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한 심리날조

1개월전의 질문을 봤는데 이원론 붕괴가 위버멘쉬를 실현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거 관해서 다룰 건 아니었고 잠깐 니체가 생각나서 쓰는건데,
니체가 붕괴시킨 이원론이 그저 신의 죽음, 실존주의의 여명 등으로만 해석되는 것에 그치거나 그저 한
철학사의 중요한 일부로만 여겨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이원론을 조져놨다는 것을 진리를 향한 이전 철학자들의 자세와는 사뭇 달랐다는 것을 많이들 알고 계실것 같습니다. 그것은 니체의 사상이 쇼펜하우어나 세계의 염세주의적, 수줍은 교활의 향연 등의 인간적인 면을 확실하게 시행하지 못하는 인류에 반하여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진지함으로서의 즐거움, 진리는 보이지 않았고 따라서 진정 인류의 행복은 그리스 로마적인, 향유적인, 즐거움에 있다는 것을 그는 정신병 중에서도 그칠줄 모르고 주장했는데, 아마 니체가 조져놓은 이원론은 쉽게 말하여 술과 거짓말의 유익을 주구장창 말하고 세상이 얼마나 거짓말로 돌아가는지를 여실없이 보여줌으로서 다시 심포지엄으로 사람들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특히 <즐거운 학문> 109절? 그 쯤에 "인간은 심오하고 진지해지는 존재이기에 광대의 모자를 써야한다."고 표현 될 것입니다.
니체는 이전 철학자들이 제시해놓은 이원론을(제시라는 것은 철학자들이 진정 우리는 알 수 없다고 외쳐대는 것이 아닌, 언젠가는 밝히기 위해 지금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정해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박한 것이 아니라 구라를 찬미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원론이란 분명한 것을 과학자 마저도 어느정도 지지하고 있습니다.(특히 하이젠베르크가 1941년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본 괴테와 뉴턴의 색채론>이라는 글에서 실체에 대한 연역적 해석이 인류에게 필요함을 예견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 또한 <인간폐지>에서 "본능이란 결국 우리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는 말을 합니다. 그것처럼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의지나 칸트의 물자체 등으로 주관과 객관 그 어딘가에 있는 미지를 니체는 어떻게 해체하지는 못했습니다.
정신분석으로나 심리학으로나 주체에 관한 분명한 것은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1. 모든 정신적 문제, 일들은 의지, 욕망, 의욕에 관한 일이다.
  2. 자아는 어리석다. ($◇a만으로도 설명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우리에게 선취된 연역으로 진리를 탐하는 것을 니체가 보았을 때는 상당히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니체도 정작 그런식으로 <힘에의 의지>를 쓴 것 아닙니까? 후대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구요.
    암튼 여기까지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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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세한 사항은 니체 문헌에 대해 정통하신 분께서 더 자세히 일러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이원론'을 비롯한 핵심 개념어들에 대해 문헌에 근거하여 명료한 정의를 제시해주시는 것이 더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니체는 '이원론'이라는 말을 사뭇 독특하게 쓰며, 그 의미에 대해서는 방대한 학문적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체의 이러한 '이원론' 개념이 인용하신 하이젠베르크나 루이스의 언급과 상응하는지 여부는 본 글만 읽어서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니체의 개념 및 입장에 관해 논의하는 이상, 좀더 구체적인 문헌적 근거 및 논증을 제시해주신다면 보다 유익한 토론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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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도 니힐리즘인 것은 분명하군요. 우선 저는 이원론자들이 제시해놓은 이원론을 그 자체로 미지로 설정해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c.s루이스 인용은 그저 비유였고요. 글을 다시 보니깐 니체에 관한 문헌적 설명보다는 이원론의 특징을 설명하려고 이리저리 문헌들을 쓸데없이 가지고 온게 많긴 하네요 ㅠㅠ
니체는 확실히 이원론이라는 말을 제대로 쓴 것을 그의 유고노트에서도 잘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참 니체는 글 재밌게 쓰는 사람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