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관해 질문 있습니다

신의 죽음 선언을 통한 니힐리즘-힘에의 의지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제가 보기엔 니체는 당시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 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간 삶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 신의 죽음 이후 도래한 인간 삶의 무가치함을 의미하는 '신의 죽음'은 니체가 공표한게 아니라, 그 당시 지성계의 트렌드였습니다. 예를들어 포이어바흐, 맑스도 신의 죽음을 말했습니다. 니체가 신을 죽였다고 하는 사람들은 니체 팬클럽 회원일뿐입니다. 그런데도 '신의 죽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니체의 것이 된 이유는, 그 죽음 이후에 새로운 형이상학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특수성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니체가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 것이라 하기는 힘듭니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포이어바흐, 맑스는 신의 자리에 사회주의를 넣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의 죽음 이전 사상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니힐리즘이 기존의 가치가 모두 사라진 상태라는 것을 배웠는데 이 또한 조금 햇갈려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니체가 말하는 니힐리즘에는 두 가지 종류의 니힐리즘이 있습니다. 이 분류 때문에 니힐리즘이 마냥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니힐리즘에 있는 인간도 창조적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니힐리즘에는 능동적 니힐리즘(active nihilism)과 수동적(passive nihilism)이 있습니다. 능동적 니힐리즘이란 가치들의 재평가를 위한 장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자기 형성 프로젝트의 장을 만들어 내는 반면, 수동적 니힐리즘은 무를 향한 의지(willl to nothingless), 삶을 부정하는 의지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별개로 하나 더 언급하자면, 무를 향한 의지(=수동적 니힐리즘)보다 더욱 니체가 염려하는 것은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will nothingness, not will)입니다. 이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형상화 한것이 말종 인간(last man)인데,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행복, 만족, 무관심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니힐리즘 상태의 인간이 구조가 무가 된 상태에서, 자신을 고양하는 힘을 발휘해 입법자가 될수 있을까요? 아무런 구조가 없는 상태(니힐리즘의 상태)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갑니다.

인간 삶을 정향하던 보편적 가치는 분명히 없어졌지만 이것이 나의 삶을 정향하는 가치 또한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의 많은 철학자의 경우 나 또한 인간 유의 하나일 뿐이니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면, 니체의 경우 분리 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이 나의 삶의 가치 정초가 고양된 힘을 통해 가능하다고 할 때, 이 힘은 어떻게 고양될 수 있냐는 것이 문제의 관건으로 보입니다.

니체는 자기절제, 자기 통제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흔히 니체에게 있어 자기절제, 자기 통제가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인다고 여기는데 이는 오독입니다. 애초에 모든 것이 그 자체로 X인 것은 없다고 한 철학자가 자기 절제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모순이겠지요. 니체에게 자기절제, 자기 통제(이하 금욕)은 양가적인 면모를 갖습니다. 그것은 삶에 적대적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가 니체가 비판하는 자기 부정적 형태의 금욕입니다. 반면에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평가절하하지 않고 자기 긍정을 이루는 금욕이 니체가 추구하는 형태의 금욕입니다. 니체는 이러한 금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초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나의 삶의 가치 또한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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