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정말 차라투스트라가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했다고 생각했을까요?

http://etl.snu.ac.kr/course/view.php?id=215998
(강의 링크입니다. 로그인 상태여야 이동되는 것 같습니다.)

snu etl에서 박찬국 교수님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강의를 보고 있었습니다.
1-2강, 차라투스트라는 누구인가에서 박찬국 교수님은,

정직과 진실됨을 최고의 덕으로 삼은 차라투스트라는 처음에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창했지만,
나중에는 정직하고 진실된 반성을 통해 이원론이 사람을 병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선악을 넘어서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고 니체는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강의를 보고 예전에 가졌던 니체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은 것일까? 라는 궁금증이 다시 도진 저는 어쩌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내용을 한 책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 차라투스트라와 니체는 허구든 선택이든 선과 악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데서는 하나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출현 이전 상태를 두 사람은 알았을 것이다. 이 이전의 상태가 니체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제시한 선악의 저편, 곧 선악의 피안이자 역사 속 차라투스트라가 제시한 종말 이후의 세계다.이렇듯 걸어간 길은 상반되었지만, 크게 보아 목표는 다르지 않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조로아스터교의 교리와 차라투스트라의 사상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위 글에 따르면 니체가 주창한 인간이 닿아야 하는 세계인 선악의 저편과 차라투스트라가 제시한 종말 이후의 세계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어난 상태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내용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찬국 교수님의 강의에서의 말씀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나중에는 진실된 반성을 통해 선악을 넘어서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이고, 정동호 교수님의 글은 '니체의 선악의 저편과 차라투스트라의 종말 이후의 세계는 크게 보아 다르지 않다.'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도덕이라는 오류를 창조, 그보다 더 중요한 진실성을 최고의 덕으로 삼은 것을 말하며, 진실성에서 비롯되는 도덕의 자기극복ㅡ내 안으로의 자기극복ㅡ이것이 내 입에서 나온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라는 정도로 시사했습니다만, 이에 대한 설명을 니체에게서는 더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니체가 정말 차라투스트라가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했을지,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만약 그렇다면 그에 관한 사료들이 혹여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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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 교수님께도 위와 비슷한 질문을 드렸는데, 답변을 주셨습니다. 올려두겠습니다.

거부합니다. 니체는 철학과 종교(특히 기독교)와 도덕을 데카당스의 징후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셋 모두 참된 세계와 가상 세계라는 대립을 상정하는데, 이 두 세계의 대립이 인간이 허무적 가치에 빠져 현존을 부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니체로부터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니체 텍스트는 초창기부터 말년 유고까지 계속하여 등장합니다. 니체의 이원론 비판/거부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많은 논문과 책에서 제시되니 찾기 쉬우실겁니다.
몇가지 예를 들기위해 제 논문에서 인용한 구절들의 텍스트 번호를 좀 적어두겠습니다. 일부러 초중후기 텍스트 각각 다 기재했습니다. (GT는 비극의 탄생을, M은 아침놀을 뜻하며, GD는 우상의 황혼을 뜻합니다. 로마자는 KGW 단행본 기준 책 번호를 의미하고, §와 숫자[숫자]는 구절을 지시하기 위함으로 쓰입니다)

GD, 4, §50/ VIII-3, 14[92]/ VIII-2, 9[86]/ VIII-2, 10[89]/ M, 2, §103 / GT, V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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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질문드린 건 '니체가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하는가?'가 아니라 '니체는 정말 차라투스트라가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했다고 생각했을까?' 입니다 ㅎㅎ

기본적으로 제가 알고있는 차라투스트라와 조로아스터교의 교리는 이원론적 세계관이기 때문에 쉽게 믿기지 않았고, 그 외 자세한 제 질문은 본문에 적혀있습니다 ㅎㅎ

다시 읽어보니 제가 질문의 의도를 완전히 오독했군요?? 미안합니다. 글쓴이님의 질문 의도는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같아요.
(1)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로서' 차라투스트라를 니체가 '이원론을 거부한 자'로 여겼는가?
(2) 차라투스트라를 왜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았는가?
(3) 그리고 (1)과 (2)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지지할 텍스트 근거는 있는가?

제가 니체를 전공하긴 했지만 사실 (1)과 (2)의 질문은 제 관심사가 아니여서(특히나 (1)), '과거 실존 인물로서 차라투스트라(a)'와 '니체의 허구적 인물로서 차라투스트라(b)'간의 관계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가능한 물음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 명쾌한 해답을 드리긴 힘들 것 같습니다. 미진한 답변이지만 제 생각을 조금 전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1)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바가 없고, 저는 a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큰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a에 대해 크게 관심가질 이유가 없기때문인데, 니체의 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후 등장하는 텍스트들에서 언급되는 '차라투스트라'는 거의 대부분 a가 아니라 b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님께서 언급하신 <이 사람을 보라>-운명3에서 등장하는 '차라투스트라' 는 a를 지칭한다고 보여집니다.) 예를들어 한국어판 니체 전집 기준 17권과 18권에 차라투스트라에 관한 많은 얘기가 적혀있는데, 대부분 저서 <차라투스트라>에 관한 것이거나 b에 관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연구자들에게 주된 관심의 대상은 b이지 a가 아니겠지요?

(2)는 두가지로 구분가능해 보입니다
(2)-1. a를 왜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았는가?
(2)-2. b를 왜 자신의 대변인으로 삼았는가?

(2)-1부터 답변해보자면, 니체가 a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내세우지 않았음은 너무나 자명하지요. 그렇다면 질문 (2)-1과 관련된 (3) 또한 질문으로 성립하지 않을듯합니다.
(2)-2의 경우, 언급하신 정동호 선생님이나 박찬국 선생님 말씀으로 어느정도 답변이 가능할 것 같네요. 텍스트로는 언급하신 <이 사람을 보라>-운명3, VIII-3, 18[15]/ VIII-3, 22[23]이 있겠습니다.
이외에도 들뢰즈의 답변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들뢰즈는 이를 '개념적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듯합니다. '개념적 인물'의 대표적인 예시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인데요. '개념적 인물'의 중요한 특징은, 철학이 역사적&사회적으로 실존하는 인물을 참조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새로운 실존 방식의 발명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b와 같이 니체가 새로 만든 개념적 인물들은 a를 참조하지만,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니체가 귀족이나 주인(도덕)을 높게 평가하지만, 실제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어떤 귀족이나 주인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아닌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동시에 이 '개념적 인물'은 단순히 철학자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자에게도 영향을 주는 집합체입니다. 차라투스트라 b는 니체의 개념 창조 자체에 개입합니다.

자신의 개념적 인물이 되는 것은 철학자의 운명이며, 이와 동시에 이 인물들 자체가 역사적, 신화적 또는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무엇이 된다(플라톤의 소크라테스, 니체의 디오니소스, 쿠자누스의 백치). 개념적 인물은 하나의 철학의 생성 또는 주체이며, 이것은 그 철학자에게 적용되어 쿠자누스 또는 데카르트조차도 ‘백치’라고 서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니체가 ‘반(反)-그리스도’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힌 디오니소스’라고 서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 들뢰즈 (1991) p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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