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관해 질문 있습니다

오늘 현대 철학사 시간에 니체를 배웠는데요, 신의 죽음 선언을 통한 니힐리즘-힘에의 의지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제가 보기엔 니체는 당시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 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니힐리즘이 기존의 가치가 모두 사라진 상태라는 것을 배웠는데 이 또한 조금 햇갈려서요. 푸코에 따르면 인간의 창조성 또한 구조의 지배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것을 니체에게 적용했을때, 니힐리즘 상태의 인간이 구조가 무가 된 상태에서, 자신을 고양하는 힘을 발휘해 입법자가 될수 있을까요? 아무런 구조가 없는 상태(니힐리즘의 상태)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갑니다. 제가 너무 구조주의 적으로 본것일까요?
다소 두서가 없네요. 선생님들의 고견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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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죽음 선언을 통한 니힐리즘-힘에의 의지가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요. 제가 보기엔 니체는 당시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 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인간 삶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한 신의 죽음 이후 도래한 인간 삶의 무가치함을 의미하는 '신의 죽음'은 니체가 공표한게 아니라, 그 당시 지성계의 트렌드였습니다. 예를들어 포이어바흐, 맑스도 신의 죽음을 말했습니다. 니체가 신을 죽였다고 하는 사람들은 니체 팬클럽 회원일뿐입니다. 그런데도 '신의 죽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니체의 것이 된 이유는, 그 죽음 이후에 새로운 형이상학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특수성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니체가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 것이라 하기는 힘듭니다.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포이어바흐, 맑스는 신의 자리에 사회주의를 넣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의 죽음 이전 사상가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니힐리즘이 기존의 가치가 모두 사라진 상태라는 것을 배웠는데 이 또한 조금 햇갈려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니체가 말하는 니힐리즘에는 두 가지 종류의 니힐리즘이 있습니다. 이 분류 때문에 니힐리즘이 마냥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그렇기에 니힐리즘에 있는 인간도 창조적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니힐리즘에는 능동적 니힐리즘(active nihilism)과 수동적(passive nihilism)이 있습니다. 능동적 니힐리즘이란 가치들의 재평가를 위한 장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자기 형성 프로젝트의 장을 만들어 내는 반면, 수동적 니힐리즘은 무를 향한 의지(willl to nothingless), 삶을 부정하는 의지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별개로 하나 더 언급하자면, 무를 향한 의지(=수동적 니힐리즘)보다 더욱 니체가 염려하는 것은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will nothingness, not will)입니다. 이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형상화 한것이 말종 인간(last man)인데, 이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행복, 만족, 무관심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니힐리즘 상태의 인간이 구조가 무가 된 상태에서, 자신을 고양하는 힘을 발휘해 입법자가 될수 있을까요? 아무런 구조가 없는 상태(니힐리즘의 상태)에서 이것이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갑니다.

인간 삶을 정향하던 보편적 가치는 분명히 없어졌지만 이것이 나의 삶을 정향하는 가치 또한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전의 많은 철학자의 경우 나 또한 인간 유의 하나일 뿐이니 둘을 구분하지 않았다면, 니체의 경우 분리 가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이 나의 삶의 가치 정초가 고양된 힘을 통해 가능하다고 할 때, 이 힘은 어떻게 고양될 수 있냐는 것이 문제의 관건으로 보입니다.

니체는 자기절제, 자기 통제를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흔히 니체에게 있어 자기절제, 자기 통제가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인다고 여기는데 이는 오독입니다. 애초에 모든 것이 그 자체로 X인 것은 없다고 한 철학자가 자기 절제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면 모순이겠지요. 니체에게 자기절제, 자기 통제(이하 금욕)은 양가적인 면모를 갖습니다. 그것은 삶에 적대적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가 니체가 비판하는 자기 부정적 형태의 금욕입니다. 반면에 세속적이고 감각적인 삶을 평가절하하지 않고 자기 긍정을 이루는 금욕이 니체가 추구하는 형태의 금욕입니다. 니체는 이러한 금욕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초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 나의 삶의 가치 또한 만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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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따르면 인간의 창조성 또한 구조의 지배속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이것을 니체에게 적용했을때,

3번 얘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의 논의를 끌여들이는 것이 실제로 편합니다. (저는 후기 푸코의 작업과 니체의 작업이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편인데,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선으로 보는 다른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하는 니체 이해를 돕기 위한 푸코 설명입니다. 다만 설명할 것이 길어 제가 예전에 정리한 것을 그대로 복붙하는지라 '-입니다'체가 아닌 '-다'체입니다.


푸코 또한 신의 죽음이 위험하고 또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문화적 위기의 개시를 알렸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해지는 현대 세계의 위험의 한 가지 방식은 파시즘의 형태로 나타난 형이상학적 필요와 금욕적 이상의 재발이다. 푸코에게 파시즘이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권력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것에서 푸코는 니체의 말종인간을 보았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자기 변형 윤리 프로젝트(project of an ethics of self-fashioning) 문제에 집중한다. 푸코에게 지배적인 권력 관계, 특히 지배와 통제의 관계에 도전하는 것은 새로운 윤리의 정교화를,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관계 맺음을 수반한다. 즉, 자기 자신과의 관계 외에는 정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시발점도, 마지막 지점도 없다. 그는 그리스-로마 연구를 통해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근대적 주체, 윤리와는 차별화된 주체성의 대안적 양상을 고안해내려 했다.

그런데 그가 그리스-로마 연구에 있어 집중한 것은, '그들의 윤리의 내용'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문제제기되는 방식'이다. 푸코는 자기에 대한 앎과 자신을 배려하는 것을 구분하는데, 전자가 소크라테스의 'know thyself(gnothi seauton)', 인식에 집중한 이론적 지식이고, 후자가 자기 변형에 집중한 자기 배려(epimeleia heautuou)'이다. 푸코에 따르면 고대에는 이 둘이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었다면, 현대에는 자기 배려가 과학과 그 진리 게임으로 대체됐다. 그리고 이 대체는 주체를 지식의 객체/대상으로 만드는 자기에 대한 지식에 사로잡히는 측면과 주체를 지배와 복종의 구성물로 여기는 측면 사이의 긴밀한 짜임 관계를 보여준다. 푸코가 볼때 이렇게 사라져버린 자기배려는 자신의 존재 전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자율적이고 자기 완성적인 예술이고, 헬레니즘 시대는 주체의 진실에 대한 문제의 전개와 구성을 볼수 있는 특권적 순간이다. 이러한 자기배려는 지배의 테크놀로지를 포함하는 장치들로 부터 구성되는 주체의 양식에 대안적 양식의 주체성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푸코가 사용하는 예속적 주체화(subjectification/assujettissment)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것은 예속과 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으나, 지배의 관계에 있어서 자율성과 저항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는 권력/지식의 운동 속에서 어떻게 한 사람이 주체를 만들어 내는가와 관계있다. 이와는 달리 주체화(subjectivation)는 그 스스로가 진실로 여겨지는 것에 기반하여 구성된다(즉, 진실의 배치, deployment of truth)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개인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와 연관된다. 푸코에게 있어, 이는 주체가 진리와 관계맺는 매우 다른 두 관계방식이 있고, 이와 연관되어 이 진리 담론 속에서 자신 스스로를 구성하는 매우 다른 방식이 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deployment in true course

  1. objectification of a subject(주체의 대상화) - renunciation of self(금욕) - modern philosophy with its subject/object relation - science - see both the natural world and the human being as objects the nature of which it is their task to discover and classify

  2. subjectivation of a subject(주체의 주체화) - self-fashioning(자기 변형) - subject who tells the truth - transfigured by this enunciation of the truth, by this enunciation itself, precisely by the fact of telling the truth - rejoining oneself as the end and object of a technique of life, an art of living

이것이 바로 니체와 푸코가 말하는 실존의 미학 이론의 기반이 된다. 니체는 자기변형을 예술적 작업 모델(model of a work of art)에 기반하고 있다. (GS 290) 푸코 또한 니체와 마찬가지로 칸트나 근대 미학에서의 예술 개념과 다른 예술 개념을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예술 개념은 존재의 미학(art of existence/technê tou biou)으로, '너 자신을 돌봐야만 한다(care of self/epimeleia heautou)'는 원칙에 따른다. 푸코의 이러한 재규정에 몇몇 개념적 변화가 뒤따른다.
(1) 미학(존재의 미학)과 윤리(자기 배려)사이에 긴밀한 연관이 설립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학은 technê tou biou ('the technique/art of life’/‘the art/aesthetics of life/existence’) 속에서의 techne개념과 유사 개념으로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윤리를 자기의 미학(화)로 이해하는 것은, 윤리를 자신의 질료와 마주하는 예술가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를 자신에게도 갖춘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2) 예술을 technê로 변환하는 것은 또한 poiêsis(장인의 작업) 그리고 기술(technique)과도 연결된다.

(3) 미학을 아름다움과 연결시킬떄, 이는 근대적 의미가 아닌 그리스적 의미에서의 아름다움(kalos)과 연결된다. kalos는 우리가 윤리적 의미에서 '내적인 아름다움', '아름다운 영혼'을 얘기할 때 사용하는 아름다움과 같이, 좋음, 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와 같은 실존의 미학이 함축하는 자기-실천(self-practices)은 금욕주의/고행주의(asceticism) 개념의 재기능화와 연결되어 있다. 푸코에 따르면, 현대에서 asceticism를 얘기한다면 그것은 금욕(renunciation/renunciation of self/renonciation à soi)을 의미하지만, acesis(askêsis)는 분명히 고대에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The Hermeneutics of the Subject, pp. 319-320.) 무엇보다도 acesis는 자기 포기를 목표로 하지 않았고 오히려 acesis는 자신을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자기 자신과 완전/완벽/갖춰진/자기-충족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는 자신 내적으로 복으로 느끼는 자기-변형을 창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재정의는 외적인 권위나 제도로부터 부여받은 제약을 넘어선 활동으로서 자기-구성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고행적 행위는 지배적인 환경 속에서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다른 실존 양식을 향하게 함으로써, 자신/사회/전체에 대한 이해에 대해 검토/수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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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른 선생님께서 훌륭한 답변을 해주셔서, 저는 간단히 첨언하고자 합니다.

제가 보기엔 니체는 당시 이원론적 "구조"를 무너뜨리고 니힐리즘 이라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이원론적 구조란 (여기서 구조란 말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시간상 이후에 등장한 구조주의의 '구조'라는 개념에 의해 이 시기의 사유를 오도할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철학적/종교적으로 상정된 이원적 세계관, 즉 현실과 초월적인 세계를 구분하고 초월적/내세적인 것을 더 중시하는 풍조를 말한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풍조가 필연적으로 위기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니힐리즘에 빠져서 의식과 목적을 상실하고, 모든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허무한 감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따라서 니체가 이 시기의 이원론적 사유를 무너뜨렸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고, 니힐리즘의 출현은 당시 서구의 문명과 역사, 종교 등이 직면하는 일종의 필연적 과정이었다고 보는 것,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 일종의 예언자적 식견을 가지고 당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따라서 니체가 니힐리즘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그것을 당시의 이원론을 대체하는 새로운 구조로 만든 것 역시 아닙니다. 니힐리즘에 대한 언급은 니체 이전에도 있었고, 러시아에서 니힐리즘은 베르쟈예프 같은 철학자에 의해 긍정적인 것, 당시 러시아 젊은이들을 이끌었던 사유로 사랑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단지 니체가 니힐리즘이란 문제를 깊이 의식하고, 고도로 치열하게 대결하였고 자신의 방법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였기에 니체가 논의한 문맥이 니체 이후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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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 감사드립니다 ! 상세하게 답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구조에 대해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한것 같습니다.
푸코의 답은 상당히 흥미롭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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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견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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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식으로 말하면 니체도 신의 자리에 자기 나름의 '이러 저러한 사회가 좋다/이러 저러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요지의 사상 체계를 넣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와 달리 그런 사회/그런 인간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그럴듯한 얘기는 보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마르크스가 과연 신의 죽음을 선언했는 지도 의문입니다. 마르크스는 특히 서구에서의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종교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적한 것에 그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적인 좋은 삶은 상당히 친사회주의적/친공산주의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니체야말로 철저하게 신의 죽음을 선언한 유일한 사상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이전의 다른 사상가들도 그리 보았다고 해도 니체의 사상에서는 기독교가 유난히 중심적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사상 체계에서 물질적 생산 활동 및 그것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이 차지하는 위치를 니체의 사상 체계에서는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니체에게서 서구의 역사는 기독교적 윤리관/인간관이 점점 지배력을 넓혀온 역사입니다. 심지어는 그 윤리관/인간관을 단순하게 퇴짜놓지도 않았고 바로 그것이 신의 죽음을 초래했다고까지 주장했습니다. 니체의 이런 신의 죽음론에 비하면 니체 이전, 특히 포이어바흐 등의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빈약하고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교의 [즉 신, 불멸의 영혼, 기타등등의 형이상학으] 로서의 기독교는 자기 자신의 도덕 [진리를 추구해서 모든 것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덕] 에 의해 몰락했다. 그와 같이 이제 도덕 [진리와 compassion 을 궁극적 가치로서 평가하는 도덕] 으로서의 기독교도 몰락할 수 밖에 없다. - 우리는 이러한 사건의 경계선에 서 있다. 기독교적 진리충실성이 연이어 결론을 끌어낸 지금, 결국 그것은 그것의 가장 강한 결론을, 그 자신에 반하는 그것의 결론을 끌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이 진리충실성이 "모든 진리를 향한 의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때인 것이다. [도덕의 계보, 제3논문,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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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가지 덧붙이자면, 제가 이해하는 맑스의 종교 비판(신 비판)은 두가지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가 말씀하신 이데올로기 비판적 성격이고 나머지 하나가 인간학적 성격의 비판입니다. 전자가 이전 헤겔 좌파가 종교 비판을 추상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비판하며 넘어서는 지점이고, 후자의 경우가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후자의 측면에서 보자면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얻지 못했거나, 이미 자기 자신을 다시 상실해 버린 인간의 자의식이고 자긍심'이므로, "이들(신, 종교) 개념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이 맑스의 인간학적 종교 비판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신의 지양으로서 무신론은 이론적 인간주의의 생성"이라는 그의 주장이 나오고, 이어서 실천적 인간주의의 측면에서는 공산주의 운동이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맑스의 종교비판이 그것의 지배 이데올로기적 성격 비판이라고 좁힌다면, 그의 인간한적 면모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맑스가 종교와 신 비판을 행했음을 알면서도 제가 맑스를 '신의 죽음 이전 철학자'라고 말한 것은, 그 자리에 이뤄져야만 하고 이뤄내야만 하는 인간 유의 목표를 넣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종교적 신의 형태를 띄지는 않더라도 인간 삶의 의미를 규정하는 자신 외부의 어떤 것을 정해두었다는 의미에서요. 반면에 니체는 그것을 규정하는 어떠한 X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표현한거에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니체 자신도 '주인'따위의 표현을 통해 지향해야할 가치를 말했지만 이전 철학자들과 달리 그 구체적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 외부에 있지 않고 스스로가 정할 수 있고 정해야만 하는 내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동시에 바로 이렇기에 니체의 신의 죽음 비판이 기독교 비판으로 축소되면 안되고 자신에게서 매개되지 않은 그 무엇이라도 의심하라는 것으로 파악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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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전공자님으로부터 깊이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좋네요.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 이는 단순히 기독교의 하느님에 대한 사망선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야 옳을 것 같아요. 니체 당시 혹은 이전에도 무신론 혹은 이신론은 수없이 많이 주장되어 왔으니까요. 오히려 니체는 절대적인 진실/진리에 대한 어떤 회의를 주장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니체를 연결시키려는 학자들의 논리이기도 하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제2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1. Wahrheit will keine Götter neben sich. – Der Glaube an die Wahrheit beginnt mit dem Zweifel an allen bis dahin geglaubten Wahrheiten.
    (어떤 신들도 자신과 병존하기를 바라지 않는 진리 - 진리에 대한 믿음은 그때까지 믿어왔던 모든 진리에 대한 회의와 함께 시작한다)

참고로 그 유명한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라는 구절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이 저서 이후에 출간된 "즐거운 학문"에서죠. 그 이후 다시 "안티크리스트"와 같은 저서에서 치열하게 기독교와 대결하려 하기도 합니다만...이러한 면모만으로 니체 사상의 핵심이 기독교 비판으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Sophisten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에게서 매개되지 않은) 그 무엇이라도 의심하라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선악을 넘어서"에서 니체는 '...de omnibus dubitandum'(모든 것을 의심하라)이라고 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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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유물론은 역사유물론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역사유물론을 따르면 종교는 가장 지배적인 지배 이데올로기 노릇을 할 수도 있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유물론은 인류의 사회생활(의 본성) 및 그것의 역사적 변화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설일뿐 존재론이 아니기 때문에 무신론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역사유물론에는 인간 본성(능력/성향)에 대한 원론적 얘기가 전제로 포함되어 있는데, 그 얘기를 굳이 마르크스의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부른들 그 얘기가 무신론을 함축하는 인간존재론적 얘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에서의 신에 대한 이러 저러한 규정들이 실은 인간의 소외된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식의 얘기를 설사 포이어바흐에 이어 마르크스도 했다고 한들 그 얘기는 무신론의 논증이 되지 않습니다. 신이 어떻게든 인간적이라는 주장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층위가 다른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얘기는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에 국한됩니다. 성숙기의 마르크스를 놓고 보면 그가 무신론자라는 것은 그저 그가 신(에 대한 믿음) 없이도 인류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정도의 가장 원론적인 생각을 한 것 같다는 것이지 그가 니체처럼 극렬하게 반기독교적인 태도로 거창하게 신의 죽음 운운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런던 망명 시절 딸을 데리고 교회도 가곤 했고 예수를 칭송하는 얘기도 딸에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뻔한 얘기를 덧붙이자면, 마르크스가 개인적으로 가장 원론적 의미에서라도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은 마르크스주의가 무신론임을 함축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종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심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역사유물론적 설명에 대한 관심 말고는 없습니다. 크리스천도 얼마든지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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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이뤄져야만 하는 인간 유의 목표를 상정했습니다.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가 여차저차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얘기를 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했고 과학적으로 한 덕분에 마르크스주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과학적으로 했다는 것은 공상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그 '..야 한다'가 인간 본성과 사회의 구조적 다이나믹 상 소망적 사유에 멈추지 않고 실제의 역사적 운동과 일치할 가능성을 논변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가능성은 필연성이 아닙니다. 즉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필연적으로 도래한다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도래할지 안 할지는 궁극적으로는 도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 아래서 벌어지고 그 조건들에 의해 부추겨지는 계급투쟁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를 두고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 유의 목표로 (죽은) 신을 대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 목표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 기초해서 - 즉 철저히 인간 내재적으로 - 내려진 것이고 신의 추구와 같이 필연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인간 유가 무슨 사회적(관계들 속에서만) 살아가는 개인들 및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계급관계와 별도의 집단정신인 것도 아닙니다. 마르크스에게서 인간의 유적 본성이란, 인간은 결국 개개인들이고 따라서 삶의 의미도 결국 개개인들의 삶의 의미('내 삶의 의미')이지만,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의 실체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삶이 가질 수 있는 의미의 범위는 사회의 구조적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때의 바로 그 인간 존재의 사회성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정확히는 경철수고에 가장 원론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그 사회성을 규정하는 인간만의 어떤 고유한 능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마르크스와 비교할 때 니체는 인간 세계 안을 그 세계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조망될 수 있는 정도로 높은 곳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서 추상적이고 일면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 자신에게서 매개되지 않은 그 무엇이라도 의심하는 훌륭한 태도는 그 매개를 충분히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 하면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그 못함은 인간 자신에게서 매개되지 않은 것을 인간을 논하는데 끌어왔다는 의심을 낳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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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서 드러나는 선생님의 입장 전반에 대해 저도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맑스의 유물론을 역사유물론"으로, 또 "그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얘기가 전제로 포함되어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맑스의 종교(신) 비판을 굳이 자본이 아니라 경철초고를 인용하며 철학-인간학적인 시각에서 설명한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저는 맑스의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인간학적 개념을 그의 역사 유물론과 연결시켜야만 맑스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보기에, 즉 그의 철학적 인간학을 "젊은 시절의 맑스에 국한"시키지 않아야한다는 입장이라, 그의 종교(신) 비판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것입니다. 저 또한 맑스의 종교(신) 비판이 니체의 것보다 극렬하다고도, 그가 신의 비존재 증명을 해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2에 관해 얘기하자면, 저도 그의 공산주의 이론이 (추상적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그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과학적 탐구에 기초해서" "인간 유의 목표"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 유의 목표로 (죽은) 신을 대체"하지는 않았지요. 그의 이러한 면모는 "인간은 스스로의 삶을 생산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것도 한정된 방식으로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를 갖는다" 따위에서 잘 드러나지요. 맑스의 분석을 철저히 따라가자면 그의 이상적 사회상은 분명 개인들을 초월해 있는 가치 혹은 목표로 존재하지 않죠.
다만 그는 니체와 달리 자신 나름의 인간 본질의 탐구를 기반으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나갔기에 그 사유의 정점에 있는 것 또한 본질적인 어떠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인간 유의 본질이 있고 그것은 X이다는 것이 맑스 사유의 근저에 있기에, 결국 그의 사유 전체가 본질에 기초한 사유로 읽히며 그런 점에서 제가 새로운 형이상학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달리 니체의 사유는 인간 본질의 탐구에서 시작하지도 않았고 본질주의를 계속하여 비판한다는 점에서 맑스와 다르다고 보이구요.
정리하자면 제가 보기엔 맑스는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탐구를 기반으로 했으며, 인간 유 혹은 사회가 인간 개인과 대립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더라도) 인간 유의 본질 탐구에서부터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기에, 어떤 의미에서든 개인 Q의 본질과 Q 삶의 최종적 의미 또한 이미 본질에 따라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신의 죽음 이전 철학자이고, 반면 니체의 경우 본질 탐구로 자신 철학을 전개하지 않았고 인간 본질을 규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삶의 의미를 얘기했기에 신의 죽음 이후 철학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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