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는 경우, 차이의 정치는 상이한 집단들을 각각 별도로 분리하여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영역들을 복구하는 정치가 되므로 동화주의보다 나을 것이 하등 없다. 영은 이와 같은 논리는 집단 간 차이를 "절대적 타자성, 상호 배제, 집단 범주 간의 절대적 대립"으로 정의했기에 도출되는 결과로, 이렇게 본질환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입장은 이미 동일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런 식의 비판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차이의 정치는 동일성 원리의 한계를 비판하며 탄생한 것인 바, 차이의 정치를 동일성 원리의 틀에서 사유해내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일성 원리에 따라 차이 개념을 "타자성, 배타적 반대(otherness, exclusive opposition)"으로 이해하는 것에 대항하여 차이를 "특유성, 이형, 이질성(specificity, variation, heterogeneity)"으로 이해하는 대안적 차이 개념을 소개한다. 두 개념의 주된 변별점은 차이를 "고정된 실체의 범주와 속성에 의해 파악하는가?" 아니면 "관계적 범주와 속성에 따라 파악하는가?"에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경우 집단 간 차이를 "집단 속성의 표현"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후자는 "제도 내에서 집단들이 맺은 관계의 함수, 상호작용한 것의 함수"로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가 옹호하는 후자에 따른다면 차이의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집단 간 차이는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비교 집단, 비교 목적, 비교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집단 범주 간의 절대적 대립화를 함축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 차이가 낳은 부정적 효과를 재창출하는 위험을 배제할 수 있다.

새로 규정된 차이 개념에 근거하는 경우 정치 이론은 친연적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까지 포착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을 갖는다. 앞서 봤듯이 특유성, 이형, 이질성에 근거한 차이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집단 정체성은 고정된 속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과정에서 갖게 되는 특별한 친연성에 근거하는 것이 된다. 즉 집단 정체성이란 "개인들이 집단의 측면에서 자신과 타인을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유동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그 과정이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것인바 집단 정체성도 유동적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한 집단 내부에 다양한 하위 집단이 존재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고정된 하나의 속성에 기초해 집단을 바라보는 경우, 한 집단 내에서도 상이한 정체성이 형성되어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는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반면 새로이 규정된 차이를 받아들여 집단을 바라보는 경우,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 또한 인정할 수 있다는 이론적 강점이 있다. 3)


  1. 동성애 권리 옹호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초기 동성애 권리 옹호는 동화주의적·보편주의적 지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운동의 목표는 "동성애자라는 낙인을 제거하고 제도적 차별을 막고, 동성애자들도 여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회적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운동은 단지 시민적 권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특유한 경험과 관점을 지닌 사회집단임을 고익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그들의 해방 운동은 지배적 문화의 정의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자기네들만의 독특한 의미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창출하고 보여준다. 이러한 운동 방식은 "동성애 행위가 사적으로 유지되는 한 그 행위는 용인되어야 한다"라는 자유주의적 접근을 동일성 원리에 기초한 통합적 접근 방식으로 여겨 비판하며,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은 문화와 정치의 문제이지 용인되거나 금지되어야 할 행위 따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2. 페미니즘의 분리주의적인 운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3. 예를 들어 차이의 정치는 동성애자 남성 집단에서도 흑인인자, 백인인자, 청년층인자, 노인인자 등 다양한 하위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포착해낼 수 있다. 반면 동일성 원리에 기초한 정치는 그들 내부의 투쟁을 파악해내지 못한다.


출처:

IM Young 1990, pp.156-173.

차이의 정치와 정의, 2019, pp.339-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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